26. 오늘 나는 밥을 먹지 않았다

한번의 호의 무너지는 경계

by 윤설

밥을 먹지 않았다

밥 때문이 아니라 관계 때문이었다


다리가 불편한 아파트 할머니를 보고

내가 다니는 한의원을 알려드렸다

깁스하고 다니던 내 모습을

여러 번 보신 모양이었다


길을 모르고 혜매이실까 다음날 같이 동행했다

어차피 가는 길이었고

그건 내가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치료가 맘에 들었는지 계속 다니고 싶다고 해서

버스 타는 곳이랑 위치등을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다시 만난 할머니는

내가 병원 다니는 동안 자신도 태워서 같이 가 달라고 했다


떨어진 메모장을 잡으려던 내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예전의 나였으면 "네" 라고 대답했을 거고

오히려 내가 먼저 제안했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속 엄마의 모습 때문에,

그 나이에 느낄 그 낯섦에 대한 불안을

이젠 나도 아는 나이인지라


거절했다


의존에 익숙한 나이인 것도 알았고

서운해 하는 낯빛이 역력했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거였고


"칭찬" 과 " 좋은사람" 프레임으로

내 시간을 다시

소모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괜히 선 긋는 차가운 사람으로 보였을까

내내 신경 쓰였다


그러나 범위를 정한 이후의

나의 거절이란 대답이 준건

편안함이었다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마음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

나를 덜 소모시키는 선택


말로만 글로만 하던 경계를

행동으로 하는 건

오늘처럼

날 또 난처하게 만들겠지만


이제는 안다


경계를 세운 다는 건

누군가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이었다는 것을


다시 출근하기 전 3일

그것이 내가 할머니께

경계 세운 시간

동시에 날 소모시키지 않는 시간


그래서 나는

오늘 같이 밥을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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