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평살이 Apr 20. 2021

자크 데미의 <쉘부르의 우산>을 보면서

삶이란 일상을 칠하는 형형색색 물감들.

자크 데미의 쉘부르의 우산을 보았습니다.


쉘부르의 우산은 등장인물의 모든 대사가 노래로만 구성되어 있는 희한한(?) 영화입니다. 그러한 요소를 잘 녹여내 낭만적이면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영화이기도 하지요. 라라 랜드의 감독인 다미엔 차 칠레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자크 데미의 영화는 이와 같이 오늘날의 감독들에게 장르적인 영감을 주기도 하지요. 음악영화이지만 더 나아가서 쉘부르의 우산을 뮤지컬이나 오페라로 치부하기에는 조금 애매합니다. 뮤지컬은 연극을 모태로 한 음악적 요소의 결합이라면 오페라는 노래가 연극적인 요소의 결합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장르를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음악영화라고 해둡시다 흐흠) 뭐 차처 하더라도 자크 데미의 영화들이 갖고 있는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해당하는) 풍성한 영상미와 더불어 파스텔적인 색채가 마치 인간의 노스탤지어에 대한 환상과 그리움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줄거리


1957년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작은 도시 쉘부르에 사는 스무 살 자동차 수리공인 기이는 사랑하는 여자 친구인 쥬느비에브를 만나 행복한 사랑을 합니다. 쥬느뷔에브는 중산층 과부의 딸로 어머니를 도와 고급 우산 가게에서 일하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불 항하게도 그는 2년 동안 알제리로 징병이 되어 군생활을 하게 됩니다. (마치 우리나라 같..) 그가 떠나기 전에 그녀는 서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그녀는 그가 떠난 후에 편지를 거의 받지 못합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랄까요. 쥬느비에브는 그가 떠나고 나서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됩니다. 더군다나 쥬느비에브 가정이 점차 경제적인 상황이 어려워지자 그녀의 어머니는 경제적인 위기에서 가정을 도와줬던 다이 오몬드 상인과 쥬느비에브를 연결해주려고 하죠. 그리고 쥬느뷔에브는 기이에 대한 소식이 없고, 사랑도 멀어졌다고 느끼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상인과 결혼을 하고 파리로 가서 살게 되죠. 기이가 돌아왔을 때 그는 알제리에서의 전쟁의 흔적으로 다리를 절게 됩니다. 이 때문에 그가 편지를 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히지도 못한 채 말이지요. 기이는 삶의 목표를 상실해버렸고, 정비공이 아닌 군인연금으로 생활하려고 합니다. 매춘부와도 하룻밤을 보내고 그는 그를 아끼던 엘리제 아주머니가 그가 없을 때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는 아주머니가 누누이 언급해왔던 유산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되었고, 그걸로 주유소를 인수하고 그 아주머니를 돌보았던 헌신적인 여자인 마들렌과 결혼하게 됩니다.  4년 후에 크리스마스에 기이의 가정은 이제는 남자아이가 있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잠시 마들렌과 아들이 산산책을 나간 사이에, 쥬느뷔에브가 검은색 벤츠를 타고 그녀의 딸인 프랑수아즈를 데리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쥬느뷔에브를 주유소 안으로 들어와 잠시 대화를 나누죠. 한 없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지요. 그렇게 그들이 헤어지고, 그녀가 차로 들어가면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마들렌과 아이를 반갑게 맞이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그들이 다시 주유소로 들어가는 장면과 하늘 위로 크레인 되어 올라가는 화면과 함께 영화가 마치게 됩니다.



일상의 리듬. 춤추는 대사. 색색 색.


원색으로 도배되어 있는 벽들과 옷들은 이 영화의 질감을 색으로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과장되어 있는 현실과 평범한 현실이 조화를 이뤄서 아득한 감정을 자아냅니다. 이런 과정 된 시각적인 요소는 영화의 대사 또한 뚜렷하고 흡사 춤 시위처럼 느껴집니다. 이 요소들은 정서적으로 강력하게 관객들을 끌고 나가지요. 그리고 일상적인 요소를 더욱더 부각하는 것 같습니다. 먼저는 드미의 부인인 아네스 바르다가 만든 영화에서 작고한 남편의 어린 시절을 묘사할 때, 드미의 아버지가 기이처럼 차고에서 일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사소해 보이지만 소중한 일상들은 쉘부르의 우산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가령 '봉쥬르 bonjour'라는 인사말을 하나하나 음악적으로 배치하면서 더 많은 일상들의 조각들을 보여주고, 프랑스어가 갖고 있는 강한 리듬 패턴이 장면마다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마지막 장면도 그렇죠. 대화를 마치고 헤어지는 장면에서 'Toi, tout va bien?' (잘 지내고 있어?), 'Oui, tre's bien.'(그래 잘 지내)라고 진부한 대사를 합니다. 어찌 보면 진부하지만 영화적으로 이야기가 갖고 있는 패턴들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일상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객은 감독의 의도와 일치된 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흥미로운 점 하나.


이 영화 내에서 에쏘 주유소의 이름은 'Escale Cherbourgeoise'이며, 이는 문자적으로 '쉘부르 사람들의 휴게소'라는 뜻이지만 우리는 'escalader'가 '오르다'라는 뜻이며, 'esclier'가 '계단'을 의미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로부터 '부르주아의 계급 상승 abourgeois step up'이라는 옛날 말장난의 흔적을 좇을 수도 있습니다. 기이는 이제 안락한 중산층이며 쥬느뷔에브는 상류층이 되었습니다. 그들 사이의 계급적 차이는 이전보다 더 넘어설 수 없는 것이 된 것이지요. (로미오와 줄리엣이여..?) 그리고 에쏘 Esso라는 주유소는 뻔뻔한 간접광고...!? 처음에 등장하는 비와 후반부에 등장하는 눈은 운율적으로 수미상관을 이루지요.

뭐 어찌 됐든 이 이야기는 흡사 군대에 간 여자 친구가 고무실을 거꾸로 신은 해악(?)이 있는 영화입니다. 웬만하면 군대 가기 전에는 보지 마세요(?). 농담이고요. 쉘부르의 우산은 이러한 프랑스의 일상을 프랑스어가 갖고 있는 리드미컬한 음성을 생명력 있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프랑스의 계급 문화를 풍자하는 우화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 이어졌으면 하는 가정법은 우리 인생에도 매 순간 존재하는 일상적 상상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어쩌면 그리움과 후회 속에 남는 건 그럼에도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기억하고 간직하려는 마음이 있어서는 아닐까요.




작가의 이전글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2011)를 보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