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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사건의 시작(1)

[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by 해달

“…….”

“도련님 오셨어요?”




순이가 냉큼 어색한 적막을 깼다. 당황한 내 얼굴을 본 거였다. 어머니 시선이 곧장 주양현에게 쏠린 찰나이기도 했다.




“한데 옆에 계신 분은 뉘신지…….”

“안녕하세요! 우준이 친구 주양현이라고 합니다!”




내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이었다. 먼저 나선 주양현이 우렁차게 인사를 한 건.


쪽진 머리에 녹색한복을 입고 한껏 치켜올려진 눈꼬리에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훑던 어머니 앞이었다.




“저, 전에 말했던 내 친구 양현이. 짐정리하면서 책 몇 권 주려고 내가 데려왔어.”




마른침을 삼킨 후에야 나는 겨우 입이 터졌다. 그나마 순이에게 시선을 고정해 가능했던 거짓말이었다.


이제껏 나는 단 한 번도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없었다. 딱히 어머니도 이유를 묻지 않으셨다. 내가 늘 혼자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신 탓이었다. 그런 가운에 느닷없는 친구의 방문은 매우 낯설고 어색한 순간이었다.


다만 단 한 사람, 주양현은 이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아, 저기 삼뫼골 뒤 떡집 아드님이요? 도련님이 말씀 많이 하셨잖아요.”




한쪽 눈이 없을지언정 순이는 눈치가 빨랐다. 아니, 그녀는 이미 주양현을 알고 있었다.



내 입에서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내 친구를.



문제는 어머니였다.


양현이를 향한 좀처럼 거두지 않는 매서운 눈빛이 행여 싸한 칼바람과 함께 신당으로 들어가 버리실까 조바심이 일었다. 두 말 필요 없이 당장에 녀석을 문 밖으로 내보내라는 신호였으니까.


간혹 점사를 보러 온 손님들 앞에서도 말없이 자리를 뜨곤 하셨던 어머니였다. 그리고 지금 역시나 무안해진 주양현은 눈치를 살피는 중이었다.




“…….”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졸지에 불청객이 된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을 내 친구에게 심어주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속내를 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어처구니없게 친구를 잃게 될까 싶은 조바심이 밀려왔다.


그런데 그때였다. 살짝 치마저고리를 들추며 주양현 앞으로 바짝 다가선 어머니가 뚫어져라 녀석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보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당황한 주양현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어떡하지……?’




미세하게 고개를 돌린 양현이가 나를 쳐다봤다. 누가 봐도 도움을 청하는 간절한 눈빛이었다. 순간 마룻바닥에 내려놓은 책 더미가 내 눈에 띄었다.




“큼! 저, 친구 집에 책 갖다 주고 들어올게요.”




그제야 마루를 내려온 내가 서둘러 신발을 신자 기다렸다는 듯 주양현이 책 더미를 묶은 노끈을 집어 들었다.




“왔으니 밥이나 묵고 가라. 순이야!”

“예.”

“퍼뜩 아궁이 불 놓고 소고기뭇국 좀 끓이라. 잡채에 육전도 좀 놓고, 돌돔 있제?”

“예. 있습니다.”

“같이 상에 올리라.”

“알겠습니다.”




말 끝나기가 무섭게 순이는 곧장 부엌으로, 어머니는 큰방 신당으로 들어가셨다.


그 와중에 나와 주양현은 멀뚱히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 중이었다.


어머니는 따로 양현이에게 말을 걸진 않으셨다. 그러나 분명 저녁을 먹고 가라 하셨다. 그것도 진수성찬을…… 내 생일상도 그렇게 받아본 적은 없었다.


처음이었다. 어머니 의중을 알 수 없는 저녁밥상은.




*




“엄마가 너 되게 마음에 들었나 봐.”

“그래? 뭐, 내 얼굴이 무던하게 생기긴 했지. 근데 네 어머니 되게 카리스마 있으시더라.”

“…….”




주양현이 본 어머니의 첫인상에 나는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작두 타는 무당 어머니에 대해 물어온 적 없는 녀석이었다. 어머니를 만난 후에도 여전히 편견이 없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섰다.




“근데 나 정말 저녁 먹고 가도 되는 거야?”

“당연하지. 여기서 놀고 있으면 순이가 부를 거야.”

“아까 그 젊은 여자가 순이라는 분이구나?!”

“어. 나보다 5살이나 많은데 늘 도련님이라고 한다니까. 부담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주양현은 벽에 걸린 액자 속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녹색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꽃다발을 든 나의 중학교 졸업사진이었다.




“그렇게 부르는 게 편한가 보지 뭐. 놔둬.”

“근데 넌, 우리 엄마 안 무섭냐?”

“인상이 좀 강해서 그렇지 엄하신 분 같진 않으시던데?”

“거짓말. 그럼 아까는 왜 그렇게 쥐새끼처럼 벌벌 떨었냐?”

“낯선 어른이 코앞까지 와서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어떻게 긴장을 안 해?! 가끔 우리 엄마도 그러는데 늘 잔소리 시전이야. 네 어머니는 잔소리도 거의 없으시다며.”




마치 부럽다는 얼굴로 주양현이 날 쳐다봤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늘 평범한 엄마를 원했던 내 묵은 소망이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솔직하기로 했다. 감추다 들키느니 민낯을 보여주는 게 덜 부끄럽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엄마, 소문난 무당인 건 알고 있지?!”

“알지 그럼.”

“그럼, 작두 타는 것도 알아? 접신도 하고 가끔은 빙의도 되는데.”

“정말? 능력 있으시다! 언제 나도 한 번 구경할 수 있으려나?”

“…….”




뜻밖의 반응에 나는 또 한 번 입을 다물었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한데 생각해 보니 주양현이 타인을 보는 방식은 늘 그러했다. 항상 상대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관점.


하다못해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놈의 철학이었다. 그 녀석 주변에 늘 친구들이 많은 이유였다.




“그래도 난, 손수 김치찌개 끓여주시는 네 어머니가 더 좋아.”

“더 좋은 엄마가 어디 있냐?! 여태껏 물심양면으로 키워주셨으면 다 좋은 엄마지.”

“아! 너 지금 나 때렸냐?!”




냉큼 꿀밤을 쥐어박고 피하는 주양현을 내가 똑같이 꿀밤을 때렸다. 녀석이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우준이 넌, 엄마가 무서워?”

“……나와 마주치면 늘 인상을 쓰셔. 그런데 정작 공부해라, 씻어라, 일찍 자라 같은…… 뭐 그런 잔소리조차 아예 없으시니까.”

“그만큼 널 존중한다는 의미 아니야?”

“그 무서운 얼굴을 보고도 너는 그런 생각이 드냐?! 딱 봐도 알아서 잘하라는 거지.”

“등 뒤에 회초리 숨기고 웃는 얼굴로 이리 와보라는 것보다 낫거든!”

“뭐?”




눈살을 찌푸리다 말고 나는 그만 웃어버렸다. 지 부모도 아닌데 편들어주는 녀석의 말이 왠지 싫지 않았다.




“너 밤낮없이 일한다고 나 잊으면 안 된다!”

“너야말로. 대학생활 신난다고 내 이름이나 까먹지 마.”

“내가 할 소리! 돈 좀 번다고 너나 유세 부리지 마!”

“나야 다 빚 갚는 건데 뭐. 아무튼, 방학 때 집에 내려오면 전화해.”

“그래. 밤새 술이나 마시자.”




그렇게 농담과 진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앞날을 응원한 주양현은 잘 차려진 저녁밥을 거하게 먹고는 양손 가득 책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갔다. 임금님 밥상이 부럽지 않았다며 순이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였다. 확실히 넉살이 좋은 녀석이었다.


따로 상을 들인 어머니는 굳이 나와 보지 않으셨다. 그런 어머니에게 양현이는 밖에서 큰 소리로 인사를 전한 후 대문을 나섰다.




*





갈림길에서 주양현과 헤어지고 돌아와 열린 빗장문 안으로 들어선 찰나였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신당에 있던 순이가 나왔다.




“도련님, 어머니께서 찾으십니다.”

“이 시간에, 나를?”




뜬금없는 호출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대학생활에 필요한 이야기야 엊그제 마무리했거니와 보통 저녁식사 이후 어머니는 줄곧 신당에 홀로 머무르시기 때문이었다.




“안 들어가십니까?”




재촉하는 순이에 나는 그녀를 내려다봤다. 어머니께서 왜 나를 부르시는지, 순이는 분명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순진한 외눈만 끔벅거리는 모양새가 이미 발을 뺀 눈치였다.




“들어가야지. 아참!”




뒤돌아선 순이를 내가 불러 세웠다.




“아까 저녁밥상 차리느라 고, 고생했다고.”

“……예?”

“큼! 친구 놈이 하도 칭찬하길래. 고, 고마워서.”




난생처음 건넨 감사인사에 순이가 처음으로 피식 웃음을 보이자 견딜 수 없는 어색함에 나는 시선을 피해버렸다.





‘하지 말 걸. 괜히 혹해가지고는…… 에이씨.’





살짝 후회가 밀려왔다. 물론 내켜서 한 건 아니었다. 사실 주양현, 그 녀석의 압력이 작용한 행동이었다. 순이가 나를 존중하는 만큼 나도 존중하라는 뜻이었다. 그다지 설득력은 없었다.


한데 “누가 알아? 그 한마디로 훗날, 순이 누나가 널 돕게 될지.” 이 말에 나는 설득되고 말았다.




“아까 그 친구분, 저쪽 목련나무 옆 떡집 아드님이시죠?”

“주양현을 알아?”

“모릅니다. 다만, 두 분 우정이 변치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네요.”




웬일로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술술 꺼내는 순이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이내 순이는 부엌으로, 나는 신당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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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드르르르륵


미닫이문을 열자 작은 교자상 앞에 앉아계신 어머니가 보였다. 멋들어진 매화나무가 그려진 병풍 앞이었다.


나는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 신당에 들어오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탓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음산한 기운과 촛불로만 빛을 밝힌 어수룩한 어둠이 나는 늘 불쾌했다.


안으로 발을 디딘 나는 오른편 단상 위, 계단처럼 쌓인 팔뚝만 한 신상들을 향해 가늘게 눈을 떴다. 일제히 나를 주시하는 기분 나쁜 눈빛이었다.


천장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종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드물게 밖에서 들려왔던 구슬픈 종소리의 근원이었다.




‘겁먹지 마 이우준. 별 거 아니야.’




이 침묵의 신경전에서 나는 주눅 들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어머니는 함구하셨지만 신당에 도사리는 망령들의 기운을 이미 알고 있는 탓이었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순이 덕분이었다.


대낮 마당을 쓸다가도…… 한아름 장작을 안고 부엌에 들어서다가도 종종 멈춰 선 순이었다. 그녀는 별안간 뚫어져라 신당을 노려보곤 했다. 간혹 빨간 기와지붕 위를 올려다보며 휘파람을 부는 일도 있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내가 물어보기라도 할양이면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곳곳에 잡귀가 바글바글하네요.”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다. 툇마루에 걸터앉은 순이가 왜 멍하니 감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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