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니가 주양현이 명줄을 가져오믄 된다.”
“네? 명줄을 가져오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가 되묻자 사발에 담긴 쌀 한 줌을 움켜쥔 어머니가 대뜸 상 위에 쌀을 내던졌다.
타닥타닥 탁탁탁!
마치 만개한 꽃처럼 흩어진 쌀알에 어머니가 시선을 고정하셨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시며.
나는 가만히 마른침을 삼켰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신당을 나갈 수도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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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든 어머니가 뚫어져라 나를 응시했다. 가늘게 뜬 눈이 흔들리고 파르르 얼굴을 떠는 모양새가, 접신이었다.
“주양현이를 죽이라. 그카고 니가 그 노마의 명줄을 꿀꺽 삼키믄 되는 기다. 쉽제?”
말끝에 어머니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키득키득 웃음을 보이셨다. 분명 내 어머니였다. 그러나 그 눈빛과 웃음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외, 외할머니?”
눈치를 살핀 내가 조심스레 입을 떼자 어머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아는 자잘한 잔병치레 하나 읍이 무병장수할 운이다.”
“양현……이가요?”
“으디 그뿌니가. 지금이야 빚에 허우적대지만서도 말년에는 넘치게 베풀믄서 살기다. 억씬 팔자를 가진 니하고는 길이 다른 아란 말이다.”
“…….”
주눅이 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살아계실 때도 늘 탐탁지 않은 얼굴로 나를 대하던 외할머니셨다. 그런데 접신으로 다시 뵌 할머니는 이번엔 말씀으로 나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셨다.
“니가 그 아의 운을 싹 다 가져온나.”
“다른 사람은…… 안 되는 겁니까?”
“또래에 고만한 관상을 가진 아를, 니가 데꼬올 수 있나?”
“…….”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7년 후면 죽을 팔자인 내가 살 수 있는, 분명 귀가 솔깃한 얘기였다. 하지만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살기 위해 주양현은 죽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명백한 살인이었다.
“그러니까 양현이는…… 성공한 인생을 산다는 거죠?”
한껏 풀 죽은 목소리에 혀를 찬 외할머니가 방울을 흔들자 곧 어머니 눈빛이 보였다.
“니가 죽는 이듬해부터 그 노마는 팔자가 필기다. 손대는 족족 돈이 홍수처럼 벌리고 이름 슥자도 날릴 기다. 허투루 살지 않으니 복이 새나가지 않고 누릴 만큼 누리다 호상 할 상이다.”
“…….”
“와, 부럽나?”
물어오는 어머니에 땅이 꺼질 듯 나는 한숨을 뱉어냈다.
워낙 열심히 사는 놈이라 그가 성공한다 한들 이상할 게 없었다. 이것저것 잘 먹는 데다 틈새 운동까지 빼놓지 않으니 어쩌면 무병장수도 당연한 결과였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늘 웃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딱하고 안쓰러웠다. 한데 관상이 그리 좋다 하니, 친구로서 분명 축하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속이 불편했다. 주양현 인생에 곧 황금기가 온다는 게 괜히 화가 났다. 딱하고 안쓰러운 처지가 어울리는 놈이었다. 아니, 그래야 했다.
단 한 번도 나는 그 녀석의 성공을 바란 적 없었으니까.
“……화가, 납니다.”
한참 만에 어렵게 입을 뗀 나를 어머니가 무표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셨다.
“우짤기가?”
“…….”
“니 결심에 따라 오늘 주양현이에게 차려준 밥상은 잔칫상이거나, 제사상이 될 기다.”
어머니 말씀에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유난했던 오늘의 저녁밥상은 그 숨은 목적이 있었던 거였다.
따지고 보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자 허물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진국이었다. 그 녀석의 성공을 바란 적은 없지만 멀어지길 바란 적도 없었다. 때문에 평소의 나라면 펄쩍 뛰며 화를 냈어야 했다.
그런데…… 내 입에서 어두운 진심이 튀어나왔다.
“어머니.”
“…….”
“저, 살고 싶습니다.”
“…….”
“살겠습니다.”
“됐다.”
그때였다. 신당 천장에 매달아 놓은 작은 종들이 연이어 잇따라 흔들거렸다. 그리고 곧 아침을 깨우는 새벽닭의 힘찬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
7년 후.
스물일곱, 대학 졸업식을 마치고 얼마 뒤 나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취업과 진로문제로 바쁜 친구들과 달리 나는 그 어떤 계획도 없었다. 금년 9월 그믐날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으니까.
7년 전 어머니로부터 내 사주를 듣고 난 후 그야말로 나는 아무렇게나 살았다.
학업보다는 노는 친구들과 어울렸고 수업은 빠질지언정 술자리는 빠짐없이 참석했다. 연애도 곧잘 했다. 양다리를 걸치다 종종 뺨을 맞기도 했지만.
방학이면 계절학기를 듣느라 고향에는 거의 내려가지 못했다. 휴학이나 유급은 어머니께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으니. 대신 어머니는 아낌없이 생활비를 보내주셨고 나는 그 돈으로 향락을 누렸다.
친구들은 늘 내 자취방에 머무르며 매일같이 놀거리를 물색했다. 내 출생의 비밀과 모친의 직업을 아는 친구는 없었다. 덩달아 뒤에서 수군거리는 놈도 없었다. 군대를 제외한 대학생활은 그야말로 내 세상이었다.
어쩌다 고향에 내려갈 때면 나는 주양현을 불러내 술을 마셨다. 고작해야 일 년에 두어 번 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녀석을 볼 때마다 나는 내심 열등감을 느꼈다.
어느새 탄탄해진 몸이며 까맣게 그을린 건강한 피부, 태평양 같이 넓어진 어깨가 술에 찌든 칙칙한 나와는 대조적인 탓이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주눅이 든 건 따로 있었다. 열정이 살아있는 눈빛과 자신감 넘치는 입매, 뭔가 어른스러워진 아우라였다.
주양현에게 달라진 환경은 없었다. 그저 집과 직장을 오가는 것이 녀석의 주된 루틴이었음에도 그놈은 분명 변화하고 있었다.
녀석은 빚이 조금씩 줄고 있다며 기뻐했다. 차량정비도 곧잘 한다며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작가가 되겠다는 꿈 또한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아직 꺼내보지도 못한 까마득한 꿈을……. 그럼에도 놈의 얼굴은 세상 부러울 게 없어 보였다.
그럴 때면 나는 괜히 비싼 안주를 시키고 술값을 계산했다. 종종 운동화나 옷을 사주기도 했다. 내가 그놈보다 늘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는 마음으로 소리쳤다.
내가 단명할 팔자만 아니었어도 너보다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나는 나를 합리화시키며 그 녀석의 수고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비웃곤 했었다.
물론 하나뿐인 친구에게 반감은 없었다. 주양현은 지옥 같던 내 학창 시절을 구원해 준 한 줄기 빛과 다름없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처음에는 녀석의 얼굴을 보는 게 불편했다. 7년 후면 죽는다는 것도 모른 채 마냥 해맑기만 한 면상을 차마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세상을 경험할수록 나는 뻔뻔해졌다. 그나마 머물렀던 일말의 죄책감조차 한낱 작은 먼지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 나는 이렇게 다시 고향땅을 밟았다.
드디어 운명의 해가 온 거였다. 덩달아 느슨했던 마음이 비장해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거사를 앞둔 투사의 의지였다.
집 앞, 열린 빗장문 사이로 들어서자 부엌에서 뛰쳐나온 순이가 냉큼 짐가방을 받아 들었다. 그런데 할 말이 있는지 그녀가 머뭇거렸다.
“저기, 도련님!”
방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나는 걸음을 멈췄다. 식사 때를 제하고 엔간해서는 먼저 입을 떼지 않는 순이었다.
“왜, 어머니가 나 찾으셔?”
“아닙니다. 다만…….”
말끝은 흐렸으나 단호한 눈빛으로 순이가 나를 올려다봤다.
“주제넘지만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이길래 그렇게 뜸을 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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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절대 누군가의 앞날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설령, 혼령이라도 말이지요.”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점사가 늘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
눈살을 찌푸린 채 나는 순이를 노려봤다.
7년 전, 신당에서 어머니와 내가 나누었던 대화를 엿들은 게 틀림없었다.
“지금 그 말은, 어머니 점괘가 틀렸다는 거야?”
“그럴 리가요. 전 다만 도련님 사주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스물일곱에 요절할 팔자가 나쁘지 않다니, 혹시 실성했어?”
덤빌 듯 내가 사나운 말투를 던졌다. 싸울 의향도 있었다. 그런데 순간 순이가 빗장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서둘러 한마디를 속삭였다.
“귀인을 잃지 마십시오.”
그때였다. 빗장문 사이로 어머니가 들어섰다.
“왔나.”
“예. 어디 다녀오세요?”
“니 외할매 산소 다녀오는 길이다.”
“저 오면 같이 가지 그러셨어요.”
“안 그래도 그럴 참이다. 쉬그라.”
6개월 만에 만난 어머니는 별말씀 없이 신당으로 들어가셨다. 나도 곧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순이는 이미 모습을 감춘 후였다.
***
“뭐? 빚을 벌써 다 갚았다고?”
2년 만에 만난 주양현은 한껏 밝아보였다. 영원히 짊어질 것만 같았던 거대한 짐을 비로소 어깨에서 내려놨다는 홀가분함이었다.
“응. 올해 스물일곱이니까, 딱 12년 걸렸네.”
“12년? 고생했다.”
새삼 길었던 세월에 놀란 내가 녀석을 격려했다. 본인이 진 빚도 아닌데 그 오랜 세월을 참 구김살 없이 버텼구나 싶었다.
단명할 내 팔자만 아니라면 끝까지 곁에 두어도 괜찮을, 아까운 놈이었다.
“짬밥에 자격증도 있겠다, 너도 카센터 하나 차라지 그래?”
“그것도 좋은데 이제 본격적으로 글 좀 써보려고.”
“글? 너 설마, 아직도 그 꿈 갖고 있어?”
휘둥그레진 눈으로 묻는 내게 당연하다는 듯 주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량정비도 적성에 맞긴 한데 아직은 상상하고 끄적이는 게 더 재밌어.”
“그래서, 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써보려고?”
“아니, 일은 계속해야지. 지난달에 처음 적금 들어갔거든.”
“일하면서 어떻게 작가가 되겠다는 거야?”
되받는 내 말투는 다분히 회의적이었다.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시간을 쏟지도 않으면서 무슨 글을 쓰겠다는 건지…… 더군다나 요즘 세상에 작가는 그야말로 배고픈 직업이었다. 그럼에도 해맑은 얼굴이 촌구석에만 있다 보니 아직 현실의 벽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실은 열아홉 살 때부터 소설은 계속 써왔어. 이제 잘 다듬어서 연말 공모전에 넣어보려고.”
“양현이 너, 계획이 다 있었구나?!”
“내 사정이 어떻든 시간은 똑같이 주어졌으니까. 결과를 떠나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될 것 같더라고.”
멋쩍게 웃으면서도 비장한 눈빛이 나를 압도한 순간이었다. 27살의 주양현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