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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굿판이 열렸다

[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by 해달

“정말? 신당 안에서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그렇다니까. 근데 굿판은 더해. 너도 알다시피 우리 엄마가 작두 타는 무당이잖아. 거기서 얼마나 이상한 일이 많은지, 직접 보면 아마 깜짝 놀랄걸! 정말 기괴하거든.”




마치 비밀인 양 내가 목소리를 낮추자 당황한 주양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과거 모친이 무당인 게 정말 싫다던 내 말을 기억한 탓이었다. 그랬던 내가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니 어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한 듯했다.




“굿판에서 악사가 장단을 맞추고 양손에 부채와 방울을 쥔 무격(巫覡)이 도약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접신이 일어나는데, 한 번은 재가집에게 빙의된 일이 있었어.”




아랑곳없이 말을 이은 내가 힐끗 녀석을 살폈다. 눈치를 보면서도 바짝 귀를 세운 것이, 이미 덫에 걸려든 토끼였다.




“우물에 빠져 죽은 9살 남자아이였는데, 글쎄 재가집 눈이 하얗게 뒤집히더니 추워죽겠다며 잔뜩 웅크린 몸을 데굴데굴 구르는 거야. 그 와중에 어찌나 기괴한 비명을 지르던지…… 우리 엄마가 한참을 달래 겨우 보냈다니까.”




마치 어제 일인 양 내가 신나게 떠들자 말이 알아듣기 힘들었는지 주양현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무격은 무당이라는 걸 알겠는데, 재가집은 누구야?”

“굿을 의뢰한 사람.”

“아…….”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본다며. 이런 초자연적인현상을 소재로 미스터리 소설도 한번 써봐.”

“…….”




주양현은 즉답을 피했다. 제법 진지한 얼굴이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나를 실망시키는 한마디가 들려왔다.




“흥미롭긴 한데, 내가 쓴 소설들도 아직 공모조차 안 했어.”




발을 넣으려던 주양현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아직 작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겸손함이었다. 덩달아 조급해진 건 나였다. 집을 나서며 어머니와 했던 굳은 약속 때문이었다.





「“오늘이 음력 9월 그믐이다. 안 잊었제?”

“네.”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 알긋나?”

“……걱정 마세요.”」





“짜식! 진지하기는. 누가 지금 써보래?!”

“너야말로 왜 이렇게 진지하냐?! 평소에는 내가 소설을 쓰든 말든 관심도 없던 놈이.”

“아 그거야…….”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간 작가가 꿈이라는 녀석의 말에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 명줄이 걸린 일이었다.




“실은, 오늘 우리 집에서 굿판이 열리거든.”

“너희 집에서?”

“어. 상산거리라고, 쉽게 말하면 산신을 모시는 굿거리야. 최영 장군 알지?”

“알지. 고려 후기 명장이잖아.”

“맞아. 상산거리는 많은 산신 가운데 최영 장군을 모시는 굿거리야. 그래서 덕물산 산신 최영장군을 모시는 거리라고도 해.”

“너 되게 박식하다! 근데 오늘 너희 집에서 그 상산거리라는 걸 한다는 거야?”

“어. 오늘 밤 우리 집 마당에서 열릴 거야.”

“와…….”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는 주양현에 나는 어깨가 으쓱했다. 그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무당집 자식이란 사실이 처음으로 쓸모 있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아침부터 순이가 분주하길래 잠깐 도와주다 갑자기 떠올랐어. 과장 조금 보태서 소설로 쓰면 재밌겠다 싶어서. 솔깃할만한 소재하면 샤머니즘이잖아.”

“아, 이제 알겠네.”




설명이 자연스러웠는지 주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틈틈이 공부하고 연습하길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오늘 우리 집 가서 굿거리 구경 안 할래?”

“갑자기?”

“직접 보면 느낌도 살리고 글 쓸 때 실감 나게 묘사할 수 있잖아.”

“어머니가 싫어하시지 않을까? 나도 그런 자린 좀 생소하기도 하고…….”

“실제로 보면 되게 재밌어. 그리고 복잔이라고, 사람들한테 술잔을 돌리면서 신의 축복도 내리거든.”

“…….”




역시나 즉답을 피한 주양현이 어깨에 멘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정확히는 가방 속, 성경책이었다. 이제 막 발을 담근 신앙이 신경 쓰이는 모양새였다. 쐐기가 필요했다.




“우리 집에서 굿거리 하는 거 흔치 않아. 더군다나 오늘은 엄마가 작두도 탈거라 하셨는데, 오늘 놓치면 너 진짜 후회한다.”


.

.


“……복잔은 안 받아도 되는 거지?”

“어? 그럼! 구경만 해도 돼.”




잠시 후, 든든히 배를 채운 나는 주양현과 함께 식당을 나왔다. 시내 서점에서 시간을 보낸 후 우리 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7년간 공들여온 먹잇감이 덫에 걸려든 순간이었다.




***




스-윽!




“윽! 우…… 우준……아.”




사방으로 튄 피를 주체하지 못한 채 목을 부여잡은 주양현이 처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금 전, 주양현과 함께 내가 집에 들어서자 순이는 조용히 빗장문을 걸어 잠갔다.


집안에는 어머니와 순이 그리고 악사, 이렇게 셋뿐이었다.


그 사이 남색 장군치마 위에 구군복과 남철릭을 껴입고 술띠를 맨 어머니가 머리에 홍갓을 쓴 채 양손에 무언가를 쥐었다.


왼손에는 삼지창, 오른손에 든 건 언월도(偃月刀: 자루 위에 달린 반달모양의 칼)였다.


멍석 위에 깔아놓은 돗자리에 올라선 어머니 앞쪽으로는 멀리 청악산을 향해 흰떡시루와 삼색나물, 오색실과 세 개의 술잔, 수북이 백미가 올려진 굿상이 차려져있었다.


주양현과 내가 담벼락을 등지고 바닥에 앉은 것도 잠시, 옥수(玉水: 맑은 샘물)를 바치고 절을 올린 어머니가 삼지창과 언월도를 든 양팔을 벌렸다.



쿵! 덕쿵!



힘차게 내리친 악사의 장구소리가 하늘 높이 울렸다. 그러자 사뿐사뿐 사방을 거닐던 어머니가 방방 뛰다니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

.



주양현은 넋을 놓고 바라보는 중이었다. 익숙할 법도 한 나조차도 신기한 광경이긴 했다. 굿거리를 할 때면 절뚝이던 어머니의 오른 다리는 신기하리만큼 멀쩡했다.




덩덕쿵 덩덕쿵! 덩덕덕덕쿵!




악사의 장단에 맞춘 어머니의 현란한 춤사위가 점점 화려해졌다. 덩달아 손에 든 삼지창과 언월도가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장구에 이은 요란한 꽹과리와 피리소리가 구천을 떠다니는 망자를 부르는 중이었다.


어느새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어때? 직접 보니까 실감 나지?”




눈귀가 쉴 틈 없는 와중에 내가 주양현에게 물었다.




“어? 어. 네 설명 듣고 저 행위 하나하나에 전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신기해.”

“그렇다니까! 이제 곧 어머니가 공수를 하실 거야.”

“공수? 그게 뭔데?”

“신의 소리라고, 무당이 죽은 사람의 넋이 하는 말을 대신 전하는 거야.”

“아…….”




설명을 듣는 내내 주양현은 어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니,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랬다. 앞에 놓인 굿상이 자신의 제사상이라는 것을 놈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한바탕 현란한 춤사위가 지나간 후였다.




“눈 감그라.”




별안간 동작을 멈춘 어머니 한마디에 나를 비롯한 주양현과 순이가 눈을 감았다.




“안산은 여덟에 밧산은 열세위라. 일굽지 명산에 제불지 제천이라 …… 덕물산에 최영장군 아니시리.”




공수를 읊조린 어머니가 악사의 장단에 맞춰 춤사위를 던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가볍게 어깨를 건드린 무언가에 눈을 뜨니 어머니가 내게 눈짓을 보내셨다. 곧 의식이 시작될 거라는 신호였다.




“…….”




단단히 마음을 먹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언월도를 쥐고 있던 손을 뻗은 어머니가 가차 없이 주양현의 목을 그어버렸다.



스-윽!



그때까지 주양현은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그사이 실눈을 뜬 순이와 나만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을 뿐.


곧 날카로운 검이 지나간 자리에서 분수처럼 피가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두 눈을 번쩍 뜬 주양현이 급히 손바닥을 겹쳐 목을 부여잡았다. 물론 소용없는 일이었다.




“우…… 우주……나…….”




도움을 청하는 주양현의 두 눈을 못 본 척, 나는 외면했다. 가득 눈물이 고인 사슴 같은 눈망울을 차마 마주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나를 원망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저, 이 상황을 이해시켜 달라는 간절함이었다.


멀찍이 떨어진 나는 눈물을 훔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미 벌어진 일, 독해져야만 했다.




“순아 모하노?! 퍼뜩 움직이지 않코!”

“……예? 예!”




한쪽에서 무릎을 꿇은 채 넋을 잃었던 순이가 그제야 준비해 뒀던 함지박을 들고서는 악사가 담벼락에 끌어다 앉혀놓은 주양현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 사이 축 쳐진 주양현의 두 팔은 이미 땅바닥에 붙어있었다. 금세 창백해진 얼굴도 조금씩 옆으로 기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반쯤 감긴 눈꺼풀 속, 초점을 잃어가는 눈동자에는 여전히 내가 담겨 있었다.


그새 자리를 잡고 앉은 순이가 조심스레 피가 쏟아지는 녀석의 목 언저리에 함지박을 갖다 댔다. 차마 녀석과 얼굴을 마주할 자신은 없었는지 고개를 돌린 순이었다.


피를 받는 내내 그녀는 말이 없었다. 다만 그 어깨는 분명 들썩이고 있었다.


나는 죽어가는 내 친구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녀석이 죽어야 하는 이유도…… 미안하다는 말도 건네지 않았다. 용서를 구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는 탓이었다.


곧 순이가 어머니 앞에 함지박을 내밀었다. 짧은 시간 제법 고인 핏물이 상처의 깊이를 가늠케 했다.




“퍼뜩 마시라.”




그때였다. 함지박을 건네받은 어머니가 내 앞에 그것을 내밀었다.




“예? 이, 이 걸요?”

“눈 딱 깜고 서너 모금이믄 된다.”

“…….”




인상을 쓴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전에 어머니가 귀띔하시지 않은 의식인 데다 안 그래도 마당 가운데 흥건한 피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게 구역질이 나던 중이었다.




“……꼭, 마셔야 해요?”

“와, 니도 저거 따라가고 싶나?”




어머니에게 머뭇거림이란 없었다. 턱 밑까지 함지박을 들이민 어머니는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압박하셨다. 내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의미였다.




“후우…….”




곧 한 손으로 코를 비틀어 막은 내가 함지박을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




“우웩! 켁! 켁!”




세 번에 걸쳐 꿀꺽 핏물을 삼킨 나는 함지박을 내던지며 구역질을 했다. 입안 가득 끈적이는 피비린내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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