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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사건의 시작 (2)

[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by 해달

문지방을 넘어선 내가 뒤돌아 문을 닫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왔나. 앉그라.”




나는 조용히 한쪽 벽에 쌓여있는 방석을 가져와 어머니와 마주 앉았다. 여의주를 문 청룡이 가운데 수놓아진 빨간 실크방석이었다.




“…….”

“…….”




괜한 긴장감에 나는 옷매무새를 어루만졌다. 뭔가 일반적이지 않은 기운에 위압감이 느껴진 탓이었다.


큰방 신당은 평소 지역유지나 유명인, 또는 큰일을 앞둔 사람들이 비밀리에 찾는 공간이었다.


다만 간혹 사정이 급한 마을주민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산을 내려오시곤 했다.


주민들 손에 들린 건 기껏해야 쌀 한 되 , 생 들깨, 고구마 같은 작물이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기꺼이 신당 방석을 내주셨다. 한밤 중 요란한 굿판에도 마을사람들이 조용한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어머니에게서 내 사주팔자를 듣지 못했다. 내가 물은 적도 없거니와 어머니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물론 딱히 내 사주에 관심은 없었다. 공공연한 출생의 비밀을 듣고 자란 터라 애초에 어떤 복도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친구는, 갔나?”

“네. 배웅하고 오는 길이에요.”

“그 아, 이름이 모가?”

“……주, 양현이요.”

“주양현이?”

“네.”




이름을 확인한 어머니는 가만히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는 한참을 말이 없으셨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껏 어머니는 내게 친구 이름을 물어온 적이 없었다. 아니, 내게 친구가 있는지조차 묻지 않았다.


내가 학교에 가건 말건, 놀림을 받든 말든 어머니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학교를 다니는 18년 내내 한결같았다. 그랬던 어머니가 이제와 낯선 신당까지 나를 불러들여 친구 이름을 묻는다고?



혹 주양현에게 귀신이라도 붙은 건가……?



순간 나는 녀석을 괜히 집에 데려왔나 싶었지만 걱정이 앞서진 않았다. 어머니 성에 차지 않았다면 귀한 양식도 내주지 않으셨을 테니.


그때였다. 지그시 눈을 뜬 어머니가 가만히 바깥을 살피시더니 이내 내게 시선을 고정하셨다.




“지금부터 이 애미가 하는 말, 똑똑히 잘 듣그라.”

“……네.”

“우준이 니는 말이다, 곧 죽을 기다.”

“……네?”




깜짝 놀란 나머지 줄곧 방바닥을 향하던 내 시선이 어머니와 마주쳤다.


소름이 돋을 만큼 용한 점괘에 tv에 나오는 유명인들도 찾아오는 작두무당 이을녀였다. 그럼에도 아들인 나는 여태껏 한 번도 어머니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도랑에 빠져 죽을 뻔했던 일도, 시내에 나갔다 공사장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이마가 깨진 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어머니는 조심하라는 가벼운 주의조차 내게 보태지 않으셨다. 심지어는 동네 불량배들에게 얻어터지고 온 날도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두고 나는 ‘친절한 방관자’라 명명했었다. 나를 낳고 키워주시긴 하지만 나를 버린 아버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그저 비정한 생모라는 낙인을 피해 날 거둔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용한 무당에게서 내 앞날을 들었다. 그것도 하필 더럽게 재수 없는 명줄을 달고 태어난 내 운명을.




“이제껏 내가 니를 내비 둔 이유다. 그간 섭섭했제?”




말씀 뒤로 어머니의 짧은 탄식이 들려왔다. 처음 느낀 모정이었다. 순간 나는 무덤까지 품고 갈 줄 알았던 깊은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제가…… 언제 죽을 운명입니까?”

“스물일곱, 음력 9월 그믐날이다.”

“스물일곱이라…… 어찌 죽는답니까?”

“내도 거까지는 모른다. 허나 피를 많이 내는 것이, 상처가 깊다.”

“…….”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쨌든 죽는다는데 궁금할 게 있나 싶었다. 화가 나진 않았다.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죽을 날을 받아서인지 되레 담담했다.




“뭐, 잘됐네요. 어차피 사람들 뒷담화에 최적화된 태생이라 안 그래도 대충 살았는데…… 일찍 간다 하니 더 막살아도 되겠네요.”

“…….”




난생처음이었다. 어머니 앞에서 이렇게 대들어 본 건.


어머니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으셨다. 그저 요절한다는 팔자에 무리도 아니라는 듯 가만히 눈을 감으셨을 뿐.





‘대학 입학선물이 고작 죽을 날짜라니…….’





허탈한 마음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그만 빌어먹을 이 신당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두 번 다시는 고향땅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하지만 나는 곧 신당을 나가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털썩.




다리가 저린 건 아니었다. 그런데 좀처럼 일어나질 못했다. 바닥에 손을 짚고서라도 일어나려 안간힘을 썼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털썩. 털썩!




그렇게 대여섯 번을 주저앉은 후였다. 뜨거워진 눈시울 사이로 기어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냥 모르고 살다 죽게 내버려 두시지, 왜 말씀하셨어요?!”

“…….”

“죽을 날을 받아놓으면 제가 남은 생이라도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 거라 기대하셨어요?!”

“…….”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버지 닮아 아무 재주도 없다는 제가 뭘 할 수 있는데요?!”

“…….”




사춘기소년 같은 나의 거친 반항기가 신당 가득 울려 퍼지자 어디선가 깔깔거리며 나를 조롱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잡귀들이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무당인 어미 손에서 이렇다 할 재주도 없이 주변의 수군거림에 눈과 귀를 닫으며 버텨온 세월이었다.


애초에 외할머니는 내게 아비를 닮아 재주가 없다 못 박으셨다. 그런데 명줄마저 아비를 닮은 운명이라니…… 정말 더럽게 재수 없는 팔자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더 이상 어머니가 어렵지 않았다. 내겐 그저 장난감 같은 저 신상들의 눈빛도, 귀를 간지럽히는 사람들의 뒷담화도 두렵지 않았다.




쨍그랑!




바닥을 기다시피 한 내가 손을 뻗어 단상 위에 놓인 신상을 바닥에 내던졌다.




“어머니가 매일같이 지극정성 모시는 신들은 대체 뭐 하는 거예요?! 저 하나 살릴 능력도 없는 신들인가요?! 아니면, 어머니가 원하신 거예요?!”

“…….”




쨍그랑! 쨍그랑!




“쳇! 신은 무슨. 못생긴 인형주제에…… 사람 살리는 능력도 없으면서 이딴 게 무슨 신이야?!”




거침없는 내 손끝에 신상들이 우르르 무너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터진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화를 진정시킬 마음도 없었다. 되레 씩씩거리며 분노의 희생양이 되어 줄 무언가를 계속 찾는 중이었다.


천천히 눈을 뜬 어머니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셨다. 어떤 안타까움이나 절절한 모정이 느껴지는 눈빛은 아니었다. 하물며 신당을 엉망으로 만든 것에 대한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저 먼저 세상 뜰 놈, 일찍 정이나 떼자는 모양새였다.




“어머니 점괘가 틀렸다는 걸, 제가 증명할 겁니다. 지금 당장.”




차갑기만 한 어머니 눈빛에 반항을 넘어 내 운명을 거부하기로 결심한 나는 이미 난장판이 된 바닥 가운데 흩어진 유리조각을 집어 들었다. 칼끝보다 뾰족한 도깨비신상 조각이었다.


여전히 두 다리는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발목을 움켜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젠 상관없었다.




“7년이나 기다릴 거 뭐 있어요. 그래봐야 시궁창에서 뒹굴다 뒤질 걸…….”




입을 삐죽거린 내가 보란 듯 유리조각을 높이 들어 올렸다.




“지금 제가 죽어버리면 어머니 점괘도, 제 앞날을 보여준 귀신도 다 틀린 거니까.”

“…….”

“제가 죽으면 마을사람들도 수군거리겠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자식 죽는 것도 몰랐냐고 말이죠.”

“…….”




나는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냈다. 죽으려 마음먹으니 못할 말이 없었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나를 말리려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다시 천천히 눈을 감으셨을 뿐.


서운하진 않았다. 되레 측은함이 밀려왔다.


어머니 나이 이제 겨우 마흔이었다. 평생 신당에만 갇혀 세월을 보내기에는 아까운…….




“이제 어머니도 무복 벗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세요. 저딴 잡신들 오매불망 떠받들어봤자 세월만 갉아먹으니까.”




말이 성인이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철부지였다. 그런 내가 모친에게 건방진 조언을 했다. 하지만 이 순간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몸, 까짓 거 할 말은 하고 죽자는 다짐이었다.




“어머니 앞에서 죽는다고 저를 불효자라 생각진 마세요. 죽어서는 어머니 근처에 얼씬도 안 할 테니까요.”




손에 든 유리조각을 목에 대자 부들부들 손이 떨려왔다. 날카로운 유리에 살점이 베일 고통이 벌써부터 나를 옥죄어왔다.




“다했나?”




그때였다. 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도록 내버려 두실 것만 같았던 어머니가 입을 떼셨다.




“그래 싸지르니, 니 속이 시원하나?”

“제가 지금 죽는다는데,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않다.”

“제가 어머니 인생에 혹이라서요?”

“쯧쯧, 못난 놈. 니는 절대 못 죽을 거 안다.”

“…….”

“니가 참말로 죽을락 캤으믄 마 쓰잘데기 읍이 지껄이지 않코 행동이 앞슷것지. 안 그르나?”

“…….”




무안함에 나는 애써 시선을 회피했다. 어머니는 애초에 내 속을 꿰뚫어 보신 거였다.




“에이씨! 그럼 이 다리라도 성하게 해주시든가요! 나가서 양잿물이라도 마시고 콱 죽어버리게!”

“쯧쯧, 이래서 니가 주양현이를 못 따라가는 기다.”




연신 혀를 차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어머니에 내가 발끈했다.




“여기서 주양현이 왜 나오는데요?! 언제부터 제 친구한테 관심 있었다고 비교하시는 거냐고요!”

“…….”




날 선 내 눈빛이 어머니와 마주쳤다. 뜬금없이 등장한 이름이었다. 곧 죽는다는 것도 억울한데 비교라니…… 한심하게 나를 바라보시는 어머니에 나는 서러움이 폭발했다.




“아, 그래서 양현이한테 그런 진수성찬을 내주신 거였어요? 저 죽으면 양자라도 삼으시려고요?!”




휘이익-!



때마침 2월의 세찬 겨울바람에 문지방이 흔들거렸다. 그 와중에 나는 새빨개진 눈으로 씩씩거리는 중이었다. 내 인생 처음, 정면으로 어머니께 도발한 날이었다.




“우준아.”

“…….”

“니, 살고 싶나?”

“…….”


.

.


“주양현이.”




순간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또다시 등장한 그 이름……. 뭔가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내가 신당에 들어선 순간부터 주양현에 대해 물어오셨다.




“……양현, 이요?”

“그래. 니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주양현이다.”

“주양현이, 절 살릴 수 있다고요? 어떻게요?”




다급한 마음에 절로 내 상체가 기울었다. 하나뿐인 내 친구가 날 살려만 준다면 평생 형님으로 모실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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