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야 이우준!”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앞으로 다가왔다.
“너 이우준 맞지?! 맞네.”
“…….”
내 앞에 선 그놈은 덕지덕지 기름때가 묻은 얼굴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주양현이었다.
“여기서 만나다니, 반갑다!”
“…….”
“근데, 넌 왜 그렇게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냐?”
침묵으로 일관하던 나는 순간 한발 뒤로 물러섰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에 구겨 넣은 직후였다.
검은색 볼캡을 거꾸로 쓰고 남색 작업복을 입은 주양현 손에는 연장이 들려있었다. 그러나 내가 당황한 건 그 녀석 손에 들린 무기 때문이 아니었다.
“…….”
나는 반가워하는 주양현을 아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찰지게 욕설을 퍼부으며 꺼지라고 했을 테지만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악에 받친 사나운 내 눈빛에서 ‘두려움’을 읽은 녀석의 말 때문이었다.
“난 저기 카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어. 아버지 돌아가시고 떡 장사하는 엄마만으로는 생활이 힘들거든.”
“…….”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인사는커녕 묻지도 않은 가정사이기에 이대로 녀석이 가버려도 상관없다는 나름의 의사표시였다.
그런데, 주양현이 다시 내게 손을 내밀었다.
“곧 있으면 나 일 끝나는데, 약속 없으면 기다렸다 같이 집에 가자. 나도 너희 집 근처에 살거든. 좀 이따 보자!”
그 녀석의 일방적 약속이었다. 하여 나는 내 갈 길을 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주양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국민학교 4학년 이후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
집으로 가는 내내 대화를 이끈 건 주양현이었다. 아니, 그 녀석만 떠들었다.
나는 이렇다 할 추임새도 감정표현도 없이 입을 다물었다. 옆에 또래 친구가 함께 걷는다는 게 얼떨떨했다. 아직은 녀석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였다.
살갑게 다가와 말을 붙이고는 며칠 후 돌변하는 악마의 씨앗들을 그간 수없이 봐왔으니까.
한데 이 녀석은 밸도 없는 건지, 나의 무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굳이 내 속내를 캐내려 어쭙잖은 요령을 부리지도 않았다. 다만 그저 일상 속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뱉어냈다.
18살, 녀석의 인생파노라마는 대략 이러했다.
만물트럭 장사를 하시던 아버지가 어느 날 느닷없이 심마니가 되겠다며 장사를 접었다고 했다. 그렇게 서울을 떠나 정착한 곳이 바로 여기, 청악산이 있는 문경읍이었다.
하지만 심마니로 떼돈을 벌겠다던 야심찬 부친의 꿈은 안타깝게도 실현되지 못했다고 했다.
불안정한 수입에 떡을 팔아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던 아내와 아들을 남겨둔 채, 그만 산에서 낙사한 거였다. 당시 주양현 나이 15살이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정신없이 장례를 치른 엄마는 마냥 주저앉아 슬퍼할 새도 없었어. 밤낮없이 빚쟁이들이 찾아왔거든. 알고 보니 아빠가 장사를 하며 친구 보증을 잘못 섰다가 큰 빚을 졌더라고.”
주양현이 소일거리를 찾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고 했다.
“원래는 자퇴하려고 했는데 엄마 반대가 심해서 고등학교 졸업장까지는 받기로 약속했어. 근데 공고를 알아보니까 학교가 너무 멀더라고. 그래서 포기했어. 빚쟁이에 시달리는 엄마를 혼자 둘 수가 없어서.”
나는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별난 놈이라는 생각이었다.
그사이 마을에 들어섰다. 갈림길이었다.
“너희 집은 저쪽이지? 우리 집은 이쪽 길이야.”
“…….”
“종종 심심하면 저녁때 아까 그 카센터 앞에서 기다려. 내가 너보다 공부는 못하지만 쫌 재밌거든. 내일 학교에서 보자!”
두 손을 흔들며 돌아서는 순간까지 주양현은 시종일관 밝은 얼굴이었다. 그제야 나는 무거웠던 입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미친놈.”
***
주양현과 내가 어떻게 그리도 빨리 친해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학교를 다니고 일상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나는 녀석과 절친이 되어있었다.
내가 사생아든 작두를 타는 무당의 아들이든 간에 주양현은 개의치 않았다. 딱히 물어오지도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 녀석의 관심사는 내 배경이 아니었다. 내가 품고 있는 꿈과 미래였다.
“근데 넌 문경토박이라면서 사투리를 거의 안 쓰네?”
“언젠가는 고향을 떠날 거거든.”
“서울에 올라가려고?”
“그야 모르지. 넌? 학교 졸업하면 카센터에서 일할 거야?”
“일단은. 빚부터 갚아야 하니까.”
순간 걸음을 멈춘 내가 주양현을 돌아봤다.
“너, 다른 계획이 있구나?!”
“음…….”
머뭇머뭇하는 게 아직은 먼 이야기인 듯했다. 그러나 그 입가에는 이미 꿈이 실려 있었다.
“나 실은…… 소설작가가 꿈이야.”
“……소설, 작가?”
조금 뜬금없다 싶었다. 교실에서 가만히 책 읽는 꼴을 본 적 없는 놈이었다. 쉬는 시간을 틈타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거나 몰래 다가와 장난을 치는 게 녀석의 주특기였다.
물론 공부도 못했다. 그나마 국어성적은 곧잘 나오긴 했지만 연필보다는 연장 잡는 것을 더 좋아하는 주양현이었다. 웬만한 건 그놈 손을 거쳐 기사회생했다. 카센터 형들에게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며 신나하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불현듯 내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가 떠올랐다.
5월 교내백일장에서 산문을 써낸 주양현이 금상을 받은 거였다. 나는 시작도 못한 글짓기를 15분 만에 끝낸 녀석은 따분한 얼굴로 나를 기다렸었다.
“나는 네가 기계 다루는 걸 좋아해서 그쪽으로 진로를 잡은 줄 알았는데, 의외네.”
“어릴 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면 엄마가 늘 중고 책을 사 오셨어. 동화책, 만화책, 이솝우화 시리즈 같은…….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갖고 놀게 없다 보니 자연스레 손이 가더라고.”
이어진 녀석의 말에서 꿈의 동기가 나왔다. 책 속에 펼쳐진 판타지 세상이 어린아이 마음에 씨앗을 뿌린 거였다.
“처음에는 심심해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공책에 끄적였었어. 근데 언젠가부터 그게 너무 재밌더라고.”
멋쩍은지 주양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배시시 웃었다.
물론 나는 단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길이었다. 하여 그러려니 응원해 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순간, 나는 그 녀석이 부러웠다. 마치 텅 비어있는 듯 내 속에는 그 어떤 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된 게 혹 외할머니 때문인가 싶어 원망스럽기도 했다. 어린 시절 아비를 닮아 재주가 없겠다는 할머니 말씀이 마음 깊이 뿌리박힌 탓이었다. 주양현과 달리 내 안에는 원망의 씨앗이 뿌려진 거였다.
그렇게 그 녀석과 나는 서로 다른 씨앗을 품은 채 고3을 맞이했다.
***
내가 처음 주양현을 우리 집에 데려간 건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친 2월 무렵이었다.
경기도 소재의 한 대학교 국문과에 입학을 앞두고 있던 나는 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기숙사에 필요한 짐도 챙길 겸 방 정리를 하다 주양현이 좋아할 법한 책이 꽤 나왔기 때문이었다.
말이 중고지, 표지도 들추지 않은 새 책이었다. 물론 순이이게는 조금 미안했다. 그간 그녀가 시내에 나갈 때마다 사들고 온 책들이었으니까.
주양현은 종종 나를 그의 집으로 데려갔었다. 대문도 어설픈, 볼품없는 초가집이었지만 녀석에게 부끄러움이란 없었다.
간혹 주양현 모친을 마주할 때면 나는 어김없이 저녁밥을 얻어먹곤 했었다. 퉁퉁 붓고 갈라진 손일지언정 아주머니 음식솜씨는 일품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콩나물무침과 비듬나물이 그렇게 꿀맛에다 김치찌개 하나면 밥 세 그릇도 거뜬히 비웠으니까.
고슬고슬한 쌀보리밥은 또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내가 있는 날이면 아주머니는 특별히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를 두 배로 넣어주셨다.
“들어와. 여기가 우리 집이야.”
“우와! 마당이 꼭 그림 같다! 감나무에 작은 꽃밭에다 펌프도 있네?!”
별거 없는 시골집 마당 풍경에도 주양현은 연신 감탄사를 뱉어내는 중이었다. 그사이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누군가에게 우리 집 문턱을 넘게 하는 건 내게 식은땀이 나는 일이었다. 결코 평범한 가정집이 아니었으니까.
문 곳곳에 붙은 부적들과 오색 천 조각, 천장에 매달아 놓은 방울 달린 새끼줄만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었다.
다만 나는 신당이 차려진 큰방만 보여주지 않으면 괜찮겠지 싶었다. 마침 어머니도 순이도 없으니 서둘러 책만 챙겨 나오면 된다는 생각, 단지 그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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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 와, 이렇게 많아?”
노끈에 묶인 책 더미를 양손에 든 내가 방에서 나오자 마루에 걸터앉아 시를 읊던 주양현이 벌떡 일어났다.
“그나마 너 좋아할만한 걸로 추린 거야.”
“정말? 이거, 내가 다 가져가도 돼?”
“어. 집에 둬봤자 먼지만 쌓여.”
“이야, 내가 나중에 혹시라도 유명해지면 절대 잊지 않을게!”
예상보다 주양현은 더 신나는 얼굴이었다. 꿈에 대한 열망을 알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픽 웃고 말았다. 성공은 열망과 노력만으로 주어지는 비례 공식이 아니니까.
다년간의 독서 탓인지 글은 제법 끄적이는 주양현이었다. 그러나 문학전공자들 사이에서 결국 그의 꿈도 묻힐 거라는 게 내 정론이었다.
“하나씩 들고 가자.”
내가 한 묶음의 책 더미를 내밀자 주양현이 냉큼 받아들었다. 이제 신발을 신고 대문 밖을 나서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삐그덕 빗장문이 열리며 순이가 들어섰다. 순간 얼음처럼 굳어진 나는 그대로 멈춰 섰다. 곧 순이 뒤로 모습을 보인 어머니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