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7화. 망자에게 신의 자비는 없었다

[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by 해달

“석 달 전, 문경 청악산에서 내 어머니와 함께 있는 자네를 본 사람이 있어.”

“문경이라면, 경상북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뭔가 오해가 있으신 듯한데 저는 그쪽에 연고가 없습니다. 물론 가 본 적도 없고요.”




모든 게 오해라는 듯 부드럽게 웃어넘기는 오승욱에 나는 바닥난 인내심을 느꼈다.



딸깍.



반쯤 몸을 일으킨 내가 손을 뻗어 목양실 문을 잠갔다. 반드시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이었다.




“자네, 교회를 하나 더 갖고 있더군. 이 낡아빠진 지하실과는 다르게 제법 규모도 있고 교인도 많은 대형교회 말이야.”

“…….”

“자네 설교는 아주 인상적이었어. 이곳에서는 마치 주의 종처럼 엎드리던 자네가 거기서는 자신이 곧 예수라며 사람들을 홀리더군. 그게 자네의 본모습이지. 안 그런가?”

“…….”




무슨 생각인지 오승욱은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한껏 어두워진 낯빛이 흘려듣진 않은 모양새였다. 어느 순간 생각에 잠겨있던 놈의 눈이 나를 응시했다.




“왜, 꼭꼭 숨겨왔던 자네 실체를 내가 알게 돼서 당황스럽나?”




말끝에 나는 한껏 입꼬리를 올렸다. 흔들리는 놈의 눈동자가 마치 꼬리를 내린 생쥐 같았다.




“말이 없는 걸 보니 내 얘기가 허무맹랑하지만은 않다는 증거군. 그렇지?!”

“……어떻게, 보셨습니까? 저를…….”




질끈 눈을 감았다 뜬 오승욱이 힘겹게 입을 뗐다. 이제껏 그에게서 본 적 없는 근심이었다.




“며칠 전 자네를 찾아가는 길이었지. 한데 어느 순간, 내 차가 다른 세상 속에 와있더군.”

“다른, 세상이요?”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 끝에 닿은 꽃밭. 그리고 그 가운데 서있던 자네 교회 말이야.”

“…….”

“내가 거짓을 보탤까 봐 지금 확인하는 건가?”




조롱 섞인 말투에도 오승욱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공손히 무릎 위에 올린 두 손을 맞잡을 뿐이었다. 깍지를 끼고 잔뜩 힘을 주는 모양새가 신을 찾는 듯했다.




“그러니까, 낯선 세상에서 저를 보셨다는 말씀이지요?”

“하! 여전히 발뺌하는 걸 보니 실체를 들켜서 무척 당황스러운가 보군.”

“…….”

“한데 말이야, 가면을 벗은 자네 모습이 훨씬 담대하고 좋았어. 숨길 게 없으니 언행도 거침없고 시원스러웠단 말이지.”




뭔가 할 말이 맴도는 듯 다물어진 오승욱 입술이 꿈틀거렸다. 사뭇 진지한 얼굴이 조심스러운 모양새였다.




“그곳에…… 선생님 모친도 계셨습니까?”

“자네, 대체 어디까지 모른 척할 셈인가? 그런다고 내가 넘어갈 것 같아?!”

“그럼 혹시 그곳에서, 제 어머니도 보셨습니까?”

“뭐? 아니 내가 자네 어머니를 어떻게 아…… 너 이 새끼!”




탁!


순간 화가 치민 내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이제야 네가 누군지,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저는 선생님이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수작 부리지 마 이 새끼야! 네가 아무리 날 헷갈리게 해도 내 눈은 못 속이니까.”

“안 믿으시겠지만 선생님께서 보신 그곳의 저는 제가 아닙니다.”

“뭐? 이 자식이 그래도!”




벌떡 일어나 달려든 내 손이 금세 오승욱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래, 바로 이 얼굴이었지…… 분명 너였다. 30년 전 무참히 살해당한 후 다시 살아난 부활자라 간증하는 너를 내 이 두 눈과 귀로 똑똑히 보고 들었지. 그런데도 네가 아니라고?!”




숨이 막혔는지 목에 잔뜩 핏대가 선 오승욱의 얼굴이 검붉게 변했다. 얼마든지 내 손을 치워버릴 수 있는 놈이었다. 그런데 무슨 꿍꿍인지, 그는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무탈하게 잘살고 있던 내 앞에 왜 나타난 건지, 말해.”

“…….”

“너의 그 두 얼굴로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지 말하라고 이 새끼야!”

“…….”

“어디, 내 앞에서도 간증해 봐. 네가 오승욱이 아니라 실은 30년 전 죽었던 주양현이라고. 어서!”

“켁! 켁! 서…… 선생……님…… 켁! 켁!”

“네놈이 데려간 내 어머니를 당장 내놓으라고!”




한계가 왔는지 내 손을 움켜쥔 오승욱이 손에 힘을 주었다. 빨갛게 충혈된 눈이 흡사 죽어가는 사슴의 눈망울 같았다.


이대로 놈을 죽일까도 싶었다. 만약 이놈이 정말 주양현이라면 반드시 살아날 테니…… 오승욱이 곧 주양현임을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끝까지 숨기겠다 이거지?! 좋아! 네 숨통이 끊어져 송장이 되면 네가 진짜 오승욱이라는 걸 믿어주지.”

“……켁! 켁!”

“네 죽음으로 네 결백을 증명해 봐!”




그때였다. 오승욱의 멱살을 쥔 내 손에 뭔가 묵직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눈앞의 그를 죽여야 한다는 사명이 손끝으로 모여들었다.



탁! 쾅!!



의자와 함께 오승욱을 쓰러뜨린 내가 놈의 목을 감싸며 본격적으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십…… 켁!켁!”




오승욱이 내 팔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런 가운데 나는 웃고 있었다. 내가 웃는 것인지, 내 안의 무언가가 웃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도저히 숨을 쉴 수 없겠는지 눈물이 가득 고인 오승욱이 힘겹게 나를 바라봤다. 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처연한 눈빛이었다.




“구천이나 떠돌고 있어야 할 놈이 무슨 미련이 남아 이생에 머무르느냐?! 황천길에 노잣돈이 필요했다면 내 섭섭지 않게 챙겨주었을 것을…… 감히, 내 앞을 가로막아?!”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오승욱 목을 감싼 두 손에 실렸다. 동시에 나는 그것이 내 손이 아님을 보았다.


손가락은 모두 여섯 개였다. 엄지손가락이 따로 없는, 하나같이 길쭉하고 울퉁불퉁한 형상이었다. 손등 위로는 검붉은 혈관들이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살가죽은 흉측하게 메말라있었고 12개의 뾰족한 까만 손톱은 감싸 쥔 목의 살점을 파고드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주양현을 사라지게만 할 수 있다면 누구의 손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주양현, 네까짓 게 감히 내 인생에 끼어들어?!”

“……서……선생…….”

“죽어. 죽으라고! 두 번, 세 번…… 백번이라도 죽어! 영원히 사라지라고!”




괴성을 지르고 난 나의 두 손에 부르르 힘이 들어갔다. 시커먼 오승욱의 낯빛이 곧 죽을 양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결국 내가 이겼다는 승자의 자축이었다.



툭!



그때였다.


테이블 옆 벽면에 걸려있던 원목십자가가 별안간 바닥으로 떨어지며 알 수 없는 섬뜩함에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혹, 이 방에 나를 저지하는 기운이 있을까 싶은 조바심이었다.



ai-generated-9217986_640.jpg



오승욱은 여전히 힘을 쓰지 못하는 중이었다. 이 순간, 망자에게 신의 자비는 없었다.




“주양현! 너와 나는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운명이야.”

“…….”

“모든 걸 가진 나보다 아무것도 없는 네가 사라지는 게 모두를 위한 거야. 그러니까 죽어! 30년 전 그랬던 것처럼.”

“…….”




거칠었던 놈의 호흡이 점차 작아졌다. 아니, 사실상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흉측한 내 두 손에 마지막 힘이 쥐어졌다. 누가 부여했는지 모를 나의 사명이 막바지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쾅쾅쾅쾅!




“당신, 거기 있어?”




정희였다.




쾅쾅쾅쾅!




“오 목사! 안에 있어요? 문 좀 열어봐요!”




정희 목소리가 다급했다. 동시에 나는 즉각 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문을 부숴야겠어요.”




밖에서 젊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뭔가 분주한가 싶더니 곧 큰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목사님!”

“세상에! 오 목사!”




바닥에 쓰러져 있는 오승욱을 본 정희와 한 청년이 단숨에 뛰어들어 왔다.




“119부터 불러야겠어요.”

“아니, 잠깐만요.”




급히 폰을 꺼내든 청년의 팔을 내가 붙잡았다.




“목사님은 괜찮을 걸세. 내가 장담하지.”

“네? 아니 그래도…….”

“그보다, 들어야 할 얘기가 있어.”

“무슨 말씀이시죠?”

“…….”

“당신,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




내게 자초지종을 물어오는 정희는 화가 나 있었다. 하긴 누가 봐도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명쾌한 설명 없이는 부부싸움조차 장기전이 될 각이었다.




“얘기 좀 나누려고 앉아있는데 커피를 내려놓던 오 군이 갑자기 쓰러지더니 경련을 일으키면서 목을 부여잡고는 숨이 막힌다는 거야. 그런데 글쎄…….”




나는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렸다. 가해자가 아닌 목격자가 되기 위한 큰 그림이었다.




“느닷없이 벽에 걸린 십자가가 툭 떨어지더니 문이…… 스스로 잠겼어.”

“모……뭐라고? 그게, 사실이야?”

“그렇다니까.”




대답과 동시에 내가 바닥에 떨어진 십자가를 가리켰다. 별안간 이 장식품이 떨어진 건 나 역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타이밍이 절묘했다. 단번에 나를 초자연적 세계 속, 목격자로 둔갑하게 했으니.




“어머! 정말 십자가가 떨어졌네?!”




다급히 다가간 정희가 십자가를 주워들었다. 난생처음 보는 아내의 호들갑에 덩달아 나름 침착하던 청년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모두가 심각한 순간 미세하게 나의 한쪽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마침 배경이 교회였고 정희와 청년은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느닷없는 십자가의 추락에 두 사람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16화16화. 새빨간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