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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새빨간 거짓말

[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by 해달

“어? 그 사이 누가 여길 왔다 갔지?”

“왜 그러시죠?”

“저기 툇마루 옆에 누가 뭘 갖다 놔서요.”




멀리 툇마루를 가리키는 남자의 손가락에 내 시선이 움직였다. 낯익은 포대가 눈에 띄었다. 며칠 전 만나슈퍼에서 내가 구입한 쌀이었다.




“누가 보살님 가시는 길, 배곯지 말라고 쌀을 놓고 갔나 보네요. 7년 전 연고도 없이 귀농한 저도 한동안 마을텃새와 농사실패로 몹시 힘들었는데 그때 보살님이 물심양면으로 저와 아내를 도와 이렇게 정착할 수 있었죠. 보살님께 어디 한 두 사람이 은혜를 입었어야지요. 참…….”




고개를 떨구는 남자에 나는 두어 번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과거 죽어가던 순이를 어머니가 거두자 그녀는 남은 생을 헌신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순이는 그 맹세를 끝까지 지켰다.


물론 나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죄를 드러내고 속죄하라는 게…… 혼으로라도 날 만나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이었다고?’




지난 순이 말들을 곱씹자니 뭔가 갑갑함이 밀려왔다. 마침 꽉 다문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자 양쪽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게, 두통이었다.


남자와 인사를 나눈 나는 차량에 올라타 미리 챙겨 온 두통약을 삼켰다. 근래에 잦아진 두통이 기어이 약을 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거였다.




“순이를 만났을 때 더 집요하게 물었어야 했어.”




일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다시는 순이가 내다본 앞날을 전해 들을 수 없다는 미련이었다. 다만 마지막 인사는 하고 갔으니 그녀는 도리를 다한 셈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순이가 세상에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네.”




나는 덤덤히 순이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혼이 된 그녀가 내게 전한 조언들은 순이와 함께 깊이 묻어두기로 했다.


어머니…… 내 앞길을 열어줄 또 하나의 거대한 존재가 아직 남아있으니까.




***




영화 관련 인터뷰 및 강의를 나가느라 정신없던 며칠이 지난 후였다.


운전 중인 내 옆에 앉은 정희는 들떠있었다. 꽤 규모가 큰 전시회를 앞두고 도시락 배달봉사를 하지 못하게 된 유림이를 대신해 오승욱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먼저 정희에게 제안한 건 나였다. 정희는 내가 변했다며 뛸 듯이 기뻐했다.


유림이는 다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오승욱이 있는 호산나교회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승욱을 만나고 오는 날이면 딸은 아내를 붙잡고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피곤하다며 일찍 방으로 들어가던 전과는 달라진 풍경이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오승욱에 대한 칭찬일색이었다. 찰떡같은 입담뿐 아니라 유머감각에 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어 그와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다는 유림이었다.


그럴 때면 정희는 이미 그를 가족으로 여기는 듯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만점짜리 우리 사위네. 다음에 또 밥 먹으러 오라고 해.”




쿵짝이 잘 맞는 모녀의 대화에 나는 늘 정색하곤 했다. 그렇게 아름답던 아내가 미워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승욱을 만나기 위해 나는 정희가 필요했다. 혼자 중곡동으로 차를 몰다 자칫 또다시 기묘한 세상으로 들어갈까 싶어서였다.


분명 다시 가야 할 세상임은 분명했다. 그곳에 내 어머니가 계시니까……. 다만 어머니의 생사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혼이든 주검이든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셨으니 무사하셨기를 바랄 뿐.



.

.

.



꿀꺽. 구룡터널 진입로에 다다라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 터널 끝에 과연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당신 오늘은 오 군과 좀 가까워지도록 노력해 봐. 우리 유림이 생각해서라도 잘 지내야지. 안 그래?”

“어? 어. 안 그래도 오늘은 진지하게 얘기 좀 나눠보려고.”

“……정말?”

“…….”




나는 애써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바짝 엎드린 운전대에 흡사 목을 빼든 자라처럼 정면을 주시한 채 터널을 지나는 중이었다. 그러나 잔뜩 신경이 곤두선 내 속을 정희가 알 리 없었다.




“당신, 진짜 변했네?! 유림이도 그렇고 오 목사가 우리 집 복덩어리였네!”

“…….”




한껏 들뜬 정희에 나는 대답할 틈이 없었다. 심지어 형식적인 웃음도 보이지 못했다. 저만치 밝은 빛이 보이는 게 터널 끝에 다다른 거였다.




“유림이 결혼하면 근처에 살라고 할까 봐. 자식이 하나라 그런가, 멀리 살면 너무 허전할 것 같아. 내 욕심인가……?”




정희는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터널을 빠져나온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뭘 벌써부터 걱정해. 유림이 결혼한다고 하면 그때 상의해도 안 늦어. 그리고 당신 허전하지 않게 내가 잘할게.”




태연한 척, 나는 아내 손을 잡았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홀가분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정희는 그런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





“인간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절대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목사, 선교사, 장로도 예외 없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아멘!”




강단에 오른 오승욱이 열 명 남짓한 신도들을 앉혀두고 설교를 하는 중이었다. 봉사를 나가기 전, 짧게 예배를 드리는 모양새였다.


뒤늦게 도착한 정희와 내가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제가 목사가 된 건 사명일 뿐, 저 또한 여러분과 같은 원죄를 가진 죄인입니다. 그러니 제 말에 앞서 반드시 성경말씀을 먼저 새기셔야 합니다. 눈으로만 읽지 마시고 마음으로 들으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멘!

“성경말씀은 받아들이는 것이지 정복하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 말씀을 더하거나 제해서도 안 되며 예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새빨간 거짓말!’




차마 소리치지 못한 나는 삐죽거리는 입을 내밀었다. 팔짱을 끼고 등받이에 허리를 기댄 채 오승욱을 노려보는 와중이었다.


분명 스스로를 부활한 예수라 했던 교주 주양현이었다. 자신의 말만 잘 따르면 구원과 영생을 주겠다고 했었다. 나는 그 현장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주양현, 조만간 내가 네 가면을 모조리 벗기고 말 거다. 내가 일개 잡귀 따위에 당할 것 같아?!’




설교가 이어지는 가운데 눈으로 한참 욕설을 날리던 찰나였다. 오승욱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별력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눈과 귀에 비늘이 씌워지는 순간, 우리의 자유의지는 그릇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내게 말하듯 올곧은 시선에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런 내 눈을 피하지 않은 오승욱이 연이어 열변을 토한 후 설교를 끝맺었다.




“여러분! 탐욕에 눈이 멀어 죄에 둔감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라는 다윗의 기도처럼 우리도 늘 죄를 경계해야 합니다. 탐욕으로 인한 누림은 잠깐이나, 그 대가는 영원합니다.”

“아멘!”




감동을 받았는지 두 손을 모은 정희가 크게 아멘을 외쳤다. 붉으락푸르락 해진 내 얼굴을 보지 못한 이유였다.




‘복수한답시고 저승길도 마다한 악귀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죄를 들먹거리는 건데?!’




말끝에 나를 향해 묘한 미소를 흘리는 오승욱에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늘은 결단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의 순간이었다.




***




도시락 배달봉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봉사에 진심인 열혈 청년에게 내 구역까지 맡긴 나는 내내 오승욱을 따라다녔다.


놈은 여전히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꽃밭 속 교회에서 목격한 거만에 취한 얼굴도 아니었으며 왜 자신을 따라오는지 딱히 묻지도 않았다. 그저 봉사가 끝날 때까지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을 뿐.




*




두 시간쯤 지나 나는 오승욱이 안내한 교회 목양실로 들어섰다.


마치 고시원 같은 한 평 남짓한 비좁은 그의 사무실이었다. 한쪽 벽면 책장에는 종교 관련 서적이 빼곡히 꽂혀있었고 그 앞으로는 학교 책걸상만 한 작은 업무 공간이 놓여있었다.


안으로 들어선 나는 쟁반 같은 원형테이블을 사이에 둔 두 개의 의자 가운데 하나를 끌어 앉았다. 나무의자에 방석과 쿠션을 댄 덕에 딱히 불편하진 않았다.




“뒤에선 사이비 교주에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놈이 참 그럴듯하게 꾸며놨네. 이러니 유림이도 정희도 깜박 속아 넘어가지.”




가늘게 뜬 눈으로 목양실을 둘러본 내가 벽에 걸린 원목십자가를 쳐다보며 혼잣말을 뱉어냈다.


주양현의 시커먼 속내를 알게 된 이상 모든 게 곧이곧대로 보일 리 없었다. 망자의 회귀인지, 아니면 돌연변이가 된 괴물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놈의 손에 쥔 칼끝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었다.




“혹,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곧 목양실에 들어선 오승욱이 내 앞에 아이스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사 오라는 나의 고집으로 받아낸 대접이었다.




“자네, 내 아내와 딸 유림이를 아주 잘도 속였더군.”

“속이……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와 마주 앉은 오승욱이 되물었다.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긴말 필요 없고 내 어머니. 지금 어디 있나?”

“선생님 모친을 왜 저한테 물어보십니까?”

“뭐라고?”

“솔직히, 저는 선생님께서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하아…….”




뻔뻔한 주양현에 나는 긴 탄식을 쏟아냈다.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눈으로 멀뚱거리는 놈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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