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그래서, 그다음에 또 무슨 일이 있었는데?”
“오 군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니까 당연히 119에 신고하려고 했지. 근데 폰도 안 터지고 문도 열리질 않는 거야. 어쩌니 당황스럽던지, 나도 방법을 찾고 있던 와중에 마침 이 청년이 문을 연 거야.”
“어머나 세상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정희와 청년이 서로 눈치를 보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사탄마귀가 들어와 오승욱을 괴롭혔다고 믿는 모양새였다. 내가 온전한 목격자가 된 순간이기도 했다.
“자네, 밖에서 따뜻한 물 좀 갖다 주겠나?”
“아, 네!”
내 부탁에 청년이 달려 나갔다. 조금도 나를 의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 목사!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네. 괜찮……습니다.”
그사이 혈색이 돌아온 오승욱이 안정된 호흡과 함께 눈을 끔벅거렸다. 아직 정신은 없는 듯했다. 일어나려는 그를 정희가 부축했다.
“내가 할게. 당신은 의자를 빼주는 게 좋겠어.”
“알겠어.”
내가 양팔로 오승욱을 받치자 정희가 서둘러 의자와 쿠션을 챙겼다.
곧 오승욱을 일으킨 내가 그를 의자에 앉혔다. 그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특별히 나를 피하거나 경계하지도 않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 기억을 잃은 건지 조작된 진실의 내막에 딱히 반박하지도 않았다.
“목사님! 여기 따뜻한 물 가져왔어요.”
그새 총알같이 달려온 청년이 오승욱 앞에 물 잔을 내밀었다. 청년의 얼굴을 본 오승욱이 컵을 받아들었다.
“당신, 얼른 나가서 시동 좀 걸어줘.”
“지금? 왜?”
“왜라니. 오 목사 병원 가야지.”
“아닙니다. 저 괜찮습니다.”
그사이 컵을 비운 오승욱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얼굴이었다. 입가에 머금은 놈의 미소가 차분했던 내 신경을 바짝 곤두서게 했다.
“목사님 갑자기 쓰러지셨다면서요. 어디 이상 있는지 확인해 보셔야죠.”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었어.”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신경 써줘서 고맙다 석현아.”
밝은 얼굴로 청년과 대화하는 오승욱에 정희가 그제야 마음을 놓은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 목사,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찰나의 순간이었다. 물어오는 정희에 오승욱이 힐끔 나를 쳐다본 건.
순간 요동치는 심장에 시선을 회피한 내가 괜한 헛기침을 했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뭔가에 걸려 넘어지면서 숨이 막혀오더라고요. 그때 잠깐 의식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선생님께서 절 잡아주셔서 다치지 않았어요.”
“세상에! 그럼 십자가가 떨어진 것도, 문이 저절로 잠긴 것도 몰랐겠네요?”
떨어진 십자가를 손에 쥔 정희는 상황에 몰입하고 있었다. 뭔가 기괴한 일이 일어났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정희가 내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너무도 태연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눈앞의 목회자 때문이었다.
**
작은 소동이 정리된 후 나는 목양실에서 다시 오승욱과 마주 앉았다. 정희와 함께 나가려는 걸 그가 붙잡았다. 책을 선물하겠다는 핑계였다.
“내 광기를 덮어줬다고 고맙다는 말을 기대하지는 말게. 난 소득이 없었으니까.”
내 말끝에 오승욱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놓인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제 선물입니다.”
다시 의자에 앉은 그가 내 앞에 책을 내밀었다. 성경책이었다.
“하! 미친놈. 이런다고 내가 널 오승욱이라고 믿을 것 같아?!”
“앞으로는 절대 혼자 오지 마십시오. 선생님이 가보셨다는 그 세상은 들어가서는 안 될 곳입니다.”
“그리 말하는 걸 보니, 네가 똥줄이 타긴 한 모양이구나.”
말끝에 내가 오승욱 앞으로 거칠게 툭 성경책을 던졌다. 일종의 조롱이었다.
“제가 주양현인지 오승욱인지 몰라 두려우시다면 선생님이 보신 그 세상 속의 저도 두려워하셔야 합니다.”
“뭐라고?”
“댁에 있는 감나무를 뽑아 불태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결국, 선생님을 집어삼킬 것입니다.”
“뭐 이 자식아?!”
벌떡 일어난 내가 미처 반격하기도 전이었다. 노크소리와 함께 덜컥 문이 열렸다.
“휴, 당신이 하도 안 나오길래 난 오 목사가 또 쓰러진 줄 알았잖아.”
“제가 선생님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밖에서 기다릴 테니 천천히 얘기 나눠요.”
“아닙니다. 선생님도 이제 막 나가시려던 참이에요.”
‘저, 저 자식이!’
천연덕스럽게 눈웃음을 친 오승욱이 태연하게 나를 쳐다봤다.
“큼! 안 그래도 일어나는 중이었어. 이만 가보겠네.”
“예. 살펴 가십시오.”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인사를 건넨 내가 정희와 함께 돌아선 찰나였다.
“선생님! 이거 가져가셔야죠.”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온 오승욱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내게 성경책을 건넸다.
“어머!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오 목사 고마워요!”
.
.
좋아하는 정희 옆에서 나는 불쾌한 내색도 하지 못한 채 교회를 나와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서재에 들어선 나는 조명등만 켠 채 책상에 앉아 책상 위에 가만히 성경책을 내려놓았다. 오승욱이 건넨 문제의 선물이었다.
“젠장!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서재에 들어서 혼자가 되고 나서야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졌다.
오늘의 나는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처음 느껴보는 살기와 광기를 보였다. 오승욱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사명이 어느 순간 나를 지배했던 거였다.
사실 그때부터는 나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오승욱 목을 조르고 있던 기괴한 두 손을 목격한 걸 제외하고는…….
내 안에 들어온 강력한 기운이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
“정희가…… 정희가 날 살린 거야.”
집에 오는 길에 들은 바, 봉사를 마친 정희는 갑자기 마음에 오승욱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물론 처음에는 아내도 그 생각을 부정했다고 했다. 그런데 떨쳐지지 않는 마음이 어느새 자신을 목양실로 인도했다고 설명했다.
정희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면…… 청년이 문을 부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집이 아닌 경찰서에 있을 게 분명했다.
기묘한 하루를 곱씹고 있자니 뒤늦게 성경책이 눈에 들어왔다.
“…….”
물끄러미 성경을 바라보던 내가 손가락만 한 빨간색 가죽 북마크가 끼워진 책장을 펼쳤다. 오승욱이 아무 이유 없이 내게 이것을 주었을 리 없다는 예감이었다. 그리고 곧 그 예감은 적중했다.
“주양현…… 너 이 새끼!”
나는 곧장 책을 덮어버렸다.
그사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당장이라도 그놈을 찾아가 주먹을 날리고 싶은 분노가 일었다.
북마크가 끼워진 페이지 속, 형광펜이 지나간 자리에 깨알 같은 한 구절이 보였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내가 처음 주양현을 알게 된 건 국민학교 3학년, 2학기 무렵이었다.
서울에서 전학을 왔다는 그 아이는 반듯한 서울 말씨에 서글서글한 눈웃음으로 단번에 반 아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전학생에게 관심이 없었다.
다만 언젠가는 고향을 떠날 거라는 결심에 매일 같이 볼펜을 물고 연습하는 나와 달리 유창한 서울 말씨가 살짝 부럽고 질투 났을 뿐.
자리도 멀었던 탓에 전학생과 나는 인사 한 번 없이 학기를 마쳤고 4학년부터는 다른 반을 배정받으며 서로 마주칠 일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내가 그 녀석을 다시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물론 처음부터 녀석을 알아본 건 아니었다. 사투리가 난무하는 교실에서 또박또박 교과서를 읽는 소리에 시선이 쏠렸던 게 계기였다.
주양현.
뒤늦게 나는 그 이름을 떠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녀석에게 다가가진 않았다.
그사이 나는 소위 문제아가 되어있었다.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 작두무당 아들에 사생아라는 타이틀이 날 반항아로 만들었다.
문제의 시작은 꾸준히 나를 조롱하고 괴롭혔던 박태식이었다. 하필 나와 한동네였던 그 자식과 같은 반이 된 거였다. 나를 알아본 박태식은 단번에 소문을 퍼뜨리며 나를 외톨이로 만들었다.
하필 선생님마저 방관하는 사이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나는 어느새 모든 것에 삐딱한 청소년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나를 알아본 건지 복도에서 마주친 주양현이 한 번 인사를 건넨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못 들은 척 지나쳤다. 그 녀석마저 날 놀려먹기 위한 수작이라 여긴 탓이었다.
스스로 가시덤불을 만든 나는 그 안에서 바짝 웅크리고 있었다. 누군가 기웃거리기라도 할양이면 되레 성난 사자처럼 으르렁거렸다. 나는 외톨이를 자처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운명을 버텨내는 길이라 생각했다.
대신 어머니가 청악산 신당에 머무르실 때면 나는 불량한 복장으로 혼자 시내 밤거리를 쏘다니곤 했다. 세상에 대한 나름의 반항이었다.
그런데 5월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세상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시내 밤거리를 활보하던 나는 취객에게 훔친 담배를 입에 물고 껄렁이는 한쪽 다리와 인상 쓴 미간을 짓고 있었다. 누구도 내게 함부로 덤비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처음 피워본 담배가 화근이었다. 불량한 폼을 유지한 가운데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픈 걸 간신히 참고 있는 와중에 그만 담배연기를 삼킨 거였다.
“콜록콜록! 켁켁! 콜록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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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악! 퉤!”
한바탕 기침을 쏟아낸 내가 오만상을 쓰며 침을 뱉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