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아름다운 그녀와 축구를

헌혈 독려 순례길 여행 - 응답한다 1988 20

by 꿈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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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4

Hontanas -> Boadilla del Camino 29.5km


아름다운 그녀와 축구를


어제저녁에는 한 아름다운 여자와 축구를 했다. 부르고스 알베르게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순례자를 봤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봤는데 꽤 개성 있고 예쁘게 생겨서 시선을 빼앗겼다. 누구일까 궁금해서 길 위에서 마주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림자 한 번 보지 못했다.


하루 종일 걸어 온타나스에 도착해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씻고 나와 다 같이 바람을 쐬러 나온 차에 낯익은 얼굴을 봤다. 바로 부르고스에서 본 그녀였다. 괜스레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람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신기하게도 축구공을 가지고 트래핑을 하고 있었다.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가 축구공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본인 소유가 맞는지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길을 걷다 보면 불필요한 물건들은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그녀가 축구를 정말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사연이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심심하던 차에 그녀에게 공을 달라고 말했고 몇 번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우현이, 종원이, 준택이 그리고 성균 이형도 다 같이 참여해 패스를 주고받았다. 다들 걷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공을 보니 신났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걸었기 때문에 발바닥도 무릎도 성하지 않아서 공을 차다 말고 다들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무릎 상태도 괜찮고 발도 아프지 않아서 계속 공을 주고받았다. 얼떨결에 단 둘이서 공을 차며 어색함을 풀며 그녀에 대해 조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20대 초반 여성으로 아버지는 아르헨티나 사람이며 어머니는 멕시코 사람으로 혼혈이었으며 프랑스 국적으로 파리에 살고 있다고 한다. 운동을 좋아하고 학교에서 축구를 배우고 있어 공을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얼마나 축구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중학생 때부터 레알 마드리드를 좋아해 마드리드가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 일정도로 축구를 좋아하지만 절대 그녀처럼 공을 갖고 순례길을 걷지는 못할 것 같다.


서로 패스를 주고받고 트래핑 개수로 시합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언제 또 못 볼지 몰라 페이스북 유무를 냉큼 물어봤는데 그녀는 현재 핸드폰은 없어 사용은 못한다며 계정만 알려주어 친구 신청만 했다. 친해진 외국 순례자들과는 페이스북으로 종종 연락하며 오늘은 어디까지 걷는지 어디서 머무는지 묻곤 했지만 그렇게까지 친분이 없는 순례자들은 그저 길에서 마주칠 때 인사할 뿐이었다.


그녀에게 호감이 가서 더 친해지고 싶었고 같이 길을 걸으며 더 대화하며 알고 싶어 졌다. 어젯밤 그렇게 우연히 공 하나로 그녀와 조금 친해졌다. 길에서 만났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내일을 위해 잠에 들었다.



IMG_5775.JPG 메세타 고원
IMG_5782.JPG 성균이형, 준택, 종원, 우현
IMG_5792.JPG 샌 안톤 수도원


IMG_5805.JPG 자신의 차에서 악세사리를 판매하는 아저씨

샌 안톤 수도원


아침에 일어나 다시 걸을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어제 공을 같이 찼던 그녀는 이미 길을 나섰다. 온타나스에서 출발해 한 시간 정도 걸으니 샌 안톤 수도원을 볼 수 있었다. 과거에 이 아치는 수도원의 문 구실을 했고 수도원은 순례자에게 갖가지 편의를 제공했다고 한다. 특히 과거에는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전염병이 만연하는 등 의료시설이 부족했는데 수도원에서 순례자를 치료했다고 한다. 샌 안톤 수도원을 만든 안도 티오파 수도회는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탁월해 유럽 전역에 400개여 개의 병원을 보유하고 있었다고도 한다.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부터 성지순례는 유럽인들에게 꽤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도원부터 다음 마을인 카스트로 헤리스 까지는 약 10km로 직선 도로를 걷는다. 길이 넓지 않고 차량이 다니는 길인데 인도가 따로 없어서 위험하기도 하지만 통행하는 차량이 많지는 않다. 이제까지 봤던 도시와 마을과는 다르게 멀리서부터 카스트로 헤리스의 특색이 보이는데 홀로 동산이 나와있고 산 위에는 성이 있으며 아래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며 우리는 걷고 또 걸어 카스트로 헤리스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에 어떤 스페인 할아버지가 자신의 트럭 차량에서 우리르 오라고 손짓했다. 그분은 자신이 만든 스탬프를 우리의 크레덴시알에 찍어주겠다며 말했다. 그는 카르스 로헤 리스에 거주하며 현재는 은퇴한 상태이고 나무를 이용해 팔찌와 목걸이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한 조그마한 박스에 그가 나무로 만든 십자가 모양의 펜던트들이 널려 있어 우리는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는 친절한 그의 설명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 펜던트를 하나 구입했다.

IMG_5796.JPG Castrojeriz
IMG_5797.JPG Castrojeriz
IMG_5800.JPG Castrojeriz
IMG_5803.JPG 카스트로 헤리스 성당
IMG_5849.JPG Castrojeriz

수평선


카스트로 헤리스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 온타나스에서 10km를 걸어 도착했는데 카스트로 헤리스에서도 다음 마을까지는 산을 넘어 9.5km 정도를 가야 한다. 같은 길이라도 중간중간 마을이 있거나 특이하게 볼 만한 것들이 있으면 지루하지 않고 금방 금방 도착하는 것 같은데 마을 간 거리가 길면 체감상 시간이 훨씬 더 걸리는 것만 같다.


사람이라도 많으면 새로운 사람과 대화하거나 사람 구경하는 재미라도 있을 텐데 다들 버스를 타고 이동하거나 빨리 걸어서인지 다른 순례자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때 우리와 같이 걸은 한 이탈리아 청년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마르코'였다. 마르코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40대 중반 디에고와 브라질 에서온 Claudia와 Denise와 같이 걷고 있었고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끔 그들 무리와 마주쳤는데 이상하게 마르코가 속도를 높이더나 그들과 걷지 않고 우리랑 같이 걷기 시작했다.


마르코와는 한 일주일 전부터 알게 됐고 만나면 인사만 하는 사이였는데 메세타를 같이 걸으면서 진솔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선한 인상으로 항상 웃는 모습으로 인사하던 그는 무슨 사연이 있어서 홀로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충만 : 마르코 왜 순례길을 걷고 있어?~

마르코 : 나는 집에서 게임을 너무 많이 하거든 순례길을 걸으면서 자신감과 성취감도 얻고 앞으로 게임을 줄이고 어떻게 살 것인지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왔어

충만 : 게임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어떤 게임 좋아해?~

마르코 : 도타라고 알아?~나는 도타 5,000시간 넘게 했어


마르코는 솔직하게 왜 걷고 있는지 말해줬다. 그는 게임중독자였다. '도타'라는 게임을 총 플레이 시간 5,0000 시간을 넘으며 하루에 10시간 넘게 게임을 하고 있는 그는 30대 초반의 이탈리아 남자인데 앞으로는 게임 시간을 줄이고 싶고 이전 삶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방안에서 나와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속내를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정말 멋졌다.


지금에서야 나이를 한 해 한 해 먹으면서 친구들이나 남들 앞에서 속내도 털어놓지만 나는 쉽사리 속 마음을 잘 이야기 못한다. 20대 초반에는 삼수하고 편입한 사실도 창피해서 이야기를 잘 안 꺼냈지만 지금은 아쉬움은 남는 시절이었지만 인정하고 당당하게 말하곤 한다. 나처럼 재수 삼수 그리고 편입을 고민하거나 준비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부끄러울게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IMG_5876 0000000000ms.png 마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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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5919.JPG 2016년 오늘 오픈한 알베르게, Albergue Putzu
IMG_5922.JPG 알베르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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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5927.JPG 순대

순례자의 매너


Boadilla del Camino 에 도착해서 우리는 마을 가장 앞에 있는 알베르게를 찾았다. 대체로 저렴한 공립 알베르게에서 자지만 오늘은 거의 30km 가까이 걸었기 때문에 다들 피곤해서 가장 먼저 보이는 PUTZU 사립 알베르게 문을 두드렸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둘러보던 중 안에서 주인이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우리는 영업을 하는지 물어봤고 그는 오늘 2016년 영업을 하는 첫날이라며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줬다. 오늘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고 알베르게 내부는 마치 펜션 같았다. 샤워를 하고 나와 우리는 난로 옆에 모였다. 마치 강촌으로 MT를 온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호스피탈레로에게 마트 위치를 물었지만 작은 마을이라 마트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차량으로 마트에 데려가 줄 수 있다고 말하며 한 명만 자기 차에 탈 수 있다고 말해 준택이가 차에 올랐다.


준택이가 장을 보고 와서 다 함께 순대 햄 볶음 등 음식을 만들어 호스피탈레로와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역시나 하루 종일 걷고 다 같이 먹는 저녁은 꿀 맛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며 호스피탈레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는 마드리드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현재는 이 곳으로 이사화 알베르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처럼 스페인에서도 도시에서 일을 하며 어느 정도 돈을 모은 후 조용한 곳으로 귀농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도 몇 년 전 우리처럼 순례길을 걸었다며 완주 증명서인 '콤포스텔라'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순례자의 매너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요새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스페인 환경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거나 산에 마구 버린 쓰레기가 많아지는 모습도 있다고 했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동네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이들도 있으며 알베르게 봉사자에게도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다른 순례자들에게도 눈살 찌푸리는 모습을 만들게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우리도 공손하게 인사하고 물어봤기 때문에 자신도 환영한 거지 아니었다면 쫓아냈을 거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과연 스페인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봤다. 의도치 않다고 해도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는 것을 요새 느끼곤 했다. 길을 걷다가도 무심코 멈추거나 옆으로 움직였을 때 누군가의 길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를 배려하는 행동이 자존심을 헤칠 수도 있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던 경험이 생각났다. 누군가를 돕기 이전에 사소한 행동도 조심하고 기본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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