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한다1988 21번재 날 아스토르가
사람이 하루에 최대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걷기 열풍이 거세다. 순례길을 걷고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정부에서 '코리아 둘레길'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신 분이 귀국 후 제주도에 올레길을 만드셨고 이후에도 서울에는 남산 둘레길과 성곽길 등 걷기 좋은 길들이 들어섰다. 동해안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도 생겼고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스탬프를 모아서 완주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재미요소도 있다.
2017년에만 전국에서 걷기 대회가 300여 개가 넘는다고 하니 이 열풍은 꽤나 오래간다. 나 또한 걷는 걸 정말로 좋아해서 두 번째 순례길을 걷게 되었다. 첫 번째는 오로지 나를 위한 길이었고 지금 두 번째 길은 나를 위한 길이면서도 또 나의 걸음이 소아암 친구들에게 거름이 되는 길을 걷고 있다. 평소에도 집 앞에 있는 백제고분이나 석촌호수를 자주 걷고 가끔은 한강을 걷곤 했다.
누구나 특별한 장비 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며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뗼 수 없는 것이 걷는 것이다. 하루 만보 걷기 운동이 있을 정도로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심폐기능을 강화시키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성인병과 심장병 예방에 좋다. 또한 질병 예방뿐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상태에도 도움을 주는데 우울증이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 불안감을 감소시켜 정신건강에도 이로움을 준다.
평소 이런 이유 때문에 되도록 가까운 거리는 무조건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이용하고 여행을 할 때도 큰 도시를 이동할 때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시내에서는 무조건 걸어 다니는 것을 선호한다. 유명 관광지뿐만 아니라 그 도시의 소소한 골목 냄새 맡는 것을 좋아해 런던에서는 좋아하는 사람과 3시간 동안 걷기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날 12시간 넘게 50km를 넘게 걸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내 첫 순례길 첫날은 하루 종일 걷고 또 걷는 날이었다.
레온에서 출발한 나의 첫 2015년 순례길 목적지는 12시간 동안 50km 넘게 걸어 도착한 아스토르가였다. 처음부터 12시간을 걸으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스페인에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 친구와 같이 있다가 혼자가 돼서 갑자기 외로워졌고 좋아하는 사람과는 메신저로 싸워서 매우 우울했었다. 10일 후면 귀국하는데 돌아가서는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다. 런던 인턴과 여행 내내 즐겁다가 우울함이 찾아고니 꽤나 힘이 들어서 마지막 목적지이자 내 생애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 마드리드는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빨리 여행이 끝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이런 기회도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남은 일정 동안 산티아고까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여행하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섰다. 늦게 출발해서인지 알베르게에 그 많던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가 도시 외곽에 나와서 30대 후반 이탈리아 초등학교 교사를 만났다. 순례길 위에서 처음으로 만난 순례자인 그녀는 휴가를 맞이해 길을 걷기 위해 왔다고 했다. 이탈리아의 법정 휴가일수는 연간 4주이며 미사용시 다음 연도로 이원 되며 퇴직할 때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일시불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 시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와 걷는 속도가 달라 먼저 가라고 말했다.
그녀는 천천히 쉬면서 주위도 둘러보며 온전히 순례길을 즐기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나는 최대한 우울함을 떨쳐 버리고 많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빠르게 더 빠르게 걸었다. 이후에는 길 위에서 순례자를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입 맛도 별로 없어서 어제 먹다 남은 빵을 금방 먹고 나서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혼자 먹은 빵은 정말 맛이 없었다. 혼밥 혼술 혼자가 하는 문화가 자연스러운 요즘 나 또한 혼자서 하는 활동을 즐기는 편이었다. 밥을 혼자 먹어도 불편하지 않고 가끔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휴식을 취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여행을 할 때도 혼자서도 워낙 잘 돌아다니는 성격이었는데 좋아하는 사람과 런던에서 시간을 보낸 이후로는 사람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음식의 맛도 중요하지만 같이 먹는 사람에 따라서 그 맛과 추억이 달라지고 단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고 추억을 공유한다는 게 정말 소중하고 감사하며 행복한 것임을 깨달았다. 맛있는 음식일지라도 혼자 먹으면 맛이 반감되었고 멋진 건물을 보고 여행을 해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과는 무척 달랐다.
이 때문에 혼자 걷는 길은 꽤나 적적했다. 거의 쉼 없이 3,4시간을 걷다가 목이 막혀 어느 마을 바에 들어가서 맥주 한 병을 시켰다. Hola~Una Cerveza Por Favor!~(안녕하세요 맥주 하나 주세요)
주인장은 맥주와 함께 타파스(식전 소량 음식)를 함께 주었다. 나는 시킨 적이 없어서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주인에게 물어보니 서비스란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스페인 바에서는 음료를 시키면 타파스를 무료로 주는 곳이 꽤 많다. 그 맥주는 이제까지 살면서 먹어본 맥주 중에 손꼽히게 맛있는 맥주다.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그런 맛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쉼 없이 걷기 시작했다. 짐을 산티아고로 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방법이 있는 줄도 몰라서 인턴 할 때 입었던 옷들과 구두 그리고 노트북과 DSLR까지 모두 가방 2개에 나눠 들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내가 오늘 어디까지 걸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서 걸을 수 있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은인
다들 이미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길 위를 걷는 이들은 한 명도 보지 못한 채 저녁 7시경 아스토르가 4km 전인 산 후스토 베 라 베가에 도착했다. 해가 지기 시작해서 나는 더 빨리 걷기 시작했다. 아스토르가에 간신히 8시쯤 도착했지만 해가 져서 온 마을이 어두웠다. 행인들도 별로 없었는데 한 지나가는 사람에게 알베르게 위치를 물어봤다. Donde esta el Albergue?
친절했던 그 행인 덕분에 나는 첫날 무사히 알베르게를 찾을 수 있었다. 시계는 8시를 넘었고 12시간 가깝게 50km를 약간 넘게 걸었다. 첫날부터 혹독하게 걸은 덕분에 발은 부르트고 제대로 된 걸음조차 걷기 힘들었고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때 알베르게에서 일하시는 분이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물어보셨다. 그리고 한국말로 물어보는 그녀는 한국인이었다. "저녁식사는 하셨어요?"라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아니오 라고 답했다. 맥주와 타파스 이외에는 먹은 음식이 없었다. 그녀는 친절하게 나를 부엌으로 데려가 죽을 끓여주셨다. 몸은 엉망진창이었고 배는 무척이나 고팠는데 친절한 그녀 덕분에 한시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왜 이곳에 계시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스토르가 공립 알베르게에서 오스피탈 레로(Hospitalero) 로서 봉사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순례자이지만 순례길을 걷다가 아스토르가에 도착하는 날 다리에 문제가 생겨 더 걷기에는 무리였다고 한다. 때문에 며칠간 알베르게에서 봉사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공립 알베르게는 장기로 봉사하는 스페인 사람이 있고 그녀처럼 짧게 봉사하는 분들이 계신다. 아침에는 순례자들이 떠난 후 알베르게를 청소하고 오후부터는 알베르게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의 등록 업무를 맡으며 순례자들과 교류하며 그들을 돕는 봉사를 한다. 식사가 끝난 후 그녀는 나에게 찜질을 하라며 얼음을 건네줬다.
심신이 지쳐있는데 그녀의 친절함 덕분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샤워를 하고 짐을 푼 후에 알베르게에 있는 순례자들과 인사를 했다. 그중에 신기하게도 한 일본인 청년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가톨릭과 개신 교과 개신교 신자가 많아서 순례길을 찾는 이들이 급증하는 것은 알았는데 일본인은 의외였다. 실제로 순례길을 걷다 만나는 이들은 유럽 사람이 가장 많았고 영어 및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권 국가 사람들 그리고 아시아인 중에서는 한국인이 많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보기 힘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종교적 이유로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유키이며 26세였다. 이 길을 걷는 이유를 물어보니 그 또한 대한민국 청년들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장거리 연애 때문에 결국 헤어지게 됐고 사랑과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에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고자 이 순례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잡다한 생각을 떨쳐버리고자 하루 종일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다시 그와 이야기하면서 하나 둘 생각들이 쏙 쏙 내 머리를 헤집고 고민했던 1년 전 아스토르가 1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고민들이 다 해결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년처럼 여유가 없어서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고 고민을 회피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아스토르가는 정말 힘들게 도착한 곳이면서 한 걸음 더 성장한 곳으로 추억되고 있다. 12시간 50km를 걸어 도착한 그곳 아스토르가
가방수리
호스피탈레로에게 준택이 가방 끈을 수리하기 위해 수선가게 위치를 물었다. 그는 친절하게 아스토르가 지도를 건네주며 신발가게 위치를 알려줬다. 가방을 들고 주인장에게 보여주면 고쳐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종이 지도를 보면서 아스토르가 골목을 헤맨 끝에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가방 끈이 끊어졌는데 수리가 가능할까요?"
"네 가방 놓고 30분 있다가 다시 오세요"
가게는 신발을 수선을 전문으로 다뤘는데 가방수리도 맡아주셨다. 우리는 마트에 가서 장을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30분 후 다시 수선가게를 방문했다.
"수선 끝났나요?"
"네 가격은 2유로입니다"
여행자기 때문에 가격을 모르니 더 받을 수도 있었을텐데 저렴한 가격에 놀랐다. 우리나라 명동이나 인천공항에서 덤터기 사건도 많고 동남아에서 덤터기 쓴 적 경험도 있었는데 타파스를 무료로 주고 가방 수리비도 저렴했던 기억 덕분에 스페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