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싸워요

응답한다 1988 26번째 날

by 꿈충만

- 함께 걷는 부녀 소정 누나

- 톰과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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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나타난 안개는 하루 종일 우리를 따라다니다가 비라는 친구까지 데리고 와버렸다. 이제는 헤어진 줄 알았는데 또 비라니... 순례길에서는 누구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정말로 비는 같이 다니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 걷는 친구다.


사리아가 가까워지니 길 위에서 더 많은 순례자들을 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순례자 사무실에서는 세요(Sello)가 찍힌 크레덴 시알(Credential)을 확인하고 순례자 완주 증명서인 콤포스텔라(Compostela)를 제공하는데 100km 이상 걸었을 때와 자전거는 200km 이상 순례했을 때만 부여한다. 사리아에부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는 약 100km 조금 넘는 거리이기 때문에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유입되는 도시이다.


26일 동안 레온에서 하루 휴식 외에는 계속 걸었기 때문에 길 위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첫날 알베르게에서 만난 준택이와 우현이는 계속 함께 걷고 있었고 일본인 순례자 요코도 함께 걸을 때도 있고 또 며칠을 못 보다가 다시 만나기도 했다. 오랜 시간 일정이 비슷해 같이 걷다가 이제는 먼저 앞서 걷는 종원이, 해인이 그리고 성균 이형 반대로 자주 길에서 마주치다가 레온에서 하루 쉬어서 뒤에 있는 카일과 프랑카 등 저마다 일정에 따라 길을 걷고 있었다.


또한 스페인 사람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 순례자들과 한, 중, 일 아시아에서 온 순례자들 그리고 미국 남미 등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처럼 혼자 와서 걷다가 친구들을 만나서 걷는 이들도 있었고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길을 나선 영국인 부부 순례길에서 만나 연인이 되어 다시 길을 찾은 호주 노부부, 신혼여행을 순례길을 택한 한국인 신혼부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과 함께 걷는 이탈리아 세 남자들 등 그 구성도 정말 다양했다.


모두가 하나하나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세 커플이 가장 내게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온 엔리코(Enrico)와 크리스티안(Christian)은 정말 보기 힘든 커플이었다. 그들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로 부자지간인 순례자였다. 엔리코는 은퇴를 한 5~60대 이탈리아 남자였고 크리스티안도 평범한 30대 이탈리아인이었다.

길 위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친해졌고 항상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는 부자였다. 그런 인자함 때문에 종원이와 준택이는 그들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엔리코를 만날 때마다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정마 아들처럼 꼭 안아드렸다.


특별하지 않아도 둘의 모습은 특별했다. 연인이나 노부부의 여행 이야기는 자주 봤고 어머니와 여행을 함께하는 자녀들의 모습도 갔었지만 부자간의 여행은 내게는 생소하기만 했다.


엔리코 크리스티안 부자 외에도 인상 깊은 커플은 소정 누나와 그녀의 아버지였다. 아스토르가에서 만난 누나는 나보다 한 살 많았다. 이직 전 아버지와 유럽여행을 하다가 마지막 여정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포르투갈을 여행한 후 귀국한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 주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이야기하거나 대화를 했던 경험은 생각나지 않아서 누나가 아버지와 걸으면서 어떤 대화를 할지 정말 궁금했다. 또 연령대가 다르기 때문에 걷는 속도와 생활 패턴이 잘 맞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누나는 처음에는 아버지와 함께 걸으면서 걸음의 속도와 다른 사고 때문에 힘이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산을 워낙 오랫동안 좋아하셔서 걸음이 빠른 편이면서 주변 풍경을 보고 즐기는 것보다는 빨리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는 걸 선호하셨고 누나는 유년기를 외국에서 보내서인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보다는 여유롭게 걸으면서 바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쉬엄쉬엄 가는 걸 선호했다. 처음에는 서로의 차이점 때문에 둘 다 힘들었고 상대방의 걸음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걷다 보니 서로의 사고와 가치관을 존중하게 되었다고 했다. 특히 아버지는 낯을 많이 가리시다가 나중에는 젊은 외국인 친구들과도 친해져서 먼저 알베르게에 도착하시면 장을 봐서 음식을 해주시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


같이 걷다 보면 힘든 일도 많고 안 맞는 부분도 많겠지만 나는 아버지와 같이 걷는 누나가 참 부러웠다. 평생 동안 해외라고는 중국 한 번 밖에 못 가보셨는데 나는 부모님 덕분에 늦은 나이에라도 이곳저곳 자유롭게 가고 배울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우리 아버지는 특히 티브이로 여행 프로그램을 자주 보시는데 꼭 언제 같이 여행을 하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다.


비와 함께 종일 걷다 보니 목적지인 트라이안 가스 떼라(Triacastela)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비에 홀딱 젖었는데 비가 계속 와서 손빨래는 불가능해서 호스피탈레로에게 빨래를 부탁했다. 알베르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세탁은 주로 3유로 건조는 3유로이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 주로 손빨래를 선호하지만 오늘같이 날씨가 좋지 않아 온몸이 젖은 날에는 돈을 주고 세탁기에 젖은 옷가지들을 맡긴다. 며칠 세탁물을 모으거나 같이 걷는 친구들과 세탁물과 비용을 모아 한 번에 세탁기에 돌리면 경비도 아끼고 빨래도 자주 할 수 있다.


씻고 쉬다 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다가왔다. 오늘 저녁식사는 소정 누나 아버지께서 장을 보시고 해주시기로 하셨다. 메뉴는 바로 수제비였다. 밀가루를 사다가 반죽까지 해주시는 정성에 정말 감사했다. 근데 자주 길 위에서 만난 톰과 제리라는 친구들 중 제리만 같은 알베르게에 보이고 톰은 보이지 않았다.


톰과 제리 그들은 20대 중반 한국인 남성 순례자였다. 그들은 절친한 친구로 여행 중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중이었는데 티격태격하곤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다퉈서 톰은 외국인 친구들과 다른 알베르게에 묵고 제리는 이 알베르게에서 따로 묵는다고 했다. 그들은 산티아고까지 걸으면서 여러 번 티격태격했지만 결국 함께 또 여행하고 귀국하고 나서는 웃으면서 순례길을 회상하곤 한다.


이전에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순례길을 같이 걷게 되면 하루 종일 같이 자고 먹고 또 걸으니 이제까지는 몰랐던 부분들을 많이 알 수 있다. 가치관이나 성격이야 다를 수 있지만 여행 스타일이나 걸음속도가 다르다면 서로 배려하고 맞춰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리고 형제간에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점 때문에 다투고 또 화해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결국 인생과 같이 여행에서도 동행과 다른 점을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함께 걷는 것이 서로 행복하고 즐거운 길이 되지 않을까?







경비

알베르게 8

맥주 3.00

빨래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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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662.MOV.jpg 사모스 산실 두 갈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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