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응답한다 1988 28번째 날

by 꿈충만

- 라면

- 약속

- 포르토 마린

- 사랑


작년 첫 순례길을 걷다가 한글을 보고 괜스레 웃게 됐다. 나를 웃게 만든 그 글은 한국 라면들과 함께 있는 '한국 라면 있습니다'라는 글이었다. 3월 비수기 었기 때문에 길 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가끔 한국인을 만날 수 있었다. 요새 들어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길을 직접 걸으면서도 그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었는데 가게를 보고서야 정말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구나 생각하며 가게를 지나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나와 준택이는 라면과 불닭볶음면을 구입했다. 며칠 전 트라 바델로 에서 라면을 먹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오늘 저녁은 꼭 라면을 먹겠다는 다짐과 함께 걸음 속도를 올렸다. 작년에는 불 닭 볶음면은 보지 못했는데 가게 주인아저씨 장사 수완도 더 좋아졌다.


4일 이내로 곧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기 때문에 발걸음이 참 가벼웠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같이 걷다가 먼저 간 친구들의 도착 소식이 들려왔다. 더 이상 함께 걷고는 있지 않았지만 다들 별 탈 없이 무사하게 목적지에 도착해 나도 내가 도착한 것 같이 기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99km 남았다고 알려주는 표지석을 만났다. 드디어 정말 산티아고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포르토 마린에 도착하면서 오랜만에 강을 보니 마음도 시원했다.


나와 준택이는 포르토 마린에 도착해서 독일 한나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고 답변을 기다렸다. 순례길 위에는 같은 한나라는 이름을 가진 순례자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독일에서 온 한나 또 한 명은 한국에서 온 한나였다. 친구들과 걷는 속도가 비슷한 날이면 길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데 가끔 쉬는 시간이나 일정이 틀어지게 되면 길 위에서 못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독일 한나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약속해서 한나를 찾고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오늘 포르토 마린에 먼저 도착해 시내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유독 한나만 보이지 않았다. 5분 정도 후에 한나에게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는데 포르토 마린을 지나 약 8.5km 떨어진 곤사르(Gonzar) 알베르게에 있다고 답변이 왔다.


나와 준택이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곤사르까지 갈 것인지 포르토 마린에서 머물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포르토 마린에 있고 또 중요한 약속도 아니고 내일 만나면 되기 때문에 가지 말고 여기에 머무를까 아니면 사소한 약속도 약속이기에 지키러 더 걸을 것인가 고민했다. 결국 우리는 콜라 한 캔씩을 마시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약속을 지키려는 모습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비를 내려주시기 시작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약속을 지키려고 길을 걷는데 비를 내리시다니 참 섭섭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여유도 없이 땅바닥을 쳐다보며 비를 맞고 겨우 곤사르에 도착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더 쏟아지기 시작했다.


힘든 길을 걸었기 때문에 알베르게에서 만난 한나는 더욱 반가웠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탈리아 남자 순례자가 같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로베르토 한나의 남자 친구라고는 못 하고 또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관계였다. 단 하나 그녀를 아주 아주 좋아하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 이유는 아스토르가에서 둘이 키스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그 둘의 관계는 뭔가 이상했다. 그녀는 로베르토를 계속 피하는 눈치였고 로베르토는 그런 그녀를 쫓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조금은 안타까우면서 그녀를 만나기 위한 모습이 멋지기도 했다.


둘의 사정은 잘 모르겠고 사생활이기 때문에 직접 물어보기는 곤란했다. 혼자 있을까 봐 걱정도 돼 비를 맞고 긴 걸음을 했는데 왠지 모르게 맥이 빠져서 준택이와 나는 오늘 아침 구입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비에 쫄딱 맞아서 그런지 우리는 라면 2개에 밥 6인분을 둘이서 후딱 해치웠다.


산티아고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나와 로베르토는 각자 나라로 돌아가기 전에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까?~

두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작년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24시간 버스를 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IMG_7875.JPG 2016년 표지석


IMG_0250.JPG 2015년 100km 표지석
28번째 날 표지 곤사르.jpg


IMG_7839 (1).JPG 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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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899.JPG 한국 컵라면 있습니다!
IMG_7902.JPG 팀블
IMG_7907.JPG 라면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국 음식을 판매한다
IMG_7912.MOV.jpg 구름 그리고 소
IMG_7915.JPG 고양이
IMG_7916.JPG 후안 준택
IMG_7921.JPG 포르토 마린 가는 길
IMG_7931.JPG 포르토마린
IMG_7932.JPG 88.878km
IMG_7945.JPG 라면과 밥
IMG_7943.PNG 걷기를 그만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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