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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Oct 23. 2019

그들은 왜 나를 미워했을까?

강혜선 / @8k6lalala


“난 걔 이유 없이 싫더라.” 


싫은 이유는 있다. 운이 좋아 매 번 잘못한 일이 들통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배 아파서, 금수저인데 성격까지 좋아서, 싫은 소리 한번 안 하는 착한척쟁이라 옆에 있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되니까, 불편하지도 않은지 매일 휘황찬란한 짧은 치마를 입어대서, 애인이 잘난 사람이라서, 동료들한테 평판이 좋아서, 하는 일마다 척척척 잘 해내서 혹은 일을 너무 못해서, 나한테 잘 보이려는 마음이 없어서, 젊어서, 목소리가 싫어서, 식습관이 거슬려서, 헛기침을 많이 해서, 행동이 느려서… 싫은 이유는 분명히 있다. 다만 입 밖으로 꺼내기엔 내가 상황상 불리해지거나 없어 보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뿐이다.


눈치채지 못해서 몰랐던 일들을 빼고, 어설프게 미운털 박혔던 일들도 빼고 누가 봐도 짠해 보였던 때가 두 번 있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곳에서 과장님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었다. 과장님, 나, 대리님 이렇게 쪼르륵 앉아있었는데 밥 먹으러 갈 때, 잡담할 때, 상의할 일이 있을 때 나를 파티션으로 삼곤 했다. 가끔 용기를 내 농담에 동조해도 말들은 민망함을 꼬리에 달고 공허히 허공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모두들 과장님 눈치를 보느라 쉬이 내 편이 되어주지도 않았다. 내가 퇴사하는 날 잘 지내라고 해주긴 했다. 나를 미워했던 두 번째 분은 투명인간의 정반대 방법을 사용하셨다. 주로 공개망신 기법이었다. 나보다 아랫사람에게 내가 한 일들을 건네며 “이거 한번 봐라…. 네가 한 것보다 못하다”하시곤 했다. 어느 날은 몇십 명 앞에서 말을 하라 해서 말을 했더니, 하는 말 중에 맞는 말은 하나도 없다는 입장표명을 하시기도 했다. 나는 얼다 못해 굳어서 목각이 됐었다.


십년도 더 지난, 오래 전의 일들이다. 미움받았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추측이 되지만, 객관적으로 꼽아보면 당시에 내가 일을 너무 못했다. 한 분은 매번 “나 바빠, 일 두 번하게 하지 마”라고 하셨고, 한 분은 “완성해라, 만들어 내라”하셨다.  








수 백 번 그때의 일들을 복기했다. 한참 뒤에 보니 어느 정도 그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일을 너무 못해서 나 대신 그분들이 난처했던 적이 있고, 퇴근도 늦었다. 그분들에게 피해를 줬다. 일을 못하면 대인관계로서라도 풀었어야 했는데 그런 방법도 몰랐다. 사실 당시에는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더 일을 키운 행동이기도 하다.


미움만 받은 건 아니다. 강사로 일하면서 크게 문제가 됐었던 적도 없고, 한번 인연을 맺은 기관에서는 대부분 계속 수업 요청이 왔다. 내 글을 읽고 진심 어린 조언이나 칭찬을 해주신 분들도 계시고, 그 외 별 일 아닌 것에도 잘했다 해주신 분들이 계시다.


예쁨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꼭 마음에 더 깊게 남는 건 미움받은 일들이다. 내편이 되어주었던 이들도 다른 곳에선 누군가에겐 괴물일 수 있다. 나 역시 어떤 이들을 미워했고 험담했다. 하먼 멜빌은 말한다.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때리고 맞는다”라고. 조금 길지만 그의 글을 소개하고 싶다.


 "이 세상에 노예 아닌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 늙은 선장이 아무리 나를 혹사하고 부려먹어도, 아무리 쥐어박고 후려갈겨도, 나는 괜찮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만족한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어떤 식으로든 – 다시 말해서 육체적인 관점에서든 정신적인 관점에서든-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때리고 맞는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로 어깨뼈를 문질러주면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

모비딕」_ 허먼 멜빌 / 김석희 역 / 작가정신               


나를 괴롭히던 사람에게는 분명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고 그렇다고 그를 바꿀 수도 없다. 애써 그 사람이나 상황을 이해하려 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 단지 좀 오래 걸릴 뿐이다. 시간이 흘러 나를 괴롭혔던 이들이 이전만큼 밉지 않을 때 모비딕의 글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에게도 조금은 연민이 느껴지지 않을까 한다. 그도 나도 결국엔 이 세상 노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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