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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Oct 21. 2019

금주와 금연은 남편을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

술과 담배와 커피와 초콜릿



예부터 전해지는 말은 자고로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콩깍지’라는 말이 딱 그렇다. 연애할 때 남편이 담배를 필 때면 고민이 있겠거니, 힘들어서 그러겠거니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담배를 피우는 그의 모습에는 수많은 고뇌가 슬어있었다. 술도 안주로 적당한 음식이 나왔을 땐 몇 잔 곁들이는 게 예의다 했다. 또 온전히 본인의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분위기상, 강권에 의해 마신다고 믿었다. 내 사랑이 숙취로 고생하는 날에는 안쓰럽기 그지없다는 듯 캔디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곤 했다.


결혼 후 커다랗고 동그랗게 반짝이던 눈은 10분의 1로 줄어들어 가자미 눈이 되었다. 그 녀석들 때문이다. 담배는 냄새와 연기가 너무 괴로워 피지 않았으면 좋겠고, 술도 우리 아이와 본인의 건강을 위해 줄였으면 좋겠다. 짜증반 잔소리반의 소리를 정신없이 날려대면 남편도 할 말이 많다고 한다. 자긴 같이 술 한잔 마셔주는 사람이 좋은데 연애할 땐 마셔놓고 지금은 왜 안 먹냐 이거다. 사기 결혼이란다. 그야 그땐 콩깍지 시절이고 모든 게 좋을 때라 술도 달았다.




결혼을 앞두고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고모부께서 말씀하셨다. “서른 넘은 성인은 고치려야 고칠 수가 없다.  그러니 그런 허황된 생각은 애초애 하지도 말고, 서로 이해하며 잘 살아라.” 그때는 그 정도쯤이야 했다. 그런데 그깟 것 정도로 여겼던 일들로 지금은 두통을 앓는다.


남편의 행동에 깐죽대고 결국은 얼굴을 붉혔던 어느 날, 화를 참기 위해 정신없이 청소기를 돌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금주와 금연은 그를 위한 것일까, 나를 위한 것일까?’


표면상으론 가장이자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다.  또한 우리 아이가 나쁜 공기를 마시는 것이 싫고, 더불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습관(혹은 취향)을 보고 배우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  취한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이 싫다. 좋은 것만 담아두었으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나쁜 것이라 하고 나라에서는 세금도 많이 걷으니 응당 내 말이 옳다 싶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이 애주가이며 애연가라는 사실이다.


와인과 와인 오프너를 함께 팔고 있는 중국의 마트






 나는 커피 중독이자 단맛 중독자다.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즐기다 그렇게 됐다. 결혼식 날 나의 시스터는 형부에게 당부를 했다. “형부, 언니가 신혼여행 가서 짜증을 내면 커피랑 초콜릿을 먹여요.” 남편은 이미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겠다며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커피 대신 담배를 피웠다면 단연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애연가가 되었을 것이다.


술과 담배는 남편이 가장 즐기는 기호식품이다. 또한 그것을 향유하는 시간을 사랑한다.  내가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화가 나듯 남편 역시 그럴 것이다. 서른 넘은 사람은 고치기가 힘들다는데 결혼할 때 나의 배우자는 서른보단 마흔에 가까운 나이였다. 내가 그를 지도 편달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원하는 일이란 말인가? 또한, 아직 두 문장의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아빠가 하는 어떠어떠한 일이 싫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던가? 부인이라는 타이틀을 단 타인의 객기이자 욕심이다. 그렇지만 담배 냄새는 참 싫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중 주요 장면인 노동 장면에서, 한 익살맞은 노동꾼인 영감의 모습이 묘사된다.


"영감은 버섯을 볼 때마다 허리를 구부려 주워서는 호주머니에 넣었다. "또 할멈한테 선물이다." "


리드미컬한 대사 덕인지, 선물이라는 긍정의 단어 때문인지 이 문장을 볼 때면 유쾌하고 따뜻한 기분이 든다. 할멈은 요리를 해야 하니 그 선물이 영 징글징글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누군가 무언가를 애써 손에 넣으며 나를 떠올려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부부에게 버섯은 술과 담배와 커피와 초콜릿이다.



<Sharing their pleasures> _ Eugenio Zampighi



올해 처음으로 남편에게 담배 선물을 했다. 면세점은 담배가... 술이... 싸다. 선물할게 따로 있지 그걸 건네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사랑하는 기호 식품들을 보면 남편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오늘도 넌지시 말을 건네본다. “건강을 생각하면 참~ 좋겠다~”고 말이다.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언젠가 한 번은 물건을 정리하다 니코틴 패치와 보건소에서 받아 온 듯한 각종 금연 관련 물건들을 보았다. 짜식이 노력을 하긴 하는 것 같아 고맙고 뭉클했다.


커피를 포기할 수 있는가? 지금도 커피를 마시고 있다.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은 커피 마시는 시간이다. 포기… 못 할 것 같다. 행복하니까. 단 음식은 줄이려고, 먹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설탕을 끊어내는 그 날, 당당히 법적 배우자로서 정중히 부탁해볼까 한다.


“사랑하는 그대, 아름다운 우리 가정을 위해 금주, 금연 어떠실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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