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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Aug 22. 2019

여름이 간다.

일상 에세이

지금껏 여름을 싫어했다. 덥고, 덥고...... 무덥다. 몇 해 전부터는 습하기까지 하다. 불쾌지수는 정점에 달한다. 뚜렷한 장마철 역시 사라져 삼사일 혹은 일주일 간 잠시 숨 돌릴만했던 휴식기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대신 열대야만 있을 뿐이다. 뒷산이 있는 우리 집은 에어컨이 필요 없는 휴식처였다. 땀이 난다 싶을 땐 선풍기 한 두 대면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전기가 뿜어주는 냉랭한 바람에 의지하지 않고는 잠들기가 힘든 곳이 되었다.  

 

낮 시간 내내 콧바람 쐬고 싶다고 보채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 해가 질 무렵 나왔다. 여전히 쨍쨍한 햇빛에 눈을 찡그리고 걷는데 문득 '여름이 가는 게 아쉽네'하는 말이 입에서 맴돈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어 다시 생각을 해봤다. 정말로 여름이 아쉽다.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런트는 그의 책 <<노년에 대하여>>에서 '마흔 살이 넘으면 제도의 복잡성과 욕망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기도 하고, 기운이 떨어져 움직이는 그림 같던 인생이 정지 화면으로 멈춰 서는 편을 선호'한다고 했다. 아직 마흔 전이라 그런가 멈춰 서고 싶진 않다. 그런데 천천히 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여유가 있어서라기 보단 꽤 많은 해의 여름을 지내며 ‘어차피 때가 되면 지나간다’라는 경험에 의한 믿음이 생겨서이다. 뜨겁고 징하지만 이십여 일 정도 시원한 거 마시고, 삼계탕 몇 번 먹으면 또 언제 그럈냐는 듯이 더위는 고개를 숙인다. 이제는 정말 계절의 흐름을 몸으로도 알게 됐다. 이전보다 체력은 약하지만 버텨낼 수 있는 여유는 있다. 힘으로만 싸우는 것은 아니다.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곧 시원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니 여름의 맛이 느껴진다. 땀나게 걷고 샤워한 후에 먹는 수박의 맛, 새벽 서늘함이 느껴질 때 두 다리 사이에 꼬고 있던 이불을 몸에 감는 그 맛, 여름 바다의 소란스러움, 여름 계곡의 차가운 물소리, 반팔 반바지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건강한 피부색. 그렇게 여름에만 만끽할 수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는 갱년기로 오랜 시간 고생을 하고 계신다. 갱년기 증상인 안면홍조와 미열로 여름은 특히나 힘들다. 더울 땐 꼼짝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예전에 늦둥이인 친구 집엘 가면 어머니께서 항상 누워계셨다. 나를 싫어하시는 건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는데 그때의 연세를 생각해보니 갱년기셨다. 중년기를 마무리짓는 여름은 그토록 힘겹다. 내가 맞이할 갱년기 역시 멀지 않았다. 그땐 진짜 더운 게 징글징글할 테니 지금 아쉬워해야 한다.  

 

겨울에도 반팔을 입을 땐 몰랐던, 감기약 몇 번이면 감기가 물러날 시기엔 몰랐던 그 좋은 여름을 또 이렇게 보낸다. 여름 굿바이 선물로 진짜 당도 높은 수박이나 한통 맛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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