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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Nov 04. 2019

'너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인생. 육아. 생각

아기가 토끼잠을 자는 정오는 나에게도 휴식시간이다. 잠깐 동안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거나 그림을 보거나 텔레비전을 본다. 잠을 자기도 한다. 그런데 문득 낮시간을 이렇게 보내는 것에 죄책감이 밀려들거나, 휴식이  열의를 가져다주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윤두서의 자화상을 꺼내본다.


국보 제240호 자화상/ 「군자의 삶, 그림으로 배우다」_조인수_다섯수레


공재 윤두서는 18세기의 화가다. 26세에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나 뿌리 깊은 남인집안의 자제로서 서인세력이 득세하던 이 시기에 벼슬을 하지 못했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이들과 현실 문제를 고민하고 연구했지만 시기상 큰 뜻을 펼치지는 못했다.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매서운 그의 눈은 자신의 그런 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무기력하게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공재의 눈이 꾸짖는다.


'너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눈을 아래로 두고 훑으면 추레한 차림의 내가 나타난다.  슬프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잘 되지 않는다고, 지금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항변하고 싶어 진다. 그런 마음으로 그를 다시 한참 동안 바라보면 불현듯 움직여야겠다는 마음이 차오른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상황상 그렇기도 하고 때론 선택에 의해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가만히 움츠리고 있기엔 시간이 아깝고 부족하다. '기다리는 게 답'이라는 말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기다려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갑자기 큰일을 해낼 수는 없지만, 매일을 쌓아서 만들고 다듬으면 하려는 일의 발판은 만들어 둘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공재의 근엄한 질타를 받은 후엔  좀 더 애정 어리게 아이를 돌보고, 즐겁게 집안일을 하고, 마음으로 책을 보고, 진정한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죄책감 없이 텔레비전을 본다. 전업 주부를 선택했고,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요즘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을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너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매일을 그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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