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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Nov 05. 2019

중년의 꿈, 당신과의 합의

부부, 결혼, 달과 6펜스

오일 장터에서 시계를 수리하시는 할아버님의 모습이 화면 속에 비친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남편을 스치며 “할아버님이 여든은 넘어 보이시는데 대단하시네”했더니 피식 웃으며 100세에 가까우시다고 한다. 정말 놀랄 노자다. 믿을 수가 없어 자리에 앉아 보는데 장이 열리는 곳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시고, 홀로 생활하시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깔끔하게 멋쟁이 차림을 유지하신다. 반백년 넘게 해온 일이시니 감으로 하는 것이라라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봐도 시계 수리에는 웬만한 시력이 필수일 것 같은데, 모든 게 척척 이시다. 해가 질 무렵 할아버지께선 만 원짜리 지폐를 부채모양으로 펼쳐 보이신다. 아흔이 넘은 노신사의 일당! 대단한 기술과 체력이다.


100세 시대라고 한다. 설마 설마 하는데 매번 텔레비전엔 허리가 곧은 여든이 넘은 어르신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분들이야 말로 일도 노는 것도 한창때다. 저마다 운명의 길이가 다르니 꼭 퇴직 후 몇십 년 간의 생활을 준비해야 한다고는 못하겠지만, 장수를 마다할 이는 많지 않을 터이니 늦어도 중년의 중반부부터는 노년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렇담, 다시 말해 꿈을 꾸어도 된다는 이야기일까? 오일장의 멋쟁이 할아버님과 같이 하던 일을 계속 하기란 여러 조건상 쉽지 않으니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때 꿈꾸던 일을 실행해도 되는 것일까? 지금부터 꿈을 계획해도 되는 것일까?






서머셋 모옴의 작품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평범한 사십 대 가장이다. 증권 중개인으로서 생활도 풍족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빼곤 가족관계, 대인관계에도 특별한 문제는 없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사라져 버린다. 주변인 모두는 부적절한 관계의 여성을 떠올리는데 실은 화가가 되겠다는 열망으로 모든 것을 버린 채 프랑스 낡은 호텔을 전전하며 그림을 그린다. 이때 스트릭랜드의 부인은 평소 알고 지내던 글의  화자에게 남편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프랑스에서 스트릭랜드를 만난 화자는 이야기한다.


“당신 나이에 시작해서 잘될 것 같습니까? 그림은 다들 십칠팔 세에 시작하지 않습니까?”

“열여덟 살 때보다는 더 빨리 배울 수 있소.”


나는 이 장면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에는 경험과 그것에서 우러나오는 요령과 감이 포함되고, 갈망의 크기만큼 집중도도 더 높을 수 있다. 어리고 젊었던 때보다 더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도처에 있다. 뒤늦었기에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스트릭랜드처럼 위대성을 가진 예술가가 되긴 힘들겠지만 소소하게 생활비를 벌거나 노년의 시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취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니 할 수 있으니, 해도 되는 것일까? 스트릭랜드는 모든 짐을 부인에게 전가한다. 십칠 년 간 부인을 먹여 살려 왔으니 부인 혼자 살아볼 수 있다고도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에 긍정을 하기도 했지만, 부부지간만의 문제가 아닌 가정의 책임 측면에서 볼 때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생은 무섭게 길어졌다. 이전 세대는 부부가 사오십 년 남짓을 함께 살았지만, 앞으로는 육십 년 이상을 함께해야 한다. 이전 가정의 틀 만을 유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경우라면 성인이 될 때까지의 책임은 공동이다. 자율 의사에 의해 약속했다. 함께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유지만을 위해선 서로가 다시 꿈을 꾸기 힘드니 양보하고 배려해줄 수 있는 경제적, 정신적인 최소한의 선을 합의해야 한다.


결혼 전 중국 친구가 좋은 사람 만나라며 선물해준 신랑신부 장식품


꿈을 좇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거나 한쪽이 희생하는 것으로는 이후의 시대는 살아내기 어렵다. 기본적인 선을 유지하며 꿈에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선’ 이 어렵다. 도대체 그 지점은 어디란 말인가?


사십 대, 부부간 부모 간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끼를 두 끼로 줄이는 것은 현재의 행복을 버리는 어리석은 일이니 고기반찬 조금, 외식 조금, 여행 조금 줄이며 꿈을 꿔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부부 둘 모두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긴 노년이 너무도 지루하고 무서울 것 같다.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_김희은_써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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