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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Nov 06. 2019

너무 많이 아는 죄

출산, 배냇저고리, 상대적 박탈감  

임신 사실을 안 날부터 내내 인터넷 검색을 했다. 궁금한 것도 많고 혹시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병원 일정, 출산 준비물 목록, 출산 후기 등을 열심히 찾아보며 숙지했다. 실전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아기 낳으러 가는 날 병원에 들고 갈 출산 가방을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는 선배 엄마들의 글을 읽고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출산일부터 산후조리원 퇴소일까지는 20일에 가까운 일정이었기에 준비가 만만치 않았다.


손바느질로 만들어둔 배냇저고리를 세벌 넣은 후 가재 수건을 집어 들었다. 소중한 아기 피부를 지켜주기 위해 미리 사서는 나쁜 것 빼낸다며 몇 번이나 빨래를 하고 삶기를 반복해 고이 접어둔 정성 듬뿍 수건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출산 리스트에는 가재 수건이 10장 미만으로 적혀 있거나 필요하지 않음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개인 세탁기는 당연히 없을 테니 몇 장을 가져가선 손빨래를 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출산 선배가 말하길, 병원에서는 병실에서 아기를 돌보니 필요가 없고, 산후조리원에서는 빨래를 해주니 많이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찜찜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었다.


뉴스에선 병원과 산후조리원의 위생상태와 안전문제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산후조리원을 선택하기 위해 둘러볼 때도 모두 철저한 관리를 자랑했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을 해보니 석연치 않은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돈을 받는 곳이라도 손빨래할 일은 없고... 그렇담 병실에 있는 아기들의 빨래를 모두 함께 세탁기에 넣는단 말인가? '그저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 사람들이 좋다고 했던 곳이다'란 기준만 가지고 있었지 구체적인 상황들은 생각해 보질 않았었다.  




<가브리엘과 장> _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크는 동안 친정 엄마께서는 안방 서랍에 내가 처음 입은 옷, 배냇저고리를 보관하셨다. 자랑스럽고 소중히 여기셨다. 수능 보러 가는 날엔 행운을 불러달 줄 거라며 내 몸에 둘러주시기까지 했다. 이게 다 뭐냐고 짜증을 냈었지만,  내심 부적으로 삼으며 위안 받았었다.


배냇저고리는 나의 첫 소유물이자 엄마의 보물이었다. 나 역시 태교를 겸하여 배냇저고리를 만들었다. 천을 떼 일일이 만든 것은 아니고 인터넷에서 제단 된 판매용품을 사 박음질을 했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가 만든 옷을 입는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고 감격스러워 만드는 내내 행복했다. 그런데 막상 출산일이 가까워보니  만든 옷을 병원에 전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담당 선생님이 계셨지만 출산의 특성상 선생님의 근무 시간이 아닌 경우 어떤 선생님께서 아이를 받아 주실지는 모를 일이었다. 병실과 간호사 선생님 역시 모두 그 날 알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랜덤이었다.


신도시 제법 큰 병원을 다녔다. 그 근방에서 거기 아님 여기인 그런 병원이었다. 열 달 가깝게 진료를 받으며 모든 것이 시스템화 되어있는 것에 편리함을 느꼈다. 그런데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뜬금없는 소외감이 불쑥 한 번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산통을 겪는 동안 안락한 1인 병실에 누워있었다. 그러나 그 큰 병원엔 나와 같은 대기자들이 많았고 당연히 간호사 선생님들은 바쁘셨다. 의사 선생님의 얼굴은 볼 수 조차 없었다. 진통이 심해지면 벨을 누르라는 안내만을 받았다. 나와 남편은 오롯이 진통을 겪으며 서로를 의지했다. 나중엔 너무 아파 남편을 닦달해 바쁜 간호사 선생님을 모셔왔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더 노력해야 한다'는 호통뿐이었다. 10시간 넘게 진통을 하다 결국엔 기절 직전에 휠체어에 실려 수술실로 갔다. 수술실로 이동되는 순간 남편은 짐을 쌌다. 나중에 들을 이야기론 내가 자연분만을 하지 않으니 병실을 비워줘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진통을 겪는 산모들이 많았기에 얼른 방을 빼줘야 하는 실정이었던 거다. 나는 여전히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수술실로, 남편은 짐을 보따리 보따리 들고 어딘가로 쫓겨나며 그렇게 우린 헤어졌다.  






눈을 떴을 때 또다시 안락한 병실이었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 모르는 이의 손에 이끌린 아기가 엄마를 만나러 왔다. 눈물을 흘리며 아기를 안아보았다. 아기는 예뻤지만 안타깝게도 아기는 어느 분유 회사의 로고가 남색으로 찍힌 민무늬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누가 봐도 멋없고 정 없어 보이는, 기념식 대량 수건과 같은 옷을 아기는 입고 있었다. 그게 그의 세상 첫 옷이었고, 아기는 순리대로 그 회사의 분유를 먹었다.


옷은 병원 아이들의 공용이었고 젖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입원을 하고 있는 병실 층 한쪽에 분유가 놓이는 곳이 있었다. 일괄적으로 40ml의 분유가 타진 스무 병 정도의 젖병이 항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아기가 매일 같은 시간에 작은 플라스틱 침대에 누워 나를 만나러 올 때면, 그곳에서 분유를 가져다 먹이곤 했다. 물론 철저한 살균 과정을 거쳤겠지만, 여하튼 공용이었다. 산후조리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기 용품은 모두 멸균 처리가 되었지만, 그 또한 공용이었다.


사백만 원에 가까운, 내 나름에는 큰돈을 조리용 2주 비용으로 지불했다. 병원비 역시 놀랄 만큼 대부분의 금액을 나라에서 지원받긴 했지만, 그 비용이 적진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큰돈을 지불했기에 나만을, 내 아이만을 위한 관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결국 그 착각의 자리는 소외감이 대신했다. 후에 궁금하기도 하고 약간은 억울한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지불한 비용의 배 이상을 내면 생각했던 바와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는 있는 것 같았다. 






TV에서 보고 영화로 보던 출산은 사적이고 고결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출산은 공용 젖병과 분유회사 로고가 찍힌 배냇저고리였다. 이게 바로 ‘너무 많이 아는 죄’ 였던가! 아니면 원하는 만큼 지불하지 못한 죄였단 말이가! 너무 많이 보고 들어 알고 있어, 그것을 꿈꿨다. 출산 후 한동안 컨베이어 벨트 위의 물건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우울했다. 그동안 봐왔던 많은 장면들을 떠올리며 소외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그제야 자연주의 출산과 집에서 하는 산후조리 방법 등이 떠올랐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 부부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양가 어머님들 혹은 남편의 전폭적인 도움이 필요한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후유증이 컸지만 만일 둘째를 낳는다면 나는 또 그 병원을 선택할 것이다. 의료진이 많고, 수술이 용의 하고, 특히 24시간 마취과 선생님이 계신 곳이다. 선택해야 한다.  


 나의 선택이니 탓할 수는 없다. 허나 서글프다. 아픈 부인을 걱정하며 겸연쩍게 짐을 싸 방을 비워주던 남편의 모습이 그려지고, 태어나 20일 가깝게 분유명이 찍힌 옷을 조리원 동기 친구들과 돌려 입은 아기가 안쓰럽다. 임신과 출산은 축복이었던가?






조리원에서 며칠을 보낸 날, 교복과 같은 배냇저고리를 벗겨주고 출산 한 달 전부터 가방 속에 넣어 두었던 색동 배냇저고리를 입혀주었다. 처음 옷을 입혀보는지라 겁이 나고 서툴러 남편과 한참을 고군분투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엄마표 옷을 입은 아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던지, 제 옷임이 분명했다.  


아기를 낳는 과정을 거치며 뜬금없이 내가 현대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그토록 기계식으로  배우던 ‘인간 소외’를 경험했다. 나를 도와주는 많은 이들이 있었고 아기가 건강했기에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했지만, 출산의 주체가 산모가 아닌 것 같은 이 소외감을 떨치기는 쉽지 않았다.


나도 후에 아기에게 배냇저고리를 둘러줄 수 있을까? 행운을 가져다주는 옷은 세상 태어나 처음 입은 옷이라는데 병원 침대에 누워있느라 아기가 언제 어떤 옷을 입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지금’의 시간에 살고 있으니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 배냇저고리 스토리만큼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씁쓸하고 겸연쩍은 외로움으로 말이다.




<언덕위에서> _ 찰스 커트니 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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