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마감을 앞두고

'잘 안 된 것은 잘 안된 것이다'

by 강혜선


전날 잠 못 잘 일이 있어 비몽사몽 걷고 있었다. 마트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정문에 다다랐을 즈음 핸드폰이 울린다. 혹시나 벌써 아기가 깼나 싶어 핸드폰을 꺼내보니 브런치다. 확성기(?)가 나에게 알린다.


[공모전 마감 D-8].



심장이 툭 떨어진다. 놀랬던 것 같기도 하고, 설렛던 것 같기도 하다. 매년 이맘때쯤 시험이 있는 걸 알면서도 정식 공고가 나면 심장이 두근대던 그런 느낌이었다. 공모전 마감일은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공지를 받으니 이렇게 또 새롭다.


브런치북 공모전이 있길 고대했었고, 발표가 되었을 때는 야심이 가득했다. 서른 꼭지의 글을 모두 쓰리라 각오를 했었는데... 길 위에서 마지막 통보를 받은 나는 그저 아쉽다. 할 말은 많다. 요약하자면, '바빴다'. 여하튼 모두에게 시간은 공평하니 약속된 시간은 일주일이다.


공모전을 준비할 땐 즐겁다. 다행히 이것 하나만으로도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긴 하다. 여기저기서 자료 찾고, 이리저리 써보고, 수정하고, 당선된 후의 일들을 상상한다. 당선의 기쁨은 상금으로까지 이어진다.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것 또한 재미다. 문제는 명단에 이름이 없을 때다. 길게는 몇 달, 짧게는 한 달을 내내 그 생각만 하고 있었기에 공식적인 거절은 큰 좌절과 상처를 남긴다. 애초에 떨어질게 부끄러워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조차 하지 않기에 슬픔을 나누기도 힘들다. 우울감으로 깊고 긴 굴을 만들 뿐이다. 우연히 동생에게 브런치 공모전 이야기를 꺼냈다. 동생이 공고문을 유심히 보더니 한마디 한다.



"발표날이 12월 30일이네. 당선된 사람들은 정말 최고의 해가 되겠다!"



생각 못했던 일이다. 뭔가 더 충격이다. 말없이 낙선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래도 하루는 남네'.


발표날이 12월 31일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1월 1일은 이전의 일들을 리셋시키는 신비한 힘을 가진 날이니 하루만 좌절하면 될 일이다. 아마도 12월 30일 오전까지는 희망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을 것이다.





될 것 같던 일이, 됐으면 하는 일이 성사되지 않았을 때 와리스 디리의 말을 듣는다. 사막 유목민에서 세계적인 슈퍼모델이 된 그녀는 '일의 실패'를 이렇게 받아들인다.


빨리 깨달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한 일자리에 너무 집착하거나, 진심으로 원하던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고 속상해하거나, 좋아하는 디자이너에게 거부당했다고 상처 받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자리를 얻었을까? 얻을 수 있을까? 왜 안 됐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미쳐버리기 십상이다. 특히 일을 따내지 못했을 때는 더하다. 그것 때문에 속상해 하면 얼마 가지 않아 산산 조각나 버린다. 결국 깨닫게 되는 사실은 대부분의 캐스팅 결과는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중략) C' est la vie(인생은 다 그런 것). 잘 안 된 것은 잘 안된 것이다.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뿐이지 내 잘못이 아니다. ...(중략)... 그러니까 잊어버려야 한다.

<<사막의 꽃 >> / 와리스 디리_이다희 옮김_섬앤섬


'잘 안 된 것은 잘 안된 것이다'. 실패했을 때 이 문장을 몇 번이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물론 모델이라는 직업 특성상 콘셉트나 취향에 의해 일이 결정되기에 글 쓰는 일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실패'라는 것을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 좌절과 우울이 실력을 높여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잘 쓰는 법은 '매일 쓰는 것'이라고 한다. 훌륭한 글들은 아니지만 나 역시 경험이 있다. '완성'을 위해서는 완성을 시켜야 한다. 써야 한다면 지금 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게으름이 후회되고, 실력이 한탄스럽고, 실패가 걱정돼 쓰기가 싫다. '써서 뭐하나'란 생각이 머릿속의 절반을 지배한다. 그럴 땐 플랜 B도 생각해본다. 당선되지 않는다면 열심히 쓴 글에 더 열심히 쓴 글을 더해 투고하면 될 일이다. 조금 힘들긴 해도 방법은 있다.


아기를 재우고 집안일을 좀 하고 나니 11시다. 쓰기로 한다. 어제 마트에서 사 온 하얼빈 맥주와 도리토스를 꺼내 세팅을 한다. 훌륭하다. 이제 쓰면 된다. 부족한 꼭지를 더 채우기 위해 새로 쓸지, 이제 그만 정리하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써 둔 글을 수정할지 고민이지만, 우선은 쓰기로 한다.


옆 자리에 함께 있진 않지만, 지금 열심히 글을 쓰고, 다듬고 있을 나의 경쟁자분들께도 응원을 보냅니다.


우선, 써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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