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익숙해지지 않을 시간

새로운 것에 대한 글쓰기는 2년 안에

by 강혜선

심장이 쿵쾅거리는 사랑의 기한은 길어야 3년이라 했던가요? 사랑에 빠지면 만들어지는 뇌 속 신경전달물질인 페닐에틸아민의 영향이라 하는데 그 요인 외에 ‘익숙함’의 지분도 꽤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국에 온 지 햇수로 5년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일상을 글로 쓰려다 한 번씩 ‘우리나라에도 있었나? 지금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기억을 되짚어 볼 때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입니다.

중국에 왔을 때 슈퍼마켓에서 1000ml 우유팩만 한 요구르트를 보고 신기해했었습니다. 요구르트는 작은 병을 한 두 개 먹어야 단맛 없이 깔끔한데 저렇게 많이 마시면 달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느 날엔 동네 광장에서 어른 키보다도 더 큰 공룡에 올라타 있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조형물에 올라탄 장난꾸러기들 이겠거니 했는데 한참을 지켜보니 공룡 목과 등 사이가 움직입니다. 스프링이 달린 작은 말을 타듯 아이들은 공룡을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적잖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중국 열대 과일에 대해 글을 쓰려는데 문득 한국에서도 먹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예식장 뷔페? 돌잔치?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먹었던 것 같은데…?’.

대왕 요구르트는 신기해만 하고 글 쓰기를 게을러하던 사이 우리나라에도 보편화되어 소재의 신선함을 잃었고, 움직이는 공룡은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도 있을 거야.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다’라는 잠정적 확신이 머릿속을 장악해 글 쓰기가 뭐해졌고, 요즈와 같은 과일은 중국 생활을 하며 익숙해진 나머지 독자들에게도 새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글쓰기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자신감을 잃었다는 표현이 적확하지 싶습니다.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것, 다른 나라에서 내가 받아들인 정보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새로운 것’ 일 거라는 확신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내가 본 것과 그것으로 인한 감동을 생생하게 표현해 내야 하는데 이미 익숙해진 나머지 글감과 글쓰기에서 한계를 맛보게 된 것이지요.

우리 집을 방문한 나의 시스터는 ‘중국은 모든 신호등에 잔여 시간이 초로 표기되니 편하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순간 ‘아! 그렇지!’싶어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동생은 일정 내내 곳곳에서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마트 앞에는 왜 유모차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작은 기둥들이 세워져 있는지, 소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양고기를 파는 곳이 각각 다른지, 패스트푸드 점에선 정말로 먹은 음식을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은 건지를 궁금해했습니다. 그리고 커피와 함께 나오는 뜨거운 생수에 감사해하고, 뜨거운 물은 공짜이나 차가운 물은 돈을 내야 하는 문화를 신선해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나라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 역시 기한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불타는 사랑이 전부는 아니며 내 것과 같이 잔잔하게 스며든 익숙함 역시 소중하지만 기록하고 글을 쓰기에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다른 문화에 대해 여행기를 쓰거나 에세이를 쓰고자 하시는 분들께 감히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2년 안에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록해 두시는 것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놀랍고 새로웠던 일들은 늦어도 3년 안에 쓰는 것이 좋습니다. 완성된 원고가 아니라 어설픈 초고라도 써 둔다면 그때의 기억들이 모호해지는 일을 줄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찔하게 신선했던 것들은 서서히 무뎌집니다. 선명했던 사랑의 기억이 잔잔한 추억으로 남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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