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혜선 Nov 15. 2019

돼지 저금통을 어떤 추억으로 대신해야 할까

중국 전자결제 시스템, 중국 자판기, 위챗 머니

4년 전 중국 대학에 어학연수를 왔을 때 커피자판기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대학 건물의 1층에는 당연히 자판기가 있을법한데 드문드문 한두 개씩 놓여있는 게 전부였다. 다른 건물에 일이 있어 갔다가 자판기를 보고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모른다. 이후에도 중국 어딜 가나 자판기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알아보니 중국 동전의 단위가 작고, 종류가 많아 관리하기 쉽지 않은 탓에 설치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자화폐가 활성화 되기 전 사용되던 동전 자판기


4년 후 현재, 곳곳에 자판기가 보인다. 음료 자판기뿐만 아니라 음식, 장난감, 게임 등 건물 한쪽엔 여러 종류의 철제 통들이 현란한 물건을 담고 고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살고 있는 아파트 1층에는 생수와 쌀을 살 수 있는 자판기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전자결제 시스템 덕에 가능하다.  



QR코드를 사용하는 생필품 자판기
동전과 지폐 사용이 불가능한 QR코드 사용 방식의 자판기


1년 전 중국 KFC에선 키오스크를 통해 햄버거를 팔았다. 키오스크 역시 전자결제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키오스크 조차 없다. 개인 휴대폰을 사용한다. 벽이나 자리에 붙어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메뉴 정보가 뜨는데 종류와 수량을 선택하고 결제하면 끝이다. 음식점에는 한눈에 몇 명인지 세지 못할 만큼 종업원이 많은데도 식당에 들어서면 친절하게 QR코드를 이용해주십사 하고 안내를 한다. 주문과 결제는 업무에서 빠진 격이다. 주문하는 사람 역시 편하긴 하다. 눈치 보지 않고 오래 메뉴판을 볼 수도 있고, 기다리거나 줄 서는 일이 없다. 그런데 좀 뭐랄까... 재미없고 정 없다.  



식당 자리에 부착된 주문과 결제용 QR코드





요즘 중국에선 현금 쓸 일이 정말 없다. 죄다 핸드폰으로 찍거나 찍도록 한다. 우리나라만큼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터라 카드를 내미는 사람도 보기 힘들다. 오로지 휴대폰이고 간혹 어르신들께서 현금을 사용하긴 하신다. 작년에 동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버스카드를 사려고 했었는데 여차저차 사지 못했다. 샀더라면 후회할 뻔했다. 1년 사이에 카드는 사라지고, 그것 역시 핸드폰 속 QR코드로 대체되었다. 이 정도라면 무겁고, 보안 문제 있는 핸드폰은 뭐하고 들고 다니나 싶다.


한국에 왔더니 어머님께서 돼지저금통에 큰 플라스틱 동전을 넣는 장난감을 사두셨다. 아이는 신이 나서 한참을 가지고 논다. 어느 날은 유튜브로 동요를 들려주는데 "땡그랑 한 푼, 땡그랑 두 푼~"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듣다 보니 우리 아이는 '동전'과 '저축'을 배우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선 그래도 은행 갈 일이 있는데 중국에선 영 없다. 외국인이라 은행 업무가 용이하지 않고,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래서 갈 일을 만들지 않는다. 어쩌다 한 번씩 중국에 지점이 있는 우리나라 은행에 갈 뿐이다. 그곳에 동전을 지폐로 바꾸는 수고로움을 하러 가지는 않을 테니, 아이는 집에 있는 동전을 그저 어른들이 어딘가에 쓰는 물건 정도로 생각할 것 같다.


유치원 때부터 용돈을 받았었다. 아빠가 출근하시며 매일 100원씩을 주셨다. 돈인건 알았는데 매일 주시는 거라 여기저기 굴렸다. 그러면 엄마께서 저금통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렇게 한 달에 삼천 원을 모아 매달 은행에 가서 저금을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선생님이 저금을 대신해주신다. 통장과 돈을 선생님께 드리면 입금 금액이 찍힌 통장이 내손에 들리곤 했다. 그렇게 매달, 6년을 저금했다. 저학년 때는 삼천 원씩 하다 고학년 무렵에는 오천 원씩 했던 것 같다. 그 우체국 통장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졸업할 때는 삼십만 원 정도가 모였던 것 같다. 그 돈으로 중학교 입학 기념 책상을 샀었다. 이 저금과 통장 그리고 책상에 관한 기억이 내가 유년시절에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 중 하나다.


아이를 낳으면 꼭 용돈을 주고 저금통을 사주고, 같이 은행업무를 보러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젠 나조차 동전이 없다. 당연히 동전 밥을 먹는 귀여운 돼지들도 있을 곳이 없어졌다. 우리 부부 역시 생활비를 위챗(중국의 카카오톡)으로 주고받는다. 인증서와 같은 보안 장치는 없다. 상대방이 띡하고 돈을 보내면 그냥 사진 열어보듯 클릭만 하면 된다. 보낼 때도 6자리 숫자 비밀번호면 끝이다. 아마도 나 역시 아이의 용돈은 전자화폐로 지불하게 될 것 같다. 사랑을 보태 보내고 싶다면 혹은 돈의 귀중함을 알아라! 하고 이야기하고 싶다면 이모티콘 한두 개를 함께 보낼 것이다. 참으로 편하지만 한편으로 참 가볍다.






개인의 신분뿐만 아니라 유전자 정보까지 거의 모든 정보를 담은 쌀알 크기의 인체 주입 칩인 '베리 칩(Verichip)'이 확산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무선주파수 발생기의 일종으로 외부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는 순간 모든 정보가 확인된다고 한다. 편리한 만큼 위험성도 커 반대 의견이 많다. 팔에 심어져 있는 '카운트 바디 시계'로 모든 것을 계산하는 영화 <인 타임>을 인상 깊게 봤었다. 좀 다르긴 해도 그런 세상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인타임>의 한장면


 전쟁을 겪은 세대,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혼란기를 겪은 세대, 비교적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만 정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세대가 함께 사는 지금도 세대차로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정보가 나를 앞질러 달리고, 그에 따라 문화와 생각도 바뀌고 있다.  요즘 동요에선 돼지 저금통 가사는 안 쓰는 것 같다. 신곡 동요에서 들어보지 못했다. 신곡들은 빠르고, 현란하다. 동물들이 그렇게 춤을 잘 추고 노래도 잘한다. 반복되는 단어가 많아 가사는 어렵지 않은데 리듬이 어렵다. 어른들께서 가요의 박자를 왜 놓치시나 했었는데 요즘은 이해가 간다.


 "엄마가 돼지저금통에 저금을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 선물을 샀었어"라고 이야기해도 될까? 아마도 "우리 때는 학교 가려고 새벽에 나와서 10리를 걸었어"라고 내가 어른들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아이도 가지게 될 것 같다.


오늘도 열심히 핸드폰을 내밀어 내  QR코드를 상대방이 찍을 수 있도록 한다. 보이지 않는 돈은 한 번의 효과음을 내며 사라진다. 종이 통장이 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아이와 함께 통장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리고 엄마 아빠 손잡고 통장 만들러 갔던 그날을 기분 좋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돼지 저금통의 추억은 무엇으로 대신해야 할까?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둬도 소용없을 것 같다. 몇 년 후엔 정말로 무슨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아빠에게도 장난감은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