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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Dec 03. 2019

고독이 필요한 시간. 연말 증후군

연초의 계획 실패나 외로움 등으로 연말에 우울해지는 병증

12월 어느 날, 함께 일하는 여럿이 잡다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시끌벅적하게 점심을 먹고 자리로 돌아왔다. 각자의 책상에서 할 일을 하는데 선배가 문득 입을 연다.


"난 결혼하고 진짜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됐어"


다들 나와 같았는지 잠시 주변이 고요해졌다. 다시금 설레설레 이야기가 이어지긴 했지만 화두만큼 강렬하진 못했다. 영화나 책을 통해 보아 온 것들이 있었기에 설핏 어떤 감정일 것 같다는 느낌은 었지만 뚜렷하진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시 선배는 연말 증후군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찬바람이 코끝을 간질인 덕에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생각이 차올라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내심 궁금했던 '결혼 후 알게 되는 진짜 외로움'은 정말로 결혼 후  체험이 가능했다. 남편과 나는 성인이지만 상대방을 위해 가지 말아야 할 곳, 만나지 않아야 하는 사람이 있었고 일상의 시간은 일정 부분 상대방과 합의해 사용해야 했다. 출산 후에는 조촐하게 남겨져 있던 시간마저 사라졌다. 먹고, 자고, 화장실 가고, 쉬는 시간은 모두 아기가 울지 않을 때에만 가능했다. 새벽, 보채는 아기를 안고 멀뚱히 앉아있을 때면 고독이라는 것이 손으로 만져지는 듯했다.


내편을 더 만들고 싶어 스스로 한 사회적 약속에는 행복만큼 책임이 따랐고, 난생처음 하는 결혼생활이라는 경험이 버거워지는 날에는 고독이 진하게 느껴졌다.



"고독이 없으면, 식물이나 동물은 살아남을 수 없고, 흙도 그 비옥함을 유지할 수 없으며, 어린아이는 인생을 배울 수 없고, 예술가는 창작을 할 수 없고, 작품이 성장해 새로이 탈바꿈할 수도 없다."

     <<아크라 문서>> _ 파울로 코엘료 / 공보경 옮김 / 문학동네



요즘, 고독을 맛보고 있다. 사랑하는 아기와 교감은 하지만 대화는 할 수 없기에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을 맞닥뜨린다. 준비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익숙하지 않은 이런 상황이 처음엔 당황스럽고 슬펐다. 하지만 이제는 즐기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가 내 목을 잡고 무릎에서 자고 싶어 할 땐 아이를 안은채 핸드폰이나 전자책을 보고, 아이가 무작정 나가자고 할 땐 산책길에 나도 커피 한잔을 사 마신다.





 

오래오래 글을 쓰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고독이 창작을 돕고 작품을 성장하게 한다니 이만한 때가 없다. 아이가 자유로이 의사소통을 하고, 의젓하게 공동체 생활을 할 무렵,  나도 예술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고독에 관해 논해보고도 싶다.



<<카니발 저녁>>  _ 앙리 루소


어느새 마지막 달이다. 기분상 예전만큼 연말 분위기가 나는 것 같진 않다. 모임도 줄고, 캐럴도 차의 오디오를 통해서만 간간이 듣는다. 사람을 만나도, 맛있는 걸 먹어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외롭다.  연말은 늘 그렇다.  고독하기 딱 좋을 때다.


혹시나 하고 '연말 증후군'을 녹색 창에서 찾아보니 '연초의 계획 실패나 외로움 등으로 연말에 우울해지는 병증'이라는 기막힌 정의가 나온다.


실패하지 않았던 해가 있었던가. 연초는 또 온다. 곧, 아주 빨리 온다. 더욱이 신년도 있고 구정도 있어 계획 수정도 용이하다. 그러니 우선은 연말 증후군을 즐기기로 한다.


 여름엔 하고 싶어도 못해먹을 고독, 지금이 딱 좋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과 영화화된 작품을 보며 진실을 파헤치는 주인공이 강하지만 외로워 보였다. '리스베트 살란다'역을 한 누미 라파스는 눈빛으로 고독을 잘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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