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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Dec 11. 2019

그렇게 떠났던 나의 지금은 초라하다

한 달 살아보기. 여행. 감성 에세이


그래서 우리는, 나는‘떠났다’라고 이야기하는 신간 소개 기사를 보았다. 떠날 수 있었음을, 포털사이트 메인에 자리할 수 있음을 부러워하며 글과 사진을 훑었다. 그리곤 몇 백 개가 넘는 댓글로 눈을 돌렸다.

해보고 싶다, 용기가 대단하다라는 글 뒤로 그렇게 떠났던 나의 지금은 초라하다, 삶은 현실이다라고 자조적으로 얘기하는 이들의 글이 보인다. 질투나 악플로 치부하기엔 작성자 수가 많고, 진정성도 느껴져 찬찬히 글을 읽어 내렸다.  


여행 바람이 분지는 꽤 됐다. 내가 대학생 시절이었던 20여 년 전에는 배낭여행이 인기였다. 특히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고, 신기한 길거리 음식에 눈이 돌아간다는 태국 방콕의 카오산 거리가 핫했다. 학생으로서 도전해 볼 수 있는 저렴한 여행 비행도 한몫했다. 인도도 인기였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곳으로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로 됐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인도로 떠나는 동기나 선배들도 종종 있었다. 인도를 다녀온 이들은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귀국 후 인도 카페나 음식점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유럽 배낭여행도 빠지진 않았다. 그곳은 꿈이었다. 유로패스를 위해 몇 달간 땀나게 일해 서유럽에 다녀온 이들은 소매치기 경험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곤 했다.


'떠난자'들을 대표 할 만한 영화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 의 한 장면






요즘은 여행보단 살아보기다. 외국에서 짧게는 보름, 길게는 일 년을 산다. 자잘한 여행 경험, 어학연수와 업무 등으로 다져진 외국어, 이전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현지의 정확한 정보,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분위기가 장기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게 떠났다는 이야기는 많이 듣는다. 잘 지내고 있음을 SNS로 수시로 확인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다녀와서 어찌 됐는지는 자세히 들어보질 못했다. 정말로 가지고 간 돈을 여행지에서 다 썼는지, 여행지에서 얻은 것이 있는지, 배워온 것이 있다면 그것이 돈벌이에 보탬이 됐는지. 떠날 때의 고민과 설렘, 새로운 곳의 생활만 중요했지 다시 돌아온 원래의 자리가 어떻게 됐는지는 묻질 못했다.

 가지고 있던 인적, 물적 재산을 탈탈 털어 떠났던 이들이 돌아왔다. 어떤 이들은 해 볼만 했다고, 누군가는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이는 ‘살아보기’ 위해 심사숙고 중이다.

 




그렇게 떠났던 나의 지금은 초라하다라는 누군가의 상실감에 뜨끔했던 이유는 나 역시 떠났던 이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살아보기보단 이주에 가까운 상황이 되었지만 한때는 여행자였다. 그리고 새로운 곳의 생활을 에세이로 펴냈다. 내 글을 읽고 누군가도 떠남을 선택했을까? 그만한 영향력을 미칠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책임감은 느껴진다.

 6개월을 살아보기 위해 1년 반을 준비했고, 다시 6개 월을 더 연장하기 위해 모아둔 돈을 썼다. 1년 여의 살아보기 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 해 거주지는 다른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하던 일을 타국에서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직업을 잃었지만, 1년 여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모아 책을 냈다. 맛있는 떡볶이와 치킨 그리고 엄마의 밑반찬이 그립고 가족이 보고 싶지만 한국에서의 일상보다는 좀 더 자주 새로운 것을 느끼고, 단출한 인간관계로 단순한 외국인의 생활을 즐긴다.

 떠나기로 결심한 이후 잘 살아왔을까? 예상 못했던 행운과 소소한 행복도 물론 있었지만 그와 더불어 끊이지 않는 고민과 개인적 어려움도 존재했다. 그런데 그것이 떠났었기 때문인지, 살아가는 데 있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문제와 고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누군가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고민 상담을 해 온다면… 참 난감하겠지만, 몇 가지는 이야기할 것 같다. 왜 떠나보고 싶은지 오랫동안 구체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기, 여행비용과 여행지를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탐색해보기, 다녀온 후 주머니 사정과 단 몇십만 원이라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에 대해서 계획해야 한다고 말이다. 쓰고 나니 결국은 현실이다.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조훈현 기사는 그의 저서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에서 “먼저 먹고사는 길부터 뚫어야 한다. 5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먹고살 수 있는 일부터 만든 후 그다음에 꿈을 꿔야 한다. 생계가 막히면 꿈이고 뭐고 없다. 치사하고 초라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그게 현실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무관으로 전락한 이후에도 더 열심히 어느 대회이든 마다하지 않고 출전했다"고 한다. 


여행을 기분 좋게 끝내기 위해선 안전망이 있어야 한다. 꿈을 꿀 수만은 없다. 그런데 누군가 “너는 계획이 있었구나”라고 한다면… 입이 안 떨어질 것 같다. 계획이 있었었나? 변수는 너무도 많다. 결혼은 때와 인연과 운이 맞아서였고, 바라던 출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행운이었다.

 다시 생각해 본다.


‘계획이 있었었나?’


 현실을 말하는 동안에도 사실 마음 저 안쪽에선 다른 말을 한다. 마음이 있으시다면 떠나보시라고…. 전재산 탕진이 아니라면 그거 뭐, 잠깐 해보면 되지 않겠냐고.

안전망? 인생에 그런 게 있을 수 있을까?



여행 중, 좋은 기분을 선물해준 아름다운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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