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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Dec 20. 2019

저 오늘 출산했습니다.

육아. 위화. 글쓰기

글을 한번 써보겠냐는 연락을 받았었다. 상황상 안될 것 같아서 조만간 다시 연락을 드리겠노라 했다. 전화를 받은 날은  출산을 한 날이었다.


" 오늘 아기 낳았어요"라고 밑도 끝도 없는 자랑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상대방이 당황스러울 것 같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실은  말을 꺼내면 당분간 일이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커서였다.  마취에 깨자마자 침대에 누워 핸드폰 액정에 뜨는 상대방의 이름을 보자마자 아기를 낳는 것과 글을 쓰는 것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생각했다. 논리적으로 생각이  정리되진 않지만 여자라서 일을 하지 못할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다.   


'출산을 했으니 최소 몇개월은 일에 집중하기 힘들겠지,일을 맡겼다가 아기가 아프다며 펑크를 내는 일도 생기겠네'라는 생각을 상대방이 하는 것이 싫었다.


전화를 주신 분은 젊은 여성이었다. 상대방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출산 사실을 알리는 것이 두려웠다.


개인적으로는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이에게 거절의 이유로 출산을  이야기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요즘 팔이 빠지게 아기를 안고 있을때면 가끔 생각이 든다. 그때 말을 했어야 했나?


"저 오늘 출산했습니다. 당분간은 개인적인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말하지 못한 후회와 별개로 현재 내가 오늘, 당장 내일까지 해야하는 일이 없어 다행이다라는 안도감든다.


아기를 보는 동안 일을 하는 게 힘들다. 밤에 못 잔 잠을 더 잘 수 있게, 세끼 챙겨먹고 보약까지 먹을 수 있게 챙겨주고 도와주는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업무를 해내는 것이 버겁다. 성과를 낼 자신이 없다. 힘이 든다.


출산을 하고 산후기간을 가지겠다고 선언한 외국의 총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낳고 육아에 전념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능력하고 죄스럽게 느껴진다.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인 위화의 작품 <<내게는 이름이 없다>>에는 이런 글이 있다.  "여자가 아이를 낳는 건 한쪽 다리로 관을 밟는 거라고만 했지, 나머지 한쪽 다리로 무얼 밟고 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글의 주인공이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떠올리는 말이다.





출산을 겪어보니 그저 영화의 한 장면이 될만한 일은 결코 아니다. 많은 이들의 행복과 두려움, 고통이 공존하는 일이다. 힘든 일이고 산후기간은 당연히 있어야 하며 아기를 돌보는 것이 무의미하고 무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었으면 한다.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한쪽 다리로 관을 밟았다면, 나머지 한쪽은 두배로 강한 생명력과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기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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