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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May 10. 2020

현관 밖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두려움과 타협하지 않기 위한 1일 1 외출

안녕하세요. 강혜선입니다. 요즘 아이와 손잡고 걸으며 '내가 아이와 함께 다시 자라고 있구나'하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 글은 육아를 하며 고립되어있던 저의 생각을 풀어내기 위해, 아이와 일상에서 실천했던 시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금 계단을 오르기 위해 준비 중인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방과 거실, 주방을 넘나들며 분주히 짐을 챙긴다. 보리차를 넣은 물병, 우유, 간식, 물티슈, 기저귀 그리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한 여벌의 옷과 장난감 등이다.  한 번에 착착 준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옷은 안방에, 장난감은 건넌방에 물은 주방에 있다. 간신히 가방을 꾸린 후에는 바빠진 엄마가 못마땅해 우는 아이를 안아 무릎에 앉힌다. 그리곤 티셔츠에 팔 끼우기를 싫어하는 아이를 이해해보려 애쓰며 외출 준비를 마친다. 어떤 날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른 날은 왼손으론 아이손을 잡고 오른손으론 유모차를 끌며 현관을 나선다. 드디어 외출이다. 현관을 열었을 뿐인데 바깥 냄새가 난다. 아이도 흥에 겨워 눈을 크게 뜨고 발을 구르며 소리를 낸다.


돌 무렵부터 아이는 집안을 답답해했다. 언제 손에 닿는 집안의 물건들을 모조리 살펴보고 만져봤는지 뭘 보여줘도 울며 보챈다. 장난감을 사줘도 길어야 10분이다. 흥밋거리가 없다 싶으면 만화를 보여달라며 떼를 쓴다. 아이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일, 그래도 미디어 중독을 만들지 않고 교육이라고 할만한 일은 '외출'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된 나는 현관을 나서는 게 힘들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면 타국의 아파트에는 아이와 나만 덩그러니 남았는데 언어로 인한 긴장감과 돌발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큰 공이 되어 우리 집 현관을 꽉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떨 때는 안전을 핑계로 며칠씩 현관문 한 번을 열지 않기도 했다. 그렇지만 매일 자라는 아이의 세상을 집안으로만 한정 지을 수만은 없었다. 화장대에 비친 생기 없는 나의 얼굴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견고한 콘크리트로 다져진 네모난 공간을 박차고 나와 시야를 둥글게 보듬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렇게 두려움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1일 1 외출을 시작했다.


아이와 걷노라면 녀석은 새와 강아지와 개미를 쫒았고, 난 하늘과 나무와 꽃을 보았다. 꽃이 예쁘다고 말해보아도 아이는 시큰둥했다. 스스로가 꽃인 아이는 재빠르게 한 발짝 앞선 개미를 쫓느라 바쁠 뿐이었다. 함께이지만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우리의 세상이 같지 않음을 상기했다.


아이는 세상을 관찰하고, 받아들이며 배웠다.  '기대'라는 말은 아직 모르겠지만 보이는 것들을 부지런히 눈에 담으며 '나도 해보고 싶다,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감흥이 없던 꽃과 나무에 시선을 두며 속상했던 일, 아쉬웠던 일,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계산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요즘 자주 떠올리는 책 속의 문장을 곱씹었다. 


 "아버지에게도 당신의 아들이 세상에다 써주길 바라는 신화가 있었을 테니까."


정유정 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의 한 부분이다. 어떤 사고의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갇힌 주인공이 아버지를 떠올리며 했던 생각이다.


얼마 전 아빠께서 나에게 요즘은 뭘 하고 지내는지 물으셨다. 너무도 당연한 것을 물으시는 것 같아서, 그리고 순간 그동안 나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았음이 들통나는 것 같아서 "애기 보죠 뭐"라며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후에 아빠의 표정과 질문의 의미를 돌이켜보며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꿈을 향해가는 딸을 기대하고 계심을 알았다. 아이를 기르다 보니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 역시 혼자 집중해서 노는 아이를 보며 꿈을 꾼다. 아이는 예술가도, 사업가도, 파일럿도, 요리사도 된다.


임신 기간을 시작으로 3년여간 새로운 것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외국생활이 익숙해질 무렵이라 권태로웠다. 탈이 없도록 가던 곳만 가고, 먹던 것만 먹고, 하던 일만 했다. 그런데 그 익숙함이 위험 경보를 보내고 있었다. 아이는 조만간 외국어를 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테고, 어쩌면 학창 시절을 모두 이곳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대로라면 엄마로서 아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의사소통에서도 문제를 겪을 수 있었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자라야 함을 불현듯 깨달았다.


조금 늦게 밥을 먹이고 주변정리를 하다 보면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해진다.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어둡고 위험하니 하루쯤 나가지 않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파고든다. 그런데 슬며시 옆을 보면 바깥나들이를 고대하며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빛나는 눈을 가진 아이는 나를 다잡아 일으킨다.


이제 '엄마'라는 위치에서 다시 외출을 시작하려고 한다. 조력자인 아이와 남편이 함께하는 길이다. 책임감을 갖고 사랑해 주어야 할 아이의 현관 밖 세상을 위해, 그리고 부모님께서 딸이 세상에 써주길 바라셨던 신화를 조금이라도 남겨보기 위해 사계절 산책길을 즐기며, 작은 산들을 넘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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