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외출 준비를 재촉한다. 우리 집을 장만한 일을 축하하는 집들이는 아니지만 새로운 집으로 온 만큼 주변 교민분들과 집들이 겸 가족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특별한 날 남편은 ‘족발’을 만든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큰 재래시장에 도착하면 눈으로, 그렇지만 꼼꼼하게 좋은 돼지족을 물색한다. 기왕 사는 거 앞다리만 가져가고 싶지만 중국에선 앞다리와 뒷다리를 구분해서 팔지 않는다. 괜찮은 족을 발견하면 가격을 묻고 털 제거를 부탁한다. 무심하지만 프로답게 주인은 토치를 들고 이리저리 돼지족을 훑는다. 총알처럼 쏟아지는 날카롭고 힘 있는 파란 불꽃은 순식간에 털을 녹인다.
집으로 돌아와선 족발 표면에 묻은 이물질을 닦고 면도기로 다시 한번 깨끗하게 손질한다. 시간이 넉넉할 때는 차가운 물에 10시간 정도 담가 피를 빼고, 급할 때는 따뜻한 물에 30분 정도 담근다. 피를 뺀 고기는 끓여놓은 물에 월계수, 마늘, 통후추를 넣고 20분간 삶고, 건져 올린 후에는 마사지하듯 살살 눌러 남은 피를 빼준다. 살짝 삶은 고기를 다시 삶을 때는 남편만의 비법 간장물을 사용하는데 1시간은 센 불로, 30분은 중간 불로, 30분은 약한 불로 끓인다. 2시간 동안 정성 들인 족발은 불을 끈 상태에서20분간 뜸을 들이고, 통에서 꺼낸 후 실온에서 다시 30분간 식힌 후 상에 낸다. 몇 번인가 배워볼 요량으로 지켜보았지만 끈기 부족으로 포기하곤 했다. 다만 먹을 땐 끝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살뜰하게 큰 접시를 비웠다.
남편은 20대 시절, 유독 출근길이 고되던 어느 날 회사에서 해외파견 공고를 듣고 ‘외국에서 회사생활을 하면 지금보다는 출근이 여유롭지 않을까’하고 생각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비해 가까우니 크게 어려울 일도 없을 것 같아 중국행을 택했다고한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집밥이 그리워 수소문해 찾은한식집을 단골 삼으며 견뎠는데, 문득문득 야식으로 먹던 음식 들이 진하게 생각나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출출한 밤에 먹던 족발이 너무 그리워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인터넷에서 족발 만드는 법을 검색해 제법 자세한 조리법을 적은 페이지를 찾아냈는데 그분 역시 미국에 살고 계신 교민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맛으로 기억된고향의 그리움이 통했던 것 같다.
실행에 옮기기 위해 시장에서 돼지족을 구매한 후 그분의 조리법과 본인의 취향을 고려해 시도를 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질기다 싶으면 물에 담가 두는 시간을 늘려 피를 더 빼 보기도 하고, 불 세기와 삶는 시간을 조정해 보기도 하고, 잡내가 나면 커피와 마늘도 더 넣어가며 완성도를 높였다고 한다. 먹을만한 족발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시도한 끝에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그래서 지친 날에는 몸보신 용으로, 쓴 소주가 필요한 날에는 최고의 안주로 열심히 족발을 먹었다고 한다. 실력이 쌓여 노련한 맛을 내기 시작한 후부터는 외국인 친구들과 이웃 교민분들에게 대접을 했는데 맛이 좋다며 칭찬을 받아 흥이날 때에는 며칠에 한번 꼴로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중국인 친구들은 족발과 함께 미역국, 밑반찬, 불고기와 같은 우리 음식을 좋아해서 도움을 준지인들에게 한 끼 정성스럽게 대접하곤했는데 이 시간들이 오히려 남편에겐 외국 생활에 재미를 느끼고, 외로움도달랠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특별한 날 남편이 차려낸 한상
남편의 족발에는 원래 팔각향이 났었다. 그런데 힘들여 만든족발을 겨우 몇 점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보곤 그가 좋아하던 팔각을 과감히 재료에서 탈락시켰다. 음식은 자고로 같이 맛있게 먹어야 행복하니 그랬던 것 같다.
남편이 기분 좋은 날엔 족발에 보쌈까지 곁들인다. 내가 좋아하는 매콤 막국수는 없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잡냄새 없이 정갈하게 쫀득한 족발을 쌈장, 상추, 고추, 마늘과 함께 입에 넣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더불어 입을 열심히 움직이며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실컷 웃노라면 서운했던 일, 걱정되는 일이 스르르 자리를 물린다. 대신 건강하게 잘 먹었으니 열심히 살아보자라는 생각이 채워진다. 먼 타국에 둘밖에 없으니 싸우지 말고 이해하며 잘 살아야 한다는 단단한 마음도 생긴다.
이제는 우리 동네에도 한국식 ‘장충동 족발’ 집이 있다. 정말 피곤한 날에는 시켜먹기도 하지만 월례 행사처럼 재래시장에 돼지족을 사러 간다. 전문가가 만든 만큼 익숙하고 정돈된 맛은 있지만, 우리 부부가 그동안 만들어왔던 맛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만 전부터는 유모차를 탄 아이도 함께 시장에 족을 사러 간다.아직 아빠의 족발을 먹진 못하지만 조만간 그 독특하게 쫄깃한 식감을 경험하게 될 테고, 은은하게 퍼지는 고소함도 알게 될 거다.
후에 우리의 젊은 날을 생각하면 ‘족발’이 떠오를 것 같다. 백 위안, 우리 돈 2만 원이 채 안되는 돈으로 푸짐하게 한상차려낼 수 있었고, 힘들어 땀을 뻘뻘 흘리던 남편을 보며 애틋하게 고마워했던 그 마음이 쉬이 잊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