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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May 08. 2019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외 육아. 중국 일상

책을 출간하고 1년간 거의 노트북을 켜지 않았다. 그건 글을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얼마간 정말 징그럽게 보고 또 보며 교정을 해서인지 글이 별로 쓰고 싶지 않기도 했고, 아이를 돌보느라 쓸 만한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청소를 하다, 오래전에 읽히고 방치된 책마냥 책꽂이 한쪽에 꽂혀 있는 노트북을 보았다. 문득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었다간 영영 글 쓰는 방법을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잘 쓰는 작가도 매일을 노력하는데 내가 뭐라고 이렇게 빈둥거리고 있는 건가 싶은 자책도 들었다. 그날 밤 남편에게 내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길 했다. 당장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생활비가 나오진 않겠지만, 5년 뒤 10년 뒤를 생각한다면 지금 해야 한다며 설득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바쁜 남편에게 미안해하며 이야기하는 대신 놀이방이나 주변의 도움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에 사는 한 의지할 수 있는 건 오롯이 남편뿐이다. 다행히 말이 통하는 남편과 어렵게 시간을 조율했다. 일주일에 3번 3시간 혹은 4시간을 내 시간으로 쓰기로 했다.


다시 글을 쓸 수 있고 혼자 하는 외출이기도 해서 설레긴 했지만 아이를 두고 나가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디선가 들은 ‘남편도 나 만큼 아이를 잘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있다’라는 말을 위안 삼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외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없는 동안 아이가 힘들지 않도록 미리 든든하게 밥을 먹이고,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주어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 하는데 아기는 잠을 덜 자 피곤해했다. 보채며 밥을 바닥에 집어던져 옷과 바닥은 엉망이 되었고, 심기가 불편하다며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통에 씻기는 것도 힘들었다. 내 목소리는 커졌고, 아이는 서럽게 울었다. 대강의 일을 마치고 나가려 하자 뭔가 눈치를 챈 아이는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다시 어르고 달래 겨우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고 몰래 집안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나있었다. 정말 대충인 초고라도 만들려면 적어도 세 시간은 필요한데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걸으며 써야 할 내용을 정리하고 이동 거리는 빠른 걸음으로 걷거나 뛰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외출을 마치고 집 현관을 열고 들어오면 아이는 두 팔 벌려 울며 달려와 안겼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긴 했지만 죄책감 역시 극대화되었다. 아이를 안고 밥을 먹이고 씻기고…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마무리했다.
 
몇 주 간 외출의 결과는 피곤함이었다. 일하는 만큼  쉴 시간도 필요한데 아등바등하다 보니 머리도 멍해지고 온몸이 쑤셔오기 시작했다. 아기는 그새 배탈이 나 밤새 울고 넘어지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하려고 아이를 혼자 세워두고 옷을 갈아입는 사이 아이가 넘어진 것이다. 그 순간‘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무언가를 하려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질없는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의 밥벌이를 책임지며, 노후에도 자식 바라기가 되지 않고 자녀를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는, 내 삶에서 이루지 못해 아쉽거나 부족했던 부분을 배우자 탓하지 않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줄곧 그것이 나의 삶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그러려면 지금 움직여야 하는데 그 일이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다.  

 

<실타래 감기> _ 프레더릭 레이턴





아기의 카시트 거부가 너무 심해 도움을 받아볼까 싶어 인터넷을 검색했었다. 두 자녀를 카시트에 적응시킨 노하우가 담긴 경험담을 찾아냈다. 방법을 따라 해 볼 요량으로 첫 줄부터 정독을 했다. 알아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카시트를 타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주기, 장난감 쥐어주기, 과자주기, 영상 보여주기 등등 여러 방법이 나열되어 있었다. 글을 쭉 읽고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싶어 댓글을 봤다. 그런데 깜짝 놀랄 만큼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이유는 위의 방법들이 적용되는 아이가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다는 것이었다. ‘다 해보아도 결국 되지 않더라’라며 일반화 하긴 힘든 내용이다라는 요지였다. 그중엔 명언이다 싶은 글도 있었다.




아이를 키울 때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3년은 나 죽었다 생각해야 됩니다.  안되면 포기하고, 육아 외에 다른 건 욕심 내지 않아야 몸도 마음도 편합니다. 그저 때가 되면 다 합니다.



인생에서 3년은 긴 시간일까? 짧은 시간일까?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아기와 합의하지 않고 엄마 되길 원해서 사랑으로 낳았으니 잘 키울 책임이 있다. 또한 아이가 부모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시간은 3년이므로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직접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다.


 정말로 욕심내 움직이기 시작하니 나는 힘들고 아이는 서러워졌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지금의 결정은 옳은 것일까?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오십 대 중반 부장님께서는‘아이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여자가 버는 돈은 버는 게 아니다’라고 하셨다. 앞으로의 시간을 위해 투자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혜선 씨도 힘들어도 참고 열심히 일해라’하셨었다. 선배 엄마로서, 그리고 그 과정을 거쳐온 여성으로서의 조언이었다. 그때 옆 테이블 대리님은 아이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고 책상에 엎드려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같은 말이 맴돈다.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말라'






아이를 낳은 이상 나보다 아이의 인생을 생각한다면 꿈보다는 돈이 현실적인데, 많은 돈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 이후에도 방법은 있지 않을까? 인생을 가볍게 생각한다면 나도 덜 힘들고, 아이도 덜 서러울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아이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신발을 제대로 신지도 못하고 겉옷과 가방은 어설프게 들고 말이다. 노년에 내 일을 가진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밥벌이는 제대로 하며 살 수 있을까? 이 모든 시간을 지나온 이들이 우러러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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