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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May 27. 2019

 마음의 문은 얼마만큼
열어야 할까

중국, 인간관계, 마흔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걷다 보니 커피 생각이 간절해진다. 카페까지는 거리도 멀고 비싼 커피값이 아까운 생각도 들어 근처 제과점을 찾았다. 잠시 쉴 수 있는 테이블 몇 개가 있는 작은 상점이다. 들어갈 땐 분명 자리가 있었는데 주문하는 순간 만석이 됐다.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나가려는데 유모차를 옆에 두고 차를 마시던 아기 엄마가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 한다. 중국에선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자리를 나눠 쓰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긴 하지만 같은 아기 엄마로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커피를 마시려고 앉으니 이번엔 아이가 보챈다.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순간이라 과자를 꺼내 아이 손에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옆 유모차에 앉아있던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손을 내민다. 그 모습이 귀여워 아이 엄마에게 과자 하나 주어도 괜찮냐고 물으니 좋다고 한다. 봉지를 유모차 쪽으로 두어 아이가 과자를 집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이들이 과자를 먹던 몇 초간 정적이 흐른 후 맞은편 아기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한국 분이세요?” 아마도 과자 봉지에 적힌 한글을 본듯했다. 맞다 하니 본인은 한국 드라마와 한국 연예인들을 좋아한다며 활짝 웃는다. 그리곤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이민호 씨가 군 제대를 했다며 노래하듯 이야길 한다. 나 역시 그 멋진 배우를 좋아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한참 우리나라 배우들의 이야기를 하다 그녀는 나에게 아기가 중국어를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아이는 못하고 나 역시 조금밖에는 못한다고 하자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젓는다. 자신은 한족이고 남편은 소수민족인 장족인데 본인은 장족어를 잘 모르고, 장족인 남편은 한어(漢語. 보통어)를 잘하지 못해 서로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며 웃는다.  남편과 대화를 하며 다른 언어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함양되어서인지 그녀는 나의 부족한 중국어를 찰떡같이 척척 알아들었다.


대화를 나누며 고민을 했다. 요즘 아이의 또래 친구가 있었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녀에게 연락처를 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데 때맞춰 아기가 운다. 엉겁결에 그리고 어쩌면 바라던 바 대로 황급히 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아이와 둘이 남겨진 후에도 계속 생각을 했다. ‘친구가 된다면 좋지 않을까? 그래도 낯선 사람인데 처음 보자마자 연락처를 주는 게 옳은 행동일까?’ 고민을 하며 집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알은체를 한다. 돌아보니 바로 그녀다. 1시간 전에 만나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그녀의 얼굴에선 선의가 보였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고민은 계속됐다. '연락처를 교환하자고 해야 할까?' 하지만 몇 가지 걱정되는 것들이 있었기에 쉬이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둘 다 아이가 어리니 아이를 데리고 함께 만나야 하는데 육아 방식이 다르고 말까지 통화지 않는 그녀와 도대체 어디에서 무얼 해야 한단 말인가! 또 일면식도 없는 서로인데 대화를 할 때 사생활은 어디까지 묻고 답해야 한단 말인가? 만일(정말로 아직은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한국 물건, 화장품 같은 것의 대행 구매를 부탁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부탁을 받고 거절한 후 만날 때마다 어색하고 미안하지 않을까?

 

그녀의 손을 잡고 싶은 마음과 꼭 같은 양의 걱정이  머리와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결국 나는 웃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좋은 인연을 놓친 것이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아닐까?'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이야길 했다. 남편 역시 나와 같은 입장이었다. ‘글쎄… 잘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처음 중국에 왔을 땐 거침이 없었다. 모든 이가 좋을 뿐이었다. 여행객의 마음은 열려 있었고 주변의 새로운 등장인물과 환경이 매 순간을 환기시켰다. 가능한 많은 것을 내 안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부정적인 경험도 함께 쌓은 지금은 다른 문화와 부족한 외국어가 만들어내는 인간관계가 상처가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안다. 더욱이 아기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하는 엄마로서 두려움과 걱정은 손으로 잡을 수 없을 만큼 크다. 

 

며칠간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이런 게 바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실감했다. 선의를 두려움으로 돌려주었다는 자책도 들었다. 열정과 패기와 호기심은 중년에게는 사치란 말인가? 조심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은 결코 같지 않다. 마흔은 너무나도 젊다. 마음을 접고 덜어내기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긴 하지만 작게나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공간도 충분히 마련해 두어야 한다. 

 

마음을 열어야 한다. 움츠려 의심하고 걱정하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이삼십 대에 해보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과 쉬이 피곤해질 노년을 준비하며 적극적으로 용기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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