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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Jun 06. 2022

강제적 부지런함

초, 중, 고등학교 등교시간은 항상 5분 컷이었다.

97년에 이사 온 동네에서 학창 시절을 전부 보냈는데, 5분 컷 등굣길에 감사함보다는 게으름으로 대신했다. 등교 시간이 짧다 보니 수업 전에 후다닥 뛰어가기 일쑤였고, 뛰어가서 지각하지 않는 시간을 익히고 그 후로는 아슬하게 늦는 단계로 넘어갔다.


교문 앞에서 친구들을 만나 같이 등교한다는 약속은 긴박한 5분 컷 앞에 고개 숙일 날이 많았다. 나의 전적을 보고 하늘이 노했는지, 대학부터 사회생활까지 이동 시간은 1시간 30분까지 이어졌다. 등하교 5분 컷은 부모님 이사 덕분에 얻은 것이었지만, 대학교와 회사로 가는 시간은 내가 만든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5 컷마저 지각 한적이 있던 내가 1시간 이상을 이동해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적응시간이 필요했다. 스무살부터 13 동안 1시간 루틴 이동을 했으니, 지금시점에서 이동 자체에 대한 심리적/체력적 적응은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루틴한 "약속시간" 지키는 데까지 노력이 필요했다. 초,중,고시절동안 부지런한 등하교 습관이 없었으니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없었다. 취업  2년차까지도 출근시간을 간신히 지키며 다녔다. 이런 약속 습관은 친구들, 지인과의 만남에도 이어지는데 지금 되짚어보니(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미리 가서 기다리기보단 시간을 정확히 맞추거나 늦는 경우에 가까웠다.

회사생활 이후에는 자율근무제와 코로나19 바람을 타고 재택근무까지 이어지다 보니, 출근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이제 출퇴근 시간은 회사가 정해주기 보단 본인 스스로 약속한 시간을 지켜야 한다. 이 시점에 다시 새로운 동네로 이사한 뒤로는, 강제적 부지런함을 익히고 있다. 정확하게 정해진 시간을 품는 지하철을 타야 하고, 아직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동네라 전철 배차간격이 15분 정도 되다 보니 변수에 대비해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하게 되는, 강제적 부지런함을 실천하고 있다.


이걸 왜 안 하고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리 준비하고 도착하는 건 마음도 편하고, 약속시간 전에 주변도 살필 수 있는 여유로움도 얻게 된다. 물론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강제성이지만, 미리 준비하고 여유를 가져오는 습관은 나에게도 좋고 목적지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는 온화함을 선물 받는다. 또 약속시간에 맞춰 모인 사람들에게 예의까지 차릴 수 있으니, 이 좋은 걸 왜 여태 몰랐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미리 가 있는 사람 입장이 되다 보니, 약속 시간에 늦는경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상대방에게 뭐라하는 편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늦는 경우가 반복되다 보면 약속에 대한 의미와 예의를 헤치는 건 맞다는 생각이 든다.(지난날 나의 게으름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정해진 약속시간을 위해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쓰고 만나는 일인데, 약속멤버끼리 시간을 지키려는 노력과 에너지가 무시된다고 생각되기 쉽다. 또는 본인이 약속시간을 중요시 여긴다며 상대방의 지각을 나무라다가, 본인이 늦는 부분에 대해선 당당한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극혐 한다. 나한테 하기 싫은 부분은 상대방한테 해서는 안된다 라는 생각이 강한지라(스스로 지키고 싶은 부분으로) 앞선 경우는 이러나저러나 극혐이다.


무튼, 강제적 부지런함은 긍정적 효과가 많다. 또 이렇게 글로까지 남기는 이유는 앞으로 강제적 부지런함 앞에 무너질 수도 있으니 약속과 다짐의 의미가 있다.


강제성이 주는 긍정적 효과에는 주간 글쓰기도 포함이다. 주간 글쓰기도 고삐가 풀리면 멈추고 미루기 쉬울텐데, 건강한 강제성이 있기에 한 주 한 주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생각하는 과정이 의무감 보단 재미짐에 가까워졌다. 이번 주 수요일엔 주간 글쓰기 친구들을 만나는데 우리의 성실함을 기념하고, 친구들을 생각하며 준비한 수제 꿀과 스위스에서 가져온 감자칼도 줄 거다. (선물 예고제를 뒤로하며) 강제적 부지런함 뽀에버와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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