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웅이 집 Jun 16. 2022

근사한 고목을 넘어서

곁에 머물 수 있는 자연의 운치를 찾았다

"뽀! 갖고 싶은 거 골라주고 시간은 한 달 줄게요!"


지금으로부터 대략 4개월 전, 친구들이 독립 선물을 골라보라 했다. 시간은 넉넉히 한 달을 준다고!

고심 끝에 고른 선물은 정해준 기간보다 +3개월이 되어 품 속으로 들어왔다.


2년 전, 캠핑으로 태안에 놀러 갔다가 어느 비닐하우스 안에 일렬횡대로 서 있던 소나무 분재를 만났다. 분재 실물은 처음 보았는데, 작은 분에 근사한 고목이 담겨 줄 세워져 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도롱은 이 근사한 것이 분재라 설명해줬고, 언젠가 꼭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을 안고 돌아왔다.

분재는 작은 분에  낮은 나무를 심어 노거목(老巨木) 특징과 정취를 작게 만들어 가꾼 것이라 한다. 수목에 우거진 , 고산 절벽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기교와 창의력을 더해 여러 수형을 만들수 으니, 감상의 의미도 깊다.


친구들의 선물 제안 덕분에, 3월부터 분재 찾아 삼만리를 시도했다. 수도권 꽃시장부터 1 샵까지 돌아다니고, 화담숲에 전시 중인 소나무~향나무~단풍나무 등등 여러 분재들을 염탐했다. 삼만리가 지쳐갈 즈음, 해방촌에서 맘에  드는 1 샵을 찾았다. 무엇보다 샵과 분재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사장님의 생각과 정신(?) 마음에 들었다. 분재 초보자에게 어울리는 여러 수목과 관리방법을 안내해주고, 농장에서 가져와 수목을 다시 디자인하고  수목에 어울리는 화분을 직접 고른다는 점까지,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나니 이곳의 근사함납득이 갔다. (꽃시장에서 보던 터프+올드한 수형의 분재와 차이점이기도 했다.) 분재를 찾기 시작할 때부터 "Only 소나무!  소나무만 키울 거야!"라고 외쳤지만, 가는 곳마다 소나무는 관리가 어렵다 하여 향나무 분재로 우회했다.


샵에서 당장 분재를 데려오고 싶었지만, 주문이 밀려 방문  2개월을  기다렸다. 사장님과 DM으로 내가 원하는 수형을 설명하고 소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시간이 다시 흘러 흘러 드디어 저번 .. 분재가 완성됐으니 방문하라는 반가운 연락을 받았고, 퇴근길 해방촌을 향해 달려갔다. 퇴근시간에 회사에서 해방촌을 가려면 시루떡 상태로 버스를  , 오르락 내리락 길을 걸어야하지만 마음 속엔 휘파람을 불어댔다.

2년 전 태안에서 멀찌감치 바라보다, 최근엔 사진으로만 접하다, 드디어 실물로 만나니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오래 기다리고 원하는 수형을 소통(?) 한 탓인지 너모 맘에 들었다. 생명을 다루는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지라는 정신 교육과 물 주기 일상화, 집을 비우는 기간이 한 달 이상이면 주변에 맡기고 가라는 안내까지 숙지하고, 퇴근길 버스 옆자리에 분재와 같이 앉아 집까지 모셔왔다. 


가지가 여기저기 뻗어있는 활엽수의 그림자를 좋아하는데, 분재를 집에 놓고 보니 빛에 따라 집 안 벽이나 바닥에 오묘한 수형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야외에서 보던 큰 나무와 그림자가 미니어처로 변신해 집 안으로 들어온 기분은 설레는 입꼬리가 대신했다. 생각해보니 거목이 자라는 야외에는 벽이 잘 없고 뻥 뚫린 환경이 대부분이라 햇빛이 쬐면 땅에서만 나무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는데, 집에는 벽이 있으니 벽 쉐도우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설레었다. 


오래전부터 어떤 방법으로든 자연의 축소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 좋아하는 자연은  멀리 찾아가야지  있었다. 보통은 캠핑이나 여행을 통해   있는데, 자연을 찾아가기보다 일상에 머무르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  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숲세권과 뷰를 우선시한 집을 찾아본 것도, 분재를 기르게  것도 자연의 운치를 곁에 두는 방법  하나다.( 나이가 들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품고 있는 고택에 살고 싶기도 하다.) 자연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들인 고목에 선물의 의미, 관심과 책임감을 더해, 오래도록 함께  지내야겠다는 다짐을 새겨본다.

(p.s 자연을 곁에 두는 방법은 다양하다. 자연의 상징을 타투할 수도, 장신구로 할 수도, 초록색이나 자연으로 본인 네이밍을 할 수도, 가명을 만들 수도, 등등 여러가지인데 나는 실물을 곁에 두고 싶은 목적이 짙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제적 부지런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