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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Sep 25. 2022

오래 지켜온 고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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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주와 팽객, 시봉, 숙우, 다화


이 생소한 단어는  최근 다도 수업에서 배웠다. 딱히 계획이 없던 제주 여행에서 다도 클래스에 방문했고,우연한 수확을 얻었다. 생각했던 거 이상으로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

찻잎을 데우는 방법부터 다도의 기본예절, 같은 찻잎이라도 수확시기, 발효 여부에 따라 색/향/맛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 차는 향으로 그 다음으로 눈으로 마신다는 향유까지. 느리게 음미하는 점이 좋았다.

다도 체험은 집에 돌아와서도 종종 생각나 가 볼 기회를 엿보다, 마침 성수동에 마음에 드는 티 클래스가 열렸다. 오전에 수업을 듣고 그 평온한 마음을 이어 서울숲을 정처 없이 걷는 계획을 세우고 집을 나섰다.


제주와 성수, 두 곳의 수업 중 압승은 제주도였다. 성수동은 공간, 팽주, 다기 등 세련된 느낌이 들었고 체험보다는 시음에 가까워 친구들이나 가까워져야 할 사이의 사람들이 오는 게 적합해 보였다. (내 옆에 앉은 여성 두 분은 비즈니스 파트너로 계속 사업 얘기만 했다ㅋ) 이런 장점에도 제주의 기억에 압승을 준 이유는 오랫동안 지켜온 안목에 마음을 빼앗겼다. 신경 쓰고 만듦새가 좋은 다완과 다기, 차밭에서 나고 자라는 야생화로 만든 다화, 차의 A부터 Z까지 설명해주는 팽주의 수업 방식, 거기에 오랫동안 찻잎을 수확해온 대표의 안목을 보고 듣고 맡았기 때문이다. 사실 다도 수업을 고작 2번 방문한 거라 잘은 모르지만, 잘 모르는 내가 이 정도의 임팩트를 느꼈다면 내 취향이 어느 쪽에 치우치는지 구분할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쌓이는 전통이나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안목에 마음이 곧잘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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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읽고 있는 아비투스라는 책에 '문화 자본' 챕터가 생각났다. 보통 자본이라 하면 경제자본을 먼저 떠올릴텐데, 저자는 사람의 품격을 만드는데 7가지 자본이 고루 갖추어야 하고, 이 중 심리와 문화 자본을 중요 요소로 꼽았다. 나 또한 제주도 올티스 다원에서 심리/문화 자본의 품격을 홀딱 느껴버렸다. (다도의 끈기,  심리적 안정감, 주의 깊은 생활양식, 다원의 개별성 등)


조금  더 설명을 붙이자면
심리 자본은 낙관주의/상상력/끈기/심리적 안정감(잠재력을 온전히 실현 vs 중도 포기)등 을 의미하고, 문화 자본은 고전과 새로움으로 다시 구분된다. 고전적 문화자본은 선망과 존중을 받는 코드와 취향/ 몸에 벤 격식과 사교술을, 새로운 문화자본은 주의 깊고 한결같은 생활양식/용기 있는 기행/개별성 등의 의미를 담는다.

책에선 취향, 취미 활동, 자발적인 인간관계 등의 문화 자본이 그 어느 때보다 자세히 그 사람을 설명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주된 소비습관을 돌이켜 보면, 소모성 물건보다는 경험을 구매하는 편인데 경험향 취향과 취미가 (전시,다도,캠핑,백패킹 등) 심리,문화,신체,사회자본을 만드는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줬다는 점에서 저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다.
경제,지식,언어 자본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이 3가지는 의지치에 따라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쌓아가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변에 7가지 품격을 두루 갖추고 있는 사람이 있나 생각해보니, 아마 다 갖춘다면 전 세계 3% 비중의 퍼스트 클래스 일 것 같다. 이 내용을 참고로 내가 생각하는 품격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면, 저 사람은 급/그릇/마음이 크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마음의 커다란 그릇은 갑자기 생기지 않고 오랜 숙련 시간과 스킬, 관용 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거창한 경험을 내세우는 경우보다 인간관계 매너나 윗/아랫사람을 대하는 방법, 감정을 건설적으로 조절하는 법, 공적인 언어 스킬 체화, 삶의 위기가 왔을 때 해결책과 대안을 찾는 낙관주의 등 심리/문화적 자본에 개인적인 가치를 더 둔다는 점이 책을 읽으며  명확해졌다.


헤레티지가 있는 물건과 공간을 소유하고 싶은 상상이 드는 것도 오랜 시간 지켜온 고유함을 품격이라고 생각해서이다. (한결 같이 지켜온 자연 풍광, 고택에서 만든 막걸리나 전통주를 자꾸 찾고, 한옥 사랑하고, 로고 플레이 보단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 등을 보며 우와 우와하는 이유의 공통점을 찾았다.) 품격을 마주하고 생각할 포문을 열어 준 다도 라이프에 감사함을 표하며, 어서 아비투스를 완독하고 언젠가 글 소재로 정리해야겠다.  책의 내용 중 7가지 자본에 따라 상/중/하 계급을 구분하는 점에 크게 동의하진 않지만, 각 자본에 대한 의미와 격에 대해선 입체적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완독을 목표로 한다. (예를 들어, 문화 자본은 부모가 어렸을 때 하던 걸 똑같이 따라 하는 거라는데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 주도하에 문화생활을 해 본 적이 없고 성인이 돼서 찾은 취향이라 예외도 있다는 생각이다.)


*아비투스(Habitus):  타인과 나를 구변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 /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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