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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Sep 18. 2022

정이 모이는 계절


여름이 지나고 정이 모이는 계절, 가을이 왔다.

가을엔 어김없이 추석이 등장하고, 새로운 가족이 생긴 후 맞이하는 두 번째 명절이다.


내가 나고 자란 본가는 서로 기념일을 챙기거나 명절에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조금 어색하고, 기념일엔 밥 한 끼로 대신한다. 가족 단체 카톡방도 없다. 할 얘기가 있으면 주로 1:1로 전화나 카톡을 나눈다.

반면에 짝꿍네는 생일이나 명절 때 가족들이 서로 소소한 선물을 주고받고, 모이면 술 한잔에 윷놀이에 카드 게임 등의 활동을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데 이질감이 없는 나도 이 문화에 참여한다. 추석 맞이로 우리는 도가니탕 밀키트를, 짝꿍 누님들(?)은 주부의 내공이 흘러나오는 실용 선물 세트를 준비해 서로의 정을 주고받았다. 맛난 음식 선물 세트들도 물론 좋았지만, 그중 직접 만든 뜨개질 가방이 기억에 남는다.


둘째 누님(?)께서 가족들에게 각자 어울리는 칼라의 가방을 손수 떠서 선물로 주셨다. 나는 옅은 민트색의 가방을 받았는데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단번에 친해지기 어려운  성향에 마음의 물개박수만큼 대놓고 좋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행동과 내가 이런  좋아할지 모르겠다는 누님의 고민에 대한 해결은, 하루 종일 실내에서 가방을 메고 다니는 포포만쓰로 대신했다. 출퇴근길에 가방 없이 다니기 프로젝트를 혼자 하고 있지만, 요긴한 정을 받았으니 자주 들고 다니려 한다.  가끔은 막내 누님께서 지역 특산물를 보내신다. 흙이 털리지도 않은 귀한 버섯을 택배로 받곤 하는데, 부모님과 같이 먹으라고 주셨으니 핑계 삼아 반찬도 가져  (?) 본가에도 한번  들려본다. 본가에 들러 고기에 버섯을 둘러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정을 멀리멀리 퍼뜨리는 기분이 든다. 버섯을 입에 넣으며 나도 너그러움을 전할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작은 다짐을 한다.


명절이라는 좋은 명분이 있는 계절엔 조금 망설이거나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 마음을 주고받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상대를 생각하고 있고, 고마움을 부담스럽지 않게 전할 수 있는 게 정이라는 단어의 내적 의미가 아닐까. 시작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받게 된 마음이라도, 한 번 받으면 나도 한 번은 주게 되는 친근함과 너그러움의 상징. 정이 모이는 계절에 앞장 서보며, 오고 가는 여러 마음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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