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 즈음, 주문한 적 없는 택배가 집에 도착했다.
발신인엔 어제 외국으로 돌아간 동네 친구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택배 무게를 보아하니 책이다. 무거운 걸 보니 2권 이상인 듯하고, 친구가 한국에 있는 동안 재미있게 읽던 책을 몰래 온 손님으로 보내고 떠났다.
책도 읽고 싶고 미니멀리즘도 하고 싶다고 아우성치던 때에, E-Book을 구매했다. 두꺼운 책을 여러 권 보관하고 싶지 않았고, 휴대용으로 종종 읽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 다짐은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구매와 다운로드로 이어졌다. 하지만 잘 읽진 않았다. 그렇게 수 세월을 보내다 만난 종이 책은 보는 것도, 선물 받은 것도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했다.
추천과 선물의 의미가 두루두루 있는 이 책은 몰입도가 상당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자극적인 제목과 빠른 호흡의 단문으로 직장인 사찰 얘기를 다뤘고, 사족이 없어 후루룩 읽혔다. 총 3편인 시리즈 중 휴가 때 1권만 챙겨 갔고 후회했다. 2권도 가져올 걸.
이 책 자체의 내용도 좋았지만 제일 좋은 건 따로 있었다. 책 읽는 시간을 두니 핸드폰 보는 시간이 전보다 현저히 줄었다. 여름휴가 때 디지털 디톡스를 해보자고 책을 챙겼으나, 여행 중 인상 깊던 장면을 (하루에 3개씩) SNS 스토리에 남기느라 디지털 이별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대신 휴가 마지막 날 쫓기듯 시작한 간헐적 독서는 디톡스의 시작이었다. 핸드폰을 보지 않으려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아니지만, 덩달아 얻은 효과로 기분이 좋았다. 예전 글에도 잠시 다뤘듯이 책을 읽는 건 견문을 넓히고, 다른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장점이 많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에 시선을 떨구는 버스,지하철,식당 등 앵글 속에 잠시 빠져 있는 것도 좋았다.
디지털 디톡스는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중단하고 휴식하는 처방 요법인데, 이 의미를 또 디지털 매개체에 쓰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뗄레야 뗄 수 없고, 나 또한 모든 인터넷 세상을 연결해주는 통신회사에 몸 담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 세상을 거부할 순 없고 장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대신 혼자 있는 시간에 핸드폰을 습관처럼 보고 있고, 주로 SNS> 유튜브> 네이버를 돌며 이미 본 내용들을 습관적으로 또 보는 소모성 시간이 많아졌다.
해서 핸드폰에 필요 이상으로 머물던 시선을 책으로 잠시 옮겨 보려 한다. 식탁에 앉아서 맥주 한 캔 까놓고 책 읽는 시간도 묘한 즐거움과 집중이 따랐다. 재미를 붙인 걸 보니 흥미롭고 빨리 읽고 싶은 주제의 내용을 이동 시간에 보는 가벼운 시도가 시작을 도왔다. 시도가 적응이 되면 한 권의 책을 끝내기까지 킬링 타임과 오롯이 집중해서 보내는 시간을 왔다 갔다 하며 책 읽는 시간을 늘려보고 싶다. 디지털에게 잠시 이별을 고하고 책도 읽고 싶은 의지치는 이렇게 섞어서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