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상시간은 마음대로였다.
출근이나 약속시간에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날. 아무런 일정이 없는 마지막 휴가날이다. 휴가로 다녀온 여행은 재밌긴 하지만, 굵직한 활동들과 이동 동선 등을 생각하고 제한된 일정을 보내 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쓰는 경우는 적었다. 바다나 수영장에서 물에 동동 떠있는 시간 정도는 무념무상이었고.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구는 평일은 행복이다.
미룬 책 읽기나 글쓰기를 눈치 보지 않고 마구 할 수 있어서 좋다. (집이나 휴가지가 안식처이자 휴식의 의미는 맞지만, 일상이나 여행이 유지되려면 의무적인 일들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 앞서서 익숙함과 새로움, 루틴 등에 대한 이야기를 썼지만 이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가끔은 역시 행복하다. 평소에 못하는 것의 반증일 수도.
아침을 간단히 먹으며 책 읽을 생각에 여유 가득한 마음을 가지다가, 글쓰기 약속이 생각나 노트북을 두들기다 보니 벌써 14시가 다 돼간다. 14시가 되면 어떤가. 라면 하나 끼리 먹고 책 읽을 시간이 충분하다. 분재에 물을 줬냐는 카톡과 휴가인 줄 모르고 연락했다는 업무 전화가 치고 들어오지만 괜찮다. 오늘은 마음대로 시간을 보내는 날이니.
여름휴가는 연속으로 쓰거나 3일씩 나누어 쓰는 편인데, 여행 기간이 끝나고 하루는 더 쉬는 일정을 짰었다. 그 남은 하루도 외출을 해서 이곳저곳 구경 다녔는데, 오늘처럼 뭔가를 해야쥐! 생각지 않고 늘어져 있는 게 오랜만이다. 글을 쓰며 왜 이런 시간이 없었을까 돌아보니, 근래 휴가는 노는 활동에 쓰는데 열정적이어서, 계획 없는 오늘 같은 시간을 불러왔고 필요했다. 노는 건 재밌긴 한데, 이틀 전 귀가 후 물놀이 도구 빡빡 씻고 + 밀린 세탁 하고 + 저녁 해 먹으니 피곤이 살살 몰려오긴 했다. 지난 휴가로 오늘 청소하는 날인 게 지금! 갑자기! 생각나서 마음대로 시간을 언제까지 쓸지, 저녁은 무슨 메뉴로 먹을지 머리 굴리는 정류장에 잠시 다녀왔다. 오늘의 행복이 14시 즈음에 끊기지 않길 바라며, 종종 이런 시간을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