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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Oct 03. 2022

괜히 마음이 쓰이는 사람들



-01-

사무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반가운 얼굴을 뵈었다. 전략적 배치로 지역영업팀에 계시다 본사로  동료를 만나서였다. 적응은 잘하고 계시냐는 질문에 여러 대답이 오갔다.

산속에 있다가 도시로 오니 공기가 너무 안 좋고, 차나 오토바이 소리에 밤잠을 설쳤다, 여기는 18시 지나도 왜 퇴근을 안 하는지, 커피는 어디서 어떻게 마시냐는 마지막 질문까지. 듣고 보니 이 분 입장에서는 그리 얘기하실 만하다. 회사 생활 15년 차를 넘어서고 새로운 환경에 오셨으니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를 시간이 필요하다. 그간 짬바로 잘 지내시리라 믿으며, 탕비실 커피머신의 종이컵 위치를 알려주며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조직 개편이 잦다. 잦은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해가 지날 때 마다 업무도 사람도 함께 이동한다. 그 이동 수에는 내가 포함될 수도, 20년 차 선배들이 새로운 일을 받기도 하고, 어제까지는 옆 팀이었는데 오늘은 한 팀이 되기도, 어제는 팀장이었다가 오늘은 매니저로 함께 하기도 한다. 처음엔 어리 둥절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간 회사의 인턴 채용 과정을 지켜보니, 나 너무 잘났어요 하는 사람보다 변화에 적응하고 협력하는 친구들을 뽑아 키우는 것도 이런 환경의 이유라 생각한다. 최근 회사 교육 플랫폼에 업무나 환경이 달라져도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코어능력을 기르는 강의가 생기는 걸 보니, 발 빠른 변화에 적응하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 이곳의 숙명이라는 걸 증명하는 듯 하다.


그러다 보니 연차에 상관없이 언제든 새로운 생존환경에 띄어 드는 (나 포함) 미어캣들이 눈에 띄면 괜히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눈 인사라도, 쌀과자 하나라도 먼저 건넨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내가 생각나서인 게 가장 큰 이유 같다. (아 물론, 신규 구성원 케어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채용 규모가 커질수록 체계적인 케어가 따라가고 받쳐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1인) 미어캣즈 선후배는 이때의 기억으로 후에 고마움을 표하거나 따뜻함으로 맞아준다.  



-02-

저번 주 퇴근 준비 중, 알고 지내던 인턴들의 합격 발표를 하나 둘 듣기 시작했다.

붙었으면 하는 친구들의 소식이라 반가웠다. 두 달의 인턴기간 동안 본인만의 무기와 전략을 쏟아 붙는 걸 알기 때문에 그 과정에 도움의 손을 내밀면 언제든 응했다. 많게는 8살 터울까지 있는 친구들에게 과제나 인턴 생활 관련 피드백을 주고 점심을 먹으며 예쁘고 합리적인 말을 고르는 수고를 기꺼이 치렀다. 라떼는 선배들의 세심함 보다 터프함이 앞다퉜지만, 내가 배려를 못 느꼈다고 이제 들어오는 창창한 친구들에게 똑같이 할 순 없다.


(다시 라떼는)

일부 선배들은 본인이 부딪히며 배운 노하우를 왜 공유하는지, 여기는 학교가 아니라 회사기 때문에 일일이 다 가르쳐줄 수 없다고 얘기했다. 배움의 손길이 필요할 땐 사회초년생이라 이 말에 반문하기보다 적응하기가 바빴는데, 후배들을 맞이하는 연차가 되어보니(+업무 환경이 개선되기도 했고) 시간과 애정,생각의 전환을 가지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얼마 전 회사 선배와 점심을 먹으며, 변화와 혁신은 두 세대가 지나야 온다는 말을 들었다. 합격의 기쁨에 들떠 있는 친구들에게 한껏 즐기고 오라 했지만, 지금 시점은 변화발에 고작 한 세대가 지나가고 있는 중이라 앞으로 편하고 밝은 앞날만 있진 않을 거라고 긔띔해주는 때가 올 것 같다. 그 때가 당장은 아니길 바라며, 서로 다른 강도의 좋은 일과 풍파의 반복을 겪는 사이로 괜한 마음이 쓰일 때마다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관심과 시간의 사치를 최대한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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