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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Dec 18. 2022

환기미술관 가던 날

건축의 묘와 미술사가 궁금해졌다.

주말 서울 나들이는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라 더 즐겁다. 환기미술관을 가기 위해 한남대교를 건너고 종로에 내려서 부암동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도롱은 명동에선 빌딩 높이가 너무 높아 하늘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는데, 경복궁에 오니 넓은 파란색이 보인다고 좋아한다. 나지막한 궁들의 문화재 보호 덕분에 주변의 건물 높이가 제한되어 탁 트인 시야가 얼굴을 내민다.

 

영하권 날씨에 입김을 호호 불며 환기 미술관 앞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인상 깊던 몇 가지가 있어 글로 남기고 싶다. 일단 환기 미술관은 수화 김환기 선생을 위해, 부인 김향안 여사(이자 수필가)가 만든 공간이다. 남편이 생전 만들고 싶던 공간을 부인이 완성한 것. 부인은 우규승 건축가와 함께 환기미술관 얼굴을 세상에 드러냈다. 미술관의 히스토리가 흥미로워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김향안 여사는 천재 예술가 2명과 결혼했다. 초혼은 천재 시인 이상을 만났고 이상 시인이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뒤, 김환기 선생과 재혼했다. 본래 이름은 변동림인데 아이가 있는 김환기와 결혼을 결심했을 때 집안의 반대가 있었고, 김환기의 성을 따서 김향안으로 개명했다.




<건축의 한 수>

내가 갔을 땐 "뮤지엄 30년, 포럼의 공간"이라는 테마로 전시 중이었는데, 미술관이 단순히 작품을 보는 곳이 아닌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둔다는 점이 신박했다.


"미술관은 수화 선생님의 정서와 예술에 어울리는 곳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산, 달, 구름, 바위, 나무 같은 자연과 어울리고 한국의 정취가 있으며 현대적인 세렴 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규승, <건축문화>, 1994년


보통 다니던 미술관은 네모 반듯한 평면적 공간이었는데, 이곳은 입체적이다. 본관의 1,2층 사이로 천장이 뚫려있는데, 같은 작품이더라도 층 별로 달리 보이도록 유도하는 동선을 만들었다. 1층에서 그림을 볼 때와 2층에서 1층 그림을 내려 볼 때의 구도와 느낌이 다른 점을 연출, 설계한 점이 똑똑해 보였다. 공간의 재미와 자연채광의 변수가 이 곳을 요리조리 보게 만드는 묘수다. 전시관 내 사진 촬영이 불가하여 집중의 힘도 좋다.


3개의 건물을 안에서 또 밖에서 이동하며 보는 야외 정취도 빼놓을 수 없는데, 자연 러버의 뜻이 담긴 공간인 점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미술관이 어떤 의지로 어떤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는지, 공사 내역을 사진으로 설명하고 건물 자재들도 구경하는 재미가 좋다. 또 요즘 기술인 메타버스를 활용해, 큐티뽕짝 캐릭터가 가상세계에서 미술관을 둘러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설치한 시도에 희희덕거리며 메타버스 속 공간을 뛰어다녔다.



<추상미술의 한 수>

무엇보다도 김환기 선생의 작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점면점화"라는 본인만의 장르를 고수했다. 작품 높이가 보통 2m의 농구선수 키만한 대작이라 수가 많지 않다고 한다.(국내 미술품 중 132억, 최고 가격의 주인공..!)  


사실 공간의 특이점 말고 작품 자체의 장르고 추상화고 어찌 봐야 하나 어려웠다. 여기엔 전문가 설명 영상앞에서 헤드폰을 끼면 해결된다. 미술사가 어떻게 발전해서 추상화까지 오게 되었는지 절절한 답을 들을 수 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세계> 동양> 한국 미술사를 유튜브에서 찾아보게 되었는데, 굵직한 흐름을 간단히라도 알아두면 앞으로 둘러보는 전시 재미가 배가 되겠다. 화가들은 이집트 벽화부터 시작해서 줄곧 남이 원하는 걸 의뢰받아 그려주다 여러 변천사를 겪고 비로소 현재에 와서 본인이 원하는 걸 그리게 된다. 고대 이후 로마 그리스 신화의 서양 화가 황금기, 100여년의 고인물 중세 시대의 종교중심 건축을 지나 귀족들의 허영을 그리고, 19세기 사진 기술 발명을 거쳐 사진에서는 볼 수 없는 찰나를 그리는 과정까지 오고만다.(모네, 고흐 등) 


본인이 원하는 걸 표현하는 시대 바람을 타고 수화 김환기와 환기 미술관이 탄생했고, 선구자의 뜻을 이어주는 부인과 건축가의 도움으로 후대의 모두가 귀한 경험을 해 본다.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웠던 거 같은데, 그땐 시험에 나올 단어만 외우기 바빴다. 역시 관심을 시작으로 공부해야 효과가 좋다 ^.^;


그간 미술관에 다닌 이유는 단독 공간이 주는 고요함과 집중할 수 있는 다양한 그림들이 좋아서였다. 환기 미술관을 계기로 미술사에 대한 궁금증이 시작되었고 쉽고 빠른 유튜브 선생님 덕분에 더 넓은 세계관을 경험할 생각에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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