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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Dec 31. 2022

졸업이 언제 적이더냐

입학을 앞두고


그저께 외출 길이었던가, 낯선 단어가 눈에 띄었다.

가로로 2m 즈음 돼 보이는 현수막엔 "졸업을 축하합니다"라는 문구가 바람에 펄럭였다. 초등학교 교문에서 만난 낯설음. 졸업이라니, 오랜만에 보는 두 글자다. 나한테 졸업은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생각해보니 까마득하다. 학업을 마치는 의미라면 10년이 된 듯싶다. 얼마 전 수능 날도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졸업식이나 수능 날엔 길이 막히고 인파가 꽤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인 걸 보니, 새삼스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싶다.


졸업은 두 가지 의미를 품는다. 학생이 교과 과정을 마치는 것과 어떤 일, 기술, 학문 등에 통달하여 익숙해지는 것. 초등학교 현수막 졸업 글귀에 놀라는 나를 보니, 선자의 졸업은 잊고 지낸 지 오래다. 후자의 졸업은 살면서 의지를 둔 일들에 계속해야 될 것 같고. 교과 과정에서 입학과 졸업을 마쳤다 해도, 시작엔 입학을 통달엔 졸업에 의미를 둔다면 줄곧 해온 과정이다.


작년엔 가전 가구를 알아보며 네이버 카페 커뮤니티의 정보력을 둘러보는데, 게시글 제목에 "가전가구 졸업했어요 축하해 주세요"라는 말들이 꽤나 있었다. 여기서 졸업은, 드디어 가전 가구를 다 고르고 구매까지 이르는 복잡한 과정을 마쳤다는 해방의 의미다. 으레 해야 하는 퀘스트를 하나씩 깨 가며 드디어 끝이다라는 해방감..! 이렇듯 졸업엔 마무리 의미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 마무리를 축하하는 행사인 졸업식과 축하 인사 대신 전하는 꽃다발과 사진촬영 등을 연상케 하며. 여기서 졸업생 축사가 더해진다면, 마무리는 곧 또 다른 시작이라는 얘기가 따라온다. 진부하지만 너무도 당연스러운 이치.


최근엔 팀 이동을 했다. 9년 동안 한 팀에 있다가 새로운 환경을 택한다고 나섰으니 이 또한 졸업이겠다. 제 3자가 보면 오왕 할 시간이고, 내가 봐도 9년은 절대적 시간으로 따지면 긴 세월이다. 처음부터 한 팀에 오래 있을 거다 다짐한 적은 없고 한 해 한 해를 겪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때마다 치러야 할 일을, 해야 할 일들을 하다 보니 초, 중학교 졸업하는 시간정도가 흘렀다. 처음부터 목표나 의미부여를 가지고 시작했다면 성격상 꾸준히 하는 건 힘들었을 거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 아니지만. (대신 선택적 무념무상은 건강에 이롭다.) 이번 입학 시즌은 똑같은 시간을 조금 더 알차게 보내는 방법을 택할 것이고, 지난 수료과정의 배움을 잘 활용해 봐야겠다. 스스로 믿는 시간을 더 늘려가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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