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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Jan 13. 2023

행복지수가 손짓하던 곳  

오랜만에 주말 캠핑을 떠났다. 이제는 루틴이 돼버린 준비물 챙기기에 몸은 기계처럼 움직여 캠핑 장비를 꺼내고, 마음은 한껏 들떠있었다.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으로 갈 때 느끼는 뻥 뚫린 시야가 첫 번째로 반겨주고, 설경 사이 나뭇가지 눈썹은 하얀 마스카라를 한껏 뽐내고 있다. 창밖 구경에 금세 도착한 캠핑장은 어른, 아이 상관없이 눈사람과 눈썰매 배틀에 여념이 없었다. 장박 손님이 대부분이라 텐트 정리의 부담감도 적어 보였고. 밥때가 되면 미리 준비해 온 식재료로 뚝딱뚝딱 한 끼를 준비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 앞에 앉아본다.


이번엔 장박 하는 지인들과 함께했는데, 미니멀 캠핑을 하는 우리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큰 텐트 속에 전기장판이 깔려있고, 전기밥솥에서 허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이 나온다. 작은 공간 속에도 거실과 침실이 체계적으로 분리돼있다. 캠핑에서 장박이라 함은 아지트이자 별장을 뜻한다. 한 캠핑장의 고정 자리를 3개월 정도 예약해 두고 가고 싶을 때마다 가는 거다. 모르던 앞집, 옆집 사람들과 금세 친구 되는 법들 배우고, 눈 밭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은 행복지수 최대치였다. 그걸 보는 내 눈도 깨끗해지는 느낌이랄까.   

소복이 쌓인 눈을 장난감 삼아 만든 눈사람은 가오나시에 울라프까지 가지각색이고, 서로 요리한 음식을 나눠 먹는 일. 요즘 도시에선 찾기 힘든 모습이다. 장박 패밀리 중 한 분은 그냥 집에 누워있었으면, 아이들에게 나가 놀라고 말하진 못했을 거라 한다.


캠핑에선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고민'이 8할 답게 새로 맛본 음식도 있었다. 과일 도소매를 하시는 할부지를 둔 아이는 마트에서 파는 딸기와 할부지가 떼오는 딸기 맛을 구분한다. 귀한 거라 나도 한 입만 베어 먹었는데 지금껏 먹은 딸기는 가짜였다. 역시 좋은 경험은 많이 하고 보는 것이 와따다.

집에선 에어프라이어로 생선을 구워 먹고 편리하고 냄새도 안 난다 좋아했지만, 숯불로 구운 생선 맛에 완패했다. 엄청난 화력의 숯불 도움으로 기름이 쪽 빠진 생선 맛은 아직도 생생하다.


늦은 밤 꽁꽁 언 얼음물로 변신한 계곡 앞에서 보름달을 보며 양치하는 시간이 꽤나 행복했다. 뭐 그런 걸 가지고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즐기고 아끼는 활동을 오랜만에 꺼내보았다는 게 첫 답이고, 양치를 화장실 거울 앞이 아닌 설밭 앞에서 하게 되는 의도치 않은 시간이 두 번째 답이다. 캠핑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를 잠시 잊고 지냈다.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보낼 수 있는 1박 2일, 이보다 더 호화스러운 시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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