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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Jan 16. 2023

어린시절 내 안식처

슬램덩크가 돌아왔다.

때는 1997년 어느 날, 이사를 왔다. 모든 집이 똑같이 생겼는데 키만 다른, 아파트라는 곳이 처음이라 낯선 기억이 있다. 이곳에서 적응은 네모네모 집에서 조금 나가면 보이는 허허벌판에서 시작된다.  500원의 거금을 내면 30분 동안 방방이를 탈 수 있는 하늘과 땅 사이 놀이의 장. 두 아이를 둔 내 친구는 그때 당시 자유가 허락된 방방이 위에서 공중제비를 돌곤 했다.  


그 뒤를 잇는 두 번째 안식처는 만화책방이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자리를 지키고, 재생용지 냄새가 가득하던 곳에 많이도 들락날락거렸다. 집에 와서 오빠 방문을 열면, 벽에 기댄 채 일진포즈로 앉아 쌓아놓은 만화책을 보던 집중의 미간이 기억난다. 그때 처음, 슬램덩크와 마주했다.

형제자매의 만화책 탑쌓기를 따라 하던 어떤 날엔 집으로 전화 한 통이 온다. 수화기 너머 반납 기한이 넘었다는 만화책방 할배의 목소리를 오빠가 듣는 날이면 비상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를 호되게 혼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만큼 학원물 만화를 많이 봤던 오빠는 만화 속 짱 흉내를 내고 싶던 거 같다.


2023년 어제, 슬램덩크를 다시 만났다. 그것도 움직이는 버전으로. 만화책이 아닌 영화관 빅스크린으로. 90년대를 다녀온 기분에 신이 났다. 지금은 눈 감고도 돌아다니는 본가가 낯설던 때, 방방이 위에서 허락된 오백 원의 자유, 인기 만화책의 다음 권수를 기다리던 매일, 지금은 본인 딸에게 학원물 만화 배틀처럼 혼나는 오빠까지. (원작엔 다루지 못했던 송태섭 가족 이야기에 눙물을 흘리기도). 영화가 끝나고 마트 장을 보며 부르고,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들었던 주제가로 마이크를 넘긴다. 박상민의 창법으로, 뜨거운 코트를 가루며~ 너에게 가고이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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