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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Jan 24. 2023

1월의 발끝에서


아빠의 본가, 인천에 다녀왔다. 10년 만이다. 조부모가 돌아가신 뒤 큰 집에 가던 발걸음이 잦아들다 희미해져서다. 코로나로 좀 늦어진, 양가 본가에 인사를 드리는 명분으로 이번엔 도롱이 함께했다.


아빠에겐 8남매가 있는데, 지금은 둘만 남았다. 본인과 본인의 누나(나에게 고모)다. 그래서 이번 스케줄은 큰 집에 갔다가 고모네까지 찍고 오는 바쁘다 바빠 현대 동선이다.

중간에 산소까지 방문했는데, 돗자리 하나에 여러 명이 함께하면 돗자리는 연장자에게 내어준다. 돗자리 밖으로 밀려난 여럿은 생무릎으로 풀밭에 엎드려 절을 한다. 점잖게 입고 가자던 도롱과 나는 무릎에 잔뜩 묻은 풀때기를 다 떼어내기도 전에 고모네로 이동했다. 고모가 병치레로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엄마는 고모마저 떠나면 8남매 중 아빠가 혼자된다는 얘기를 한다.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잘도 하는 게 엄마의 매력이긴 하지만, 형제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 남는 기분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아빠는 우리가 준비해 온 단자세트를 가져와 고모에게 설명해주라 했다. 누이를 위해 내 자식 내외가 신경 써서 선물을 준비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또 최근에는 우리와 속초와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자랑한다. 여행 중 종종 힘든 적이 있었지만 생전 먼저 자랑을 하지 않는 아빠가 여행 얘기를 꺼낸 걸 보면, 선물도 여행도 신경 쓰길 잘했다 싶다. 엄마는 우리가 주말마다 캠핑 다니는 얘기로 이어갔다.


그러다 다시 아빠가 입을 연다. 캠핑카와 첫만남을 알리려다 월남전에 두 번 참전했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돈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참전한 전쟁에선 크게 두 가지를 체감했는데, 전쟁을 통해 생사의 기로가 너무 잔인하리만큼 명확했던 경험과  미국이 대단히 대단한 나라라는 것. (21세기는 무기 대신 국가 간의 경제,외교 관계를 끊는 전략을 택하는지라 총성이 앞다투는 60년대 전시가 낯선 세계로 들렸다)

초고강도의 담력 훈련이 한달동안 이어질 정도로 전시상황은 삶과 죽음 사이에 직감적으로 반응하는 곳이며, 1960년대에 미국 군사용 캠핑카 퀄리티를 본 한국인은 놀라 자빠졌다고 한다. 캠핑카 하나만으로도 선진 기술의 위엄이 보였다고. 가족, 친척들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다. 이런 걸 보면 진짜 고생한 사람은 본인의 고생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레알 행복한 사람이 본인이 행복하다고 나서서 얘기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가족에게 종종 보이는 단단함은 DNA일 수도 있겠다.


오랜만에 만나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계가 14시를 가리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선물 픽업한다고 새벽 6시부터 나서느라 피곤이 몰려오고, 노곤해질 때쯤 차 뒷자리를 살피니 부모님도 곯아떨어졌다.


어릴 적 만나던 젊고 어린 친척들은 이제 머리가 하얗게 세고 조카들은 의젓한 성인이 되어 알아 보기 어려웠다. 시간은 나에게만 흐른게 아니라는 소리 없는 고함을 듣고, 짧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과 노곤함으로 1월의 발끝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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