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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웅이 집 Jun 25. 2023

45도로 고개를 숙인 사람들


금요일 퇴근길, 버스 창 밖으로 정류장에 줄줄이 서 있는 무리를 구경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들 모두 45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버스를 기다리는 다소 지루한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그중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자가 등장했는데, 외국인..! 타지에서 버스를 놓칠까 요리조리 집중을 하다 보니 스마트폰에 눈 길을 줄 여유가 없어 보였다. 이 외국인을 제외하곤, 버스에서 내려다본 사람들의 눈코입 대신 정수리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문득 나도 그런가 싶었다. 내 출퇴근길을 돌아보면 70% 정돈 스마트폰과 시간을, 25%는 주변 관찰과 마지막 5%는 드문 독서 정도인 듯 싶다. 이 날 회사 강연으로 책 한 권을 받아 들고 왔던지라 주말엔 책도 좋고 좀 더 다른 것들을 보자고 마음먹었다.  스마트폰 보단 주변이나 책 속 구경거리에 조금 더 신경을 써 보자고.


주말엔 아침부터 강릉 한 바퀴를 바삐 돌았다. 이동은 주로 대중교통을 타고 걸어 다녔는데, 자동차를 타고 다닐 때 보지 못한 것들을 꽤나 많이 발견한다. 그 중 귀엽고 인상적인 것들은 스마트폰 네모 화면에 촬영버튼으로 담긴 하지만 그땐 피사체를 향해 고개를 90도로 들어 주었다(?)  예전부터 가고 싶던 카페와 그 앞에 해변을 거닐 상상을 하며 열심히 찾아갔다. 도착한 목적지에선 간단한 다과를 주문하고 새 책을 곁들이는 시간이 꽤나 행복했다. 올해 들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2차로는 바다에 가서 캠핑 의자를 피고 다시 책을 펼쳤다.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과 촘촘한 활자에 집중하다 고개를 들면, 시퍼런 바다로 눈이 시원해지는 시간도 여유 지고 행복했다.


강원도에서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 숙인 사람들을 많이 보진 못했다. 이유는 뭐였을까. 여행지여서인지, 주변에 볼거리가 많아서인지,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비교적 적게 사용하는 건지. 디지털 거리두기를 하는 듯한 환기되는 장소와 볼거리로 마음속에 여유가 가득 차올랐다. 이 곳에 있다 보니 의문의 중얼거림도 던져본다. 평일엔 귀가 후에 누워서 스마트폰 쪼물락거리기에 바빴는데, 뭔가를 만들어 보기도 구경하기도 책 읽기 등 다채로운 할 거리가 많았을 텐데.


이번 여행지에서 행복했던 이유는 좋아하는 몇 가지가 모여 있어서다. 나무가 많고 쾌청한 공기와 그에 딱맞는 바람의 시원함, 인파가 드문 고요함이 좋았다. 이 느낌이 꽤나 좋았어서 내일부턴 다시 여행길에 못다 읽은 책을 들고 나가 볼 테다. 좋은 정기의 연장선을 가져간다는 느낌으로. (경기도로 돌아오니 시멘트 열기에 잠시 당황했다는) 일터로 나서는 곳곳에 휴대폰을 향해 고개 숙인 정수리 인사를 (나 포함해서) 자주 볼 테지만, 그럼에도 활자와 변화무쌍한 날씨와 풍광에 눈길을 더 가져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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