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제는 "도를 아십니까?" 혹은 "우주의 기운을 당신에게..."와 같은 신앙과 연계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글의 숨겨진 에너지가 비즈니스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글은 나의 의도를 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상대방은 글을 인지하고, 글쓴이의 의도를 뇌에서 이해하는 사고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면, 글 속에 에너지가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우리는 글을 쓸 때 대상을 떠올리고, 나의 생각과 의도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에서 글을 쓴다. 다시 말해,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언어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합의된 언어를 학습한 인간은 서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은 전달 매개체(쉽게 말해 중매쟁이와 같다)로써, 그 속의 의미와 의도를 실어 나를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있다. 마치 기차역의 플랫폼에서 사람을 실어 나르는 것과 유사하다. 여기서 글은 기차를 의미하고, 사람과 사람은 기차역의 플랫폼과 같다. 그렇다면 기차(글)에 탑승한 승객과 짐은 무엇일까? 바로 정보, 의미, 느낌, 의도 등으로 비유할 수 있다. 글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저장고를 갖고 있으며, 우리는 무형의 가치를 그 공간에 집어넣고 다른 기차역의 플랫폼으로 전송한다.
글이 목소리를 통해 전달될 때, 그 의미는 새로운 차원으로 변모한다. 예를 들어, "오늘도 술 마셨어?"라는 동일한 문장이라도 자녀가 아빠에게 말할 때와 아내가 남편에게 말할 때는 그 해석이 완전히 다르다. 같은 글이지만, 말하는 사람의 감정과 목소리의 톤이 더해져 전혀 다른 메시지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걸까? 첫째, 다른 '선로', 즉 각기 다른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는 점이다. 둘째, 말하는 사람의 고유한 에너지, 우리가 흔히 '기(氣)'라고 부르는 것이 그 말에 실려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같은 글이라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게 만든다.
기차가 출발하면, 다음 역의 기관사는 일반적인 시각적 플랫폼이 아닌 청각적 선로 앞에 서서 기다린다. 곧 기차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리고, 기차가 멈춘다. 문이 열리지만, 이번엔 승객 대신 짐만 보인다. 기관사가 느낄 수 있는 건 그 짐에서 뿜어나오는 온기나 한기뿐이다. 때론 문이 열리자마자 기관사가 저절로 뒤로 물러서기도 한다. 승객도 없는데 말이다.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글에는 에너지가 숨겨져 있다. 이 에너지는 단순한 정보 전달부터 감정과 의도, 심지어 강한 애정까지 담아 전달할 수 있다. 때로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담은 글이 수신자에게 전해지면, 마치 폭발하듯 강렬한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긍정적인 것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글에 담긴 에너지의 파급력은 매체마다 다르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인 글이나 간절한 마음이 담긴 글은 강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이런 글은 마치 창과 화살처럼 독자의 마음을 꿰뚫는 힘이 있다. 반면 단순 정보만 담긴 글은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약하다. 정보의 가치에 따라서도 에너지 수준이 달라지는데, 중요한 정보일수록 에너지가 높고 가벼운 가십거리일수록 에너지가 낮다. 예를 들어, 브런치나 비슷한 플랫폼에서 정성껏 쓴 글이 놀라운 조회 수를 기록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AI 알고리즘의 도움으로 노출이 늘어났겠지만, 글 자체의 파급력이 없다면 아무리 알고리즘이 밀어줘도 널리 퍼지지 않는다.
글에 담긴 에너지는 그 휘발성과 지속성에서 차이를 보인다. 단순 정보를 담은 글은 유행을 타면 빠르게 퍼지지만, 그만큼 빨리 사라진다. 연예인 가십거리가 순식간에 화제가 됐다가 금세 잊히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인물의 유명세에 따라 그 지속 기간이 달라지며, 특히 부정적인 내용일수록 더 오래 기억되고 더 큰 파급력을 갖는다. 이는 마치 부정 8 : 긍정 2의 비율과 같다. 팀에서 긍정적인 사람 4명과 부정적인 사람 1명이 함께하면 대치상태(균형)를 이루는 것처럼, 부정의 에너지는 그만큼 강력하다.
반면, 저자의 혼이 담긴 글은 오랫동안 그 가치를 유지한다. 이는 마치 캠프파이어의 돌과 같다. 나무는 타고 나면 재만 남아 열기가 금세 사라지지만, 돌은 아침까지도 따뜻함을 간직한다. 이렇듯 글은 파급력, 휘발성, 지속성이라는 세 가지 속성을 지닌다. 그런데 이는 비단 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콘텐츠, 예술품 등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형태의 창작물이 이런 특성을 갖는다. 인간이 이에 무형의 가치를 부여하면, 그 대상은 에너지를 지닌 존재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비즈니스에서 어떤 점을 깊이 고민해야 할까?
최근 수익형 블로그, 애드센스 전략, 유튜브 쇼츠 등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정보와 방법론이 넘쳐나고 있다. 나는 돈을 좇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돈이 있어야 생활을 할 수 있고,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심지어 노후도 보장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은 돈을 더 벌게 만드는 동기부여의 속성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배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인지해야 한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내어줘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다. 맹목적으로 돈을 좇게 되면, 나의 영혼을 조금씩 팔아야 한다. 본질이 흐려지고, 철학과 원칙이 사라진다. 결국, 언발에 오줌 누기처럼 단기적인 사고의 범주에서 현실과 비교하며 다람쥐 쳇바퀴처럼 흐르는 것이다.사회심리학에서는 내가 놓인 상황과 사람에 따라 사고와 관념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이는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인데, 내가 돈을 좇는 환경의 프레임을 설정하고 내 몸을 그 속에 던질 때, 이어서 따라오는 것은 정신이다. 정신마저 프레임 속에 갇혀, 장기적 관점의 더 넓은 관념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점차 우리는 현실과 돈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즉각적인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수익형 블로그를 예로 들면, 클릭수가 높은 콘텐츠에만 집중하고 순수한 가치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 결과 트렌드에 맞춘 정보성 글이나 자극적인 제목의 글(일명 어그로)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광고로 가득한 웹사이트를 누가 즐겨 찾겠는가? 단기적으로는 클릭이나 구매를 유도할 수 있을지 모르나, 재방문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방문자가 줄고 수익도 감소한다. 수익 회복을 위해 더욱 자극적인 콘텐츠로 도배하지만, 이는 늪에 빠져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지는 것과 다름없다.
마케팅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하소연을 자주 볼 수 있다. 수익형 블로그를 여러 개 운영했지만, 초반의 성과는 오래가지 못하고 수익이 떨어지다가 결국 차단되어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유혹은 강력하다. "월 천만 원 수익", "1억 원 돌파" 같은 성공 사례가 계속해서 올라오며 실망한 이들에게 다시 희망을 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직관적이고 단순한 것을 선호하며, 눈에 보이는 단기적 결과를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신과 맞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이런 성공 사례에 끌리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돈으로만 가치를 측정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오히려 순수학문, 철학, 인문학, 순수예술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잠재적으로 큰 부를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가진 가치를 금전적으로 환산한다면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은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음악, 예술, 문학 등 순수한 가치를 추구하는 분야의 중요성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K-컬처의 세계적 인기로 무형의 가치가 점차 인정받고 있다지만, 여전히 빈부 격차는 크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유행하는 현 시대는 과거 60~70년대 공무원과 묘하게 닮아있다. 당시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때 공무원을 택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공무원이 선호하는 직업이 되었다. 최근 들어 공무원의 인기가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여전히 인기 직종임은 분명하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문송합니다"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올 수 있음을 암시한다. 즉, 순수 가치를 추구하는 분야가 더 중요해지고 인정받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다소 확장된듯하다. 아무튼 핵심은 이렇다. 순수한 가치 추구와 단기적 수익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순수 가치를 추구하면 당장의 수익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자극적이거나 유행에 맞춘 콘텐츠는 빠른 수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돈을 쫓는 이들에게는 장기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순수 가치만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현실적인 수익 모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는 마치 캠프파이어와 같다. 캠프파이어의 목적은 캠핑을 즐기는 것이다. 돌만 쌓아놓는다고 해서 따뜻해지지 않고, 불만 지핀다고 해서 오래가지 않는다. 목적에 맞는 균형이 필요하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이익만 좇다 보면 장기적 가치를 잃을 수 있고, 반대로 순수 가치만 고집하다 보면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힐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큰 그림을 그리며 장기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수익 모델을 갖추는 균형 잡힌 시각이다. 이러한 균형 잡힌 접근은 비즈니스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이다. 특히 사업가에게 이는 더욱 중요하다. 글에 담긴 에너지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은 현대 비즈니스 환경에서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결국, 가치와 수익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적인 비즈니스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