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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Aug 20. 2024

광고대행사도 처음엔 진심이었다!

광고대행사의 이면: 열정에서 회의감까지


운영하다 보니, 단발성 수주가 메인이 되어있었습니다.


부업으로 마케팅기획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기획 및 전략을 수립하면, 하청 파트너들이 수행하는 방식의 비즈니스구조다. 쉽게 말해 광고로 용돈 벌었다고 보면 되겠다. 부업을 하는 이유는 본업인 스타트업이 불안정해서다. 창업초기, 자기 자본금이 없을 땐 스타팅 멤버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컵라면만 먹어야 했다.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없다.


부득이하게 알바 혹은 직원 1명이라도 생길라치면, 십시일반 고통을 분담해 직원급여를 맞춰줘야 했다. 마치 출산 뒤, 할부 영수증이 부부에게 청구되는 것과 매우 흡사한 상황이다. 스타팅 멤버는 초기 생활비를 가져가지 못해 생활이 힘든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리더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빠른 시일에 투자를 받게 되면 웃으며 넘길 수 있겠으나 통상 이런 확률은 낮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부분을 메워줘야 한다. 그렇게 시작된 부업은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면서 직원이 생기게 된다. 공교롭게도 스타트업 본업에서 직원이 늘어나야 하는데 부업에서 발생하는 꼴이라니, 예상대로 흘러가는 게 단 1도 없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임원들도 손가락을 빨면서 버티는 횟수가 줄어 좋았다. 그렇게 5년을 버티며 생활했다. 회의감에 빠져 돈이고 뭐고 다 내려놓기 전까지는...



처음 마케팅컨설팅을 시작했을 때, 나는 고객의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열망으로 가득 찼다. 마케팅기획이란 본디 광고, 홍보, 서비스기획, 상품기획 등을 아우르는 A-Z 전략 아니던가? 기획은 내가 맡고, 실행은 하청파트너에게 맡기면 되니 표면상 큰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기획을 하려면 밑바닥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편하게 책상에 앉아 연필만 굴리지 말고, 필드에서 고생해 봐야 자격이 주어진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나는 하청 파트너에게 업무를 넘기기 전, 한동안 직접 경험해 보기로 했다.


나만의 스타트업 공식을 적용해 시작했다. 5~7페이지 분량의 소개서 형태 랜딩페이지와 명함을 만들고, CPC광고(클릭하면 충전비용이 차감되는 광고방식)로 온라인 1:1 상담 채널을 열었다. 주 단위로 노출수 대비 클릭수, 클릭수 대비 문의율 등의 전환율을 3~4주간 분석했다. 그리고 CPC 단가를 최적화해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낼 수 있게 세팅했다.


데이터가 나오면서 업무는 활발해졌다. 데이터 기반으로 홍보 포스팅을 하고, 소개서와 홈페이지 내용을 개선했다. 고객 상담 피드백으로 니즈를 1차 반영한 후에야 오프라인 영업을 시작했다. 초반엔 성공사례 구축이 중요하기에, 재능기부 삼아 기업 규모 상관없이 신청을 받기로 했다. 한 달 즈음 지나자 간헐적으로 상담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두 달째부턴 문의와 미팅이 늘어났다. 열정 넘치는 초반이라 고객 입장에서 1~2시간씩 조언하고 팁도 알려줬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계약과 실적도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기업 규모 상관없이 신청받은 게 화근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마케팅은 A-Z 설계 기획의 범주다. 이걸 수립하고 나서야 광고와 브랜딩 전략을 수행한다. 설계 과정을 거쳐 분석 후, 전략을 재수립하는 사이클을 반복한다. 이 과정이 3개월에서 6개월, 심지어 1년 넘게 걸리기도 한다. 혹시 눈치챘는가?



나는 여러 포스팅에서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현재의 중력에 갇힌다."라고 말해왔다. 그렇다. 소상공인으로 내려갈수록 당장의 매출 전환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마케팅이 아닌 광고의 관점에서 봐도 실적이 반영되려면 최소 2~3개월은 인내해야 함에도 말이다. (참고로 짧은 기간 동안 고객데이터를 분석하며 제품을 개선하는 MVP 수립 관점이 아님을 밝혀둔다.)


나는 구두로 여러 번 "3~4개월은 지켜봐야 한다"라고 항상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광고주에게 들리지 않는 듯했다. 계약 당일까지도 "맞는 말씀입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그들은 귀가 아프다는 듯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는 눈치를 보였다. 나는 '이 정도면 확실히 알아들었겠지'라고 생각하고 광고 대행을 시작했다.


2주쯤 지났을까? 불현듯 광고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며 투정 섞인 말투로 재촉했다. 나는 전에 말한 내용을 다시 상기시켰고, 광고주는 조용히 기다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1주일 후, 또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엔 매출이 일어나지 않는다며 성화였다. 다른 곳에 맡겼으면 좋았을 거라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광고 시작 한 달 만에 생각한 만큼 성과가 나지 않는다며 광고대행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연락을 끊어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성과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한 시점이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행태는 단순히 한 광고주의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광고주들에게서 나타난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런 패턴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거래를 중단했던 광고주들이 한참 뒤 다시 연락해 오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우리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다른 광고대행사와 일하며 더 많은 광고비를 지출했음에도 시간만 낭비하고 실적은 오히려 하락했다며 하소연한다. 재접촉 이유를 묻자, "지금 와서 보니 광고주 입장을 진솔하게 설명해 줬던 것 같아서"라고 답한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이미 대부분의 광고비를 소진했으니 예전보다 더 저렴하게 서비스를 제공해 달라는 요구다. 이런 상황에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른다.



광고대행사의 주 수입원은 대행비다. 대행은 대부분 단발성이라 모든 대행사는 매월 고정비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3개월, 6개월, 12개월 단위의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는 기업 규모가 작은 고객(광고주)에겐 통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고객은 기다림의 여유가 없다. 1개월 맡겨보고 스스로 판단해 버린다. 그리고는 '여기는 실력이 없는 곳'이라고 단정 짓는다.


이런 다람쥐 쳇바퀴 같은 경험을 여러 번 하다 보면 광고대행사들은 점점 회의감에 빠진다. 처음의 열정은 사라지며, 이러한 생각으로 수렴한다.


뭐로 가도 서울만 가면 돼,
광고주 잘 꼬셔서 단발성 광고상품이나 열심히 팔아야지.
 생각해 줘 봤자 다 필요 없어!



고객의 니즈가 시장의 흐름을 좇다 보니, 광고대행사들은 이에 발맞춰 사업의 포지션을 조정하게 된다. 즉, 고객 요구에 따라 서비스 및 영업 전략을 변경하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편승하는 광고대행사가 늘어나면서 경쟁은 치열해지고, 역설적이게도 고객 만족도는 점차 하락한다.


결과적으로 "이제 믿고 맡길 만한 대행사가 없다"라는 광고주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는 마치 우물이 마르는 것과 같이 광고대행 시장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N잡 시대가 도래했고, AI 기술이 활성화되면서 기존 광고대행사들은 점차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자기 조직화 시대를 맞아, 고객이 때로는 공급자가 되고 때로는 소비자가 되는 복잡다단한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광고대행사와 광고주 간의 관계는 비단 광고업계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스타트업 역시 이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그들 또한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는 사고의 틀에 갇혀 있다. 빠른 성과를 원하는 투자자나 고객의 요구에 맞추다 보니,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성공한 기업중장기적 관점에서 인내하며 꾸준히 나아갔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인내를 넘어 명확한 비전과 전략적 사고의 결과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심장기적 비전 아닐까?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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