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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눕 Dec 13. 2022

나의 모든 시선은 너에게

할머니를 만나게 해 줘서 고마워


아이가 강아지를 유독 좋아한다.  친할머니 댁에 있는 코코를 그렸다고 그림 하나를 내밀었다.  “우리,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코코 잘 있냐고 물어보고 그림 그린 것도 말씀드릴까?”  


아이의 친할머니, 즉 시어머니인 “어머님” 번호를 찾아 누른다는 것이 그날은 무슨 정신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전화번호부에 “할머니”라고 검색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전화가 걸렸다.  전화는 성급히 끊겼지만, 까맣게 잊고 지낸 할머니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우리 할머니가 계셨었지? 너무 까마득이 잊고 지낸 할머니의 존재에 갑자기 몸도 마음도 일시정지가 되어버렸다.  우리 할머니, 어떻게 할머니를 이렇게 완전히 잊고 지냈을까?




이 번호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면, 늘 반갑게 내 이름을 불러주셨었는데, 이제는 없는 번호다.   아흔 가까이 되신 거동 불편하신 할머니가 지방에서 오시는 게 힘드실까 봐 온 가족이 말렸지만 할머니는 내 결혼식에 곱디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참석하셨다.  


자주 찾아 뵐 수는 없었지만, 손주를 품에 안고 요양 병원으로 찾아 뵐 때면, 할머니는 말할 수 없이 기뻐하시며 아이의 손을 놓지 않으셨다.  짧은 만남 뒤로 할머니와 작별을 할 때면 어김없이 눈물 바람으로 나를 보내셨던 할머니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가 막 태어났을 때, 생활이 빠듯했던 부모님은 맞벌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계셨고 우리 집에는 갓난쟁이를 봐주실 분이 없었다.  6살 난 첫째 아이도 친정에 부탁하여 겨우겨우 힘들게 키우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돌도 안된 아기는 시골 친할머니 댁에 보내져 부모님과 6년가량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신, 나와 늘 함께 해 주신 분은 엄마 아빠 대신 할머니였다.  어쩌다 한 번씩 부모님을 만나는 날이 되면 괜한 어색함에 할머니 등 뒤에서 쭈뼛거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밭일을 할 때도, 동네잔치에도, 친구분들 모임에도 할머니는 나를 늘 데려가셨다.  노래를 잘 부르셨던 할머니를 따라 노래자랑에도 갔었나 보다.  할머니가 무대에서 노래 부르시던 장면들이 잔상처럼 아직도 남아있다.  


온몸이 이유 없이 가려워 할머니를 깨울 때면 뜨거운 물을 데워 새벽에 몸을 닦아주시던 기억도 난다.  왜 그렇게 가려웠는지 모르겠지만, 새벽에 곧 잘 할머니의 단잠을 깨웠던 건 분명했다.  




할머니가 나를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말씀하시던 30년 전, 아니 그 보다 더 오래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친구분의 병문안을 가셨었는데, 그 당시, 아이들의 병실 출입이 제한되어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나를 병원 로비에 혼자 두고 면회를 다녀오셨다고 한다.  


다섯 살도 채 안된 어린아이가 꼼짝하지 않고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할머니를 기다려 주었던 게 그렇게 대견하고 고마웠다고 매번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젊은 나도 내 아이 하나 키우는 게 이렇게 고되고 힘든데, 그 연세에 할머니는 갓난쟁이를 홀로 키우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얼마나 많은 낮과 밤을 나를 위해 희생하셨을까?  잠시라도 떨어지게 될 때면 홀로 두고 온 아이가 얼마나 마음이 쓰이셨을까? 내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할머니의 정성과 노고 앞에 철저하게 고개가 숙여진다.  




엄마가 된 이후 모든 생각과 시선이 온통 아이에게로 향하는 나를 매일 발견한다.  오늘은 아이의 할머니로 인해 나의 할머니를 만났다.  나를 키워주시던 그때 그 시절의 할머니의 생각과 시선도 모두 나에게로 향했겠지?  많이 고되고 힘든 시간 이셨겠지만, 그땐 내가 할머니의 전부이고 기쁨이었겠지? 스레 마음이 뜨거워지는 밤이다.  할머니가 무척 그리운 밤이다.


- 너의 시선 끝에서 나를 만난 어느 밤에-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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