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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눕 Dec 27. 2022

부디 탈의실에서 낚인 게 아니길

토미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경위


무더운 한 여름, 아이가 다니던 수영장에서 주말마다 온 가족이 함께 자유 수영을 즐겼다.

탈의실에서 나이 지긋하신 어머님들이 특정 선생님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으셨다.


어머님 1: 토미(가명) 선생님 아니었음, 나 수영 계속 못했을 거야.  그 선생님 덕에 지금까지 계속 수영할 수 있었어.

어머님 2: 맞아, 그 선생님 진짜 좋아.  


그 일이 있은 후  탈의실에서 정확하게 2번 더 그 선생님 칭찬을 의도치 않게 듣게 된다.  이쯤 되면 이제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도대체 그 토미 선생님은 어떤 분이시길래, 이렇게 어머님들이 칭찬을 하실까?




수영이라고는 한 번도 배워본 적 없지만, 언젠가 생존 수영은 더 늦기 전에 배워보고 싶었다.  그저 그렇게 ‘하고 싶다’ 고 생각만 했지, 실제로 배워 볼 용기는 없었다.  사실 살을 조금 더 빼고 수영복을 입으면 그나마 비루한 몸뚱이가 괜찮아 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체중 감량 후 배우겠노라고 잠시 외면했다.  그리고 퇴근 후 저녁 먹고 아이 챙기기도 바쁜데 뭔가를 새롭게 배울 에너지는 없을 거라는 나름의 이유로 미뤄둔 일이었다.


소싯적 벨리댄스, 스포츠댄스, 요가를 잠깐씩 배우며 내 맘대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이처럼 타고난 몸치도 실력 있는 선생님을 만난다면, 중도 포기 없이 어쩌면 수영을 잘 배울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샘솟았다.  이 선생님과 함께 라면, 미루고 미뤄두었던 나의 “To Do List”에 가뿐히 완료   표시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만 같았다.




탈의실에서 토미 선생님에 대한 칭찬을 우연히 듣게 된 어느 날,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 선생님 수업을 신청했다.   역시나 인기가 많은 선생님인 관계로, 가능한 수업이 없었다.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 두고 나왔다.


참고로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7년이 걸린 사람으로, 가전 제품을 하나 살 때도 한 달가량, 수없는 검색 끝에 나와 꼭 맞는 최고의 상품을 사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굳이 아름답게 포장하자면, 최선의 선택을 위해 매번 몹시 신중하게 알아보고 결정하는 성격으로 그날 즉흥적으로 수업을 신청한 일은 스스로에게도 조금 의아한 사건이었다.  


물론 토미 선생님에 대한 칭찬을 듣고 결정을 하긴 했지만  선생님 이름 석자와 수강생들의 만족도가 꽤 높다는 거 외엔 추가 정보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뭘 어떻게 잘 가르쳐 주시는 지도, 뭐가 왜 좋다는 건지도 모른 채 신청했네?)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수영 수업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겨울날, 드디어 수업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칼퇴하고 가면 딱 맞는 시간대로 아이와 동일한 시간에 수업이 가능했다.   아이가 수영을 배우는 옆 레인에서 레슨을 받는 일은 상상만 해도 너무 즐겁고 설레는 일이었다.  나뿐 아니라, 아이도 남편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수영 수업을 기대했다.


#woman #fun #swimming


드디어 수업 첫날.

"토미 선생님 수업 들으러 처음 왔어요.

근데  선생님은 수영장에 계신가요?

어느 분인지 어떻게 찾으면 되지요?"


인포 데스크에 앉아 계시던 센터 부장님이 덤덤히 말씀하신다.


“쉬워요.  가장 잘 생긴 사람 찾으시면 됩니다.  

한 번에 알아보실 거예요.”

“네?”


아.  뭔가 싸한 이 느낌.  

정말 믿기 어렵게도, 나는 잘생긴 사람 울렁증이 있다.  잘생긴 남편도 부담스러워서 처음에 연애를 안 하겠다고 거절했던 여자다. (남편님이 언젠가 브런치에 자신을 소개하게 되면 꼭 매우 잘생긴 사람, 정우성? 정도로 묘사해 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


'설마 저 선생님?'

부장님 말씀대로 토미 선생님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저기 저 앳된 외모의 남성이 토미 선생님은 아닐 거야’라고 애써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곳에 토미 선생님 외에 잘생긴 남자 어른은 없었다.


잘 생긴 외모가 부담스러운 건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니 그건 그렇다 치고 넘어가자.

50-60대 어머니들께서 칭찬하신 내용으로 짐작했을 때 당연히 어느 정도 연륜이 있으신 분인줄 알았다.  숙련된 노하우로 초보 몸치 학생도 거뜬히 커버할 수 있는 선생님이라고 기대했단 말이다.


혹시 탈의실에서 수강생들의 대화에 낚인 건 아닐까? 조심스러운 의심도 들었다.  아니, 어쩜 토미 선생님이 정말 실력 있는 좋은 선생님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왜 아무도 안 알려주었나.

그 선생님이 이렇게 잘생긴 젊은이라는 것을.


왜 아무도 안 알려주었나.

선생님의 레슨 경력은 이제 약 1년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왜 아무도 안 알려주었나.  

머리를 풀세팅하고 수영 수업에 오시는 선생님이라는 것을.  

(나는 왜 더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나?  집안에 물건 하나 들일 때도, 아이 학원하나 보낼 때도 그렇게 리뷰와 맘카페 글들을 다 찾아보면서)


말로만 계속 설명해 주시는 탓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던 몸치 학생은, 첫날 토미 선생님에게 직접 시범을 보여 주시면 안 되냐고 부탁했다.  물에 흠뻑 젖은 토미 선생님 머리를 보고 그때 서야 알았다.  모두가 수영모를 쓰고 있는데,  선생님 혼자만 수영모 없이 잘 세팅된 머리를 유지하고 계셨던 것을. 흠뻑 젖은 생쥐 머리를 보고서야 내 부탁에 왜 선생님이 잠시 멈칫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찬찬히 생각을 더듬어 보니, 우연히 듣게 된 3번의 칭찬 중 한 두 번은 탈의실 저쪽 어딘가에서 무심하게 들려오던 소리였다.  즉, 선생님을 무척 좋아하는 동일 수강생 몇 분에게 내가 친히 스스로 낚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 고작 첫 번째 수업을 마쳤고 아직 선생님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평소와 다르게 조금 쉽게 내려진 내 결정에 불안함을 느낄 뿐이다.



부디 토미선생님이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실력 있는 선생님 이시길.

몸치인 나를 자유로운 물개로 만들어 주시기를.

그리고 어머님들의 말이 모두 맞았다며, 탈의실에서 선생님을 칭찬하는 날이 오기를.


Photo by Pixabay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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