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모으기 (Collecting)
2023. 10. 27
TITLE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DIRECTOR 미야자키 하야오
RELEASE 2023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었음에도
영화는 그 세계관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뿌려놓은 요소들을 설명하거나
이야기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일견 풍경화를 보는 느낌이다.
손발을 다 써서 급하게 계단을 올라가는 마히토.
유바바 밑에서 일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할머니들이 와글와글 모여 가방을 구경하는 모습.
'터부'를 어기고 산실에 들어간 마히토를
내쫓으려는 종이들.
잘 구워진 빵에 도톰하게 올라가는 버터와 딸기잼.
자신을 죽여달라며 저주를 말하는 펠리컨과
활을 무기 삼는 주인공.
허공에 떠 있는 커다란 돌.
그렇다. 이 풍경화의 정체성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초상에 가깝다.
영화 전반에 걸쳐 미야자키 하야오는 본인의 이전
작품들을 이 세계관에 녹여내는 작업에 몰두한다.
위태로운 돌탑을 쌓는 데에 열정을 다하는
작중 큰할아버지처럼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전 작품들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이 종합 선물 세트가 반갑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돌탑 안에서 영영 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을 감독 자신의 작품 활동에 대한 반추 혹은
반전 영화(특히 제국주의와 신제국주의)라는
두 관점 중 어느 방향으로 접근하더라도
핵심은 동일하다.
당신은 당신이 살고 있는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삶을 끔찍하게 만드는 것들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도, 모든 건 언제나 거기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발걸음을 돌아보고 세계로 돌아온 감독이 묻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이냐고.
Fin.
* 인스타(@12_8ummer)에서는 자질구레한 일상과 인용구, 그리고 주접을 볼 수 있습니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