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신과 진료의 시작
나도 느껴졌다.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자신에게 질문했다. 나 왜 이러지? 뭐 때문이지? 회사 때문인가? 가정환경 때문인가? 계속 질문을 던졌으나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과거를 파묘할수록 기억들은 나를 괴롭혔고 더더욱 비참해졌다.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남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불안해서 미치다 못해 죽을 것 같아. 쉬고 싶은데 쉬어지지가 않아. 모든 걸 놓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책임감 없는 이런 나 자신도 싫어.
두렵고 무서우면 피하고 도망치는 게 동물의 생존 본능이야. 사람도 동물이고 그건 당연한 거야. 그리고 그는 많이 힘이 들면 함께 정신과를 가자고 했다. 함께 옆에 있어 주겠다고.
같이 동네 정신과를 방문했다. 생각했던 정신 병원은 언덕 위에 하얀 집이고, 그 안에 "맛탱이 간"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병원 안은 내가 다니던 내과와 크게 다를 바 없었고,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도 평범해 보였다. 그리고 유명 맛집만큼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몇 가지 테스트를 한 후, 의사와 면담을 했다. 몇 분 간의 면담 끝에 처방받은 약은 우울증과 불안장애 약이었다. 불안장애가 지속되는 경우 우울증이 뒤따라오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그 케이스인 듯하다.
2주간 약을 복용했다. 쓰나미처럼 들이닥치던 모든 걱정과 불안, 그리고 가라앉던 우울함은 봄눈이 녹듯 사라졌다. 그렇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모든 감정이 가라앉았다. 간혹 있던 즐거움과 기쁨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울하진 않았지만 물 맞은 빨래처럼 몸과 마음이 축축 쳐졌다. 감정 없이 존재만 하는 기분이었다.
찾아보니 정신과 처방약은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약을 변경했다. 아마 두세 번가량 변경했던 것 같다. 몇 달간의 시행착오 끝에, 나에게 부작용이 전혀 없는 약을 찾을 수 있었다. 참고로 내가 복용했던 약은 브린텔릭스정과 명인부스피론염산염정이었다.
아, 참고로 우울증과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과 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고 들 하는데, 나는 전혀 찌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폭식하던 습관이 없어지고, 술을 끊게 되어 살이 빠졌었다.
나는 점점 안정되어 갔다. 더 이상 내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퇴근 후, 회사 관련된 모든 스위치를 끄고 쉴 수 있었다. 수면의 질도 올라갔다. 아침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까 생각하며 즐거워졌다. 업무 집중도 잘되었고, 멈춰있던 머리는 다시 빠르게 돌아갔다. 내가 멀쩡했던 그 시기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다.
삶에 애착이 생겼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