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나, 파악하기

by 구천개의 생각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성취감을 느끼는가 - 하루의 성취감을 게임 HP bar로 계산해보기


'성취감'이라는 단어는 어떤 표현과 자주 쓰일까? 성취감이 있다, 성취감을 쌓다, 성취감을 얻다, 성취감을 느끼다···


단어 자체의 뜻이 밝아서 그런지 같이 쓰이는 표현 또한 대부분 긍정적이다. 이와 반대되는 상황을 표현하는 또 다른 단어가 많아 굳이 성취감과 부정적 표현을 더해 쓰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단어는 늘 좋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성취감'은 의외로 자주 잃기도, 깎이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목표했던 것을 이루어내며 쌓이는 경우도 많지만, 나를 기죽이거나 괴롭히는 일련의 사건으로 되려 사라지는 경우도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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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알기 위해서, 하루를 마친 후 몹시 피곤한 상태인데도 자꾸만 잡생각이 나고 내일이 불안해진다면 하루 동안 있었던 성취감의 획득과 소실을 게임 HP bar처럼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릴 적 학교 근처 문방구 앞에 흔히 있던 오락기 화면 속에는 캐릭터의 체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한눈에 보이는 HP bar가 있었는데, 상대에게 공격을 당하면 그 픽셀 칸이 줄어들고, 그 칸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캐릭터의 목숨이 다해 패배하고 게임이 끝나는 식이었다.


현재의 온라인 게임에서는 공격으로 인해 칸이 줄어드는 것은 이전과 같지만, 아이템을 먹어 다시 차오르기도 하고, 또 그 과정에서 받은 공격과 얻은 아이템의 정도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드는 칸의 크기도 매번 다르다.


성취감의 정도를 세어보는 방식도 이와 같다. 게임에서 어떤 아이템은 한 칸을 충전, 그보다 좋은 아이템을 두 칸을 충전시켜주고, 어떤 공격은 한 칸의 데미지, 그보다 센 공격은 두 칸의 데미지를 입히는 것처럼 오늘 일어난 일 중 어떤 일은 그냥 플러스, 그냥 마이너스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일은 빅 플러스(big+) 또는 빅 마이너스(big-) 일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① 푹 잘 자고 개운하게 일어났다 → 플러스

② 매일 하던 아침 스트레칭을 했다 → 플러스

③ 매일 하기로 계획한 30분간의 독서를 마쳤다 → 플러스

④ 오늘 몸 상태가 좋아 계획보다 많은(오래) 운동 또는 공부를 했다 → 빅 플러스

⑤ 기대하지 않았던 프로젝트가 좋은 결과를 얻었다 → 빅 플러스


① 계획했던 일 중 하나를 아쉽게 해내지 못했다 → 마이너스

② 반려견 산책을 시켜줘야 했는데 못했다 → 마이너스

③ 업무 중 실수 때문에 상사에게 혼났다 → 빅 마이너스

④ 날짜를 착각해 조별과제 조원들에게 자료를 못 보냈다 → 빅 마이너스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일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어떤 일을 통해 기껏 모은 성취감을 잃었는지 알 수 있고, 또한 어떤 일이 특히 큰 영향을 끼쳤는지도 함께 알 수 있다.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뿌듯한가 - 뿌듯일기 쓰기


성취감과 뿌듯함은 아래와 같이 사전적으로 엄연히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성취감 : 목적한 바를 이루어서 느끼는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느낌

뿌듯하다 : 기쁨 따위의 감정으로 가득 차서 벅차다


하지만, 체감되는 느낌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나누어 쓰는 이유는 한 가지의 방법을 더 소개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이야기할 것은, 무엇을 했을 때 성취감을 느끼고 뿌듯한지 확인하는 두 번째 방법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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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듯일기>는 말 그대로 뿌듯한 일을 적는 일기이다. 이것은 앞의 방법과 달리 긍정적인 기분에서 시작된다. 하루를 모두 마무리하고 생각해보되, 내 기분이 좋다면, 상쾌하고 후련하다면, 무난하고 안정적이라면, 그때 오늘을 돌아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중 어떤 일이 특히 기쁘고 날 뿌듯하게 했는지, 또 어떤 부분에서 특히 희열을 느꼈는지 떠올려 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면 뿌듯일기가 완성된다.


또한 <하루의 성취감을 게임 HP bar로 계산해보기> 방법이 '깨달음'을 중심으로 하는 과정이라면, 뿌듯일기를 쓰는 것은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 기록은 나만의 데이터베이스가 되기 때문에 늘 중요하다. 아무리 '나'에 대한 것이라 해도 모든 것을 그냥 기억할 순 없기 때문에 '나'를 돌보기 위한 컨닝 페이퍼로 꼭 간직해야 한다.


뿌듯일기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긍정적인 기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꼭 매일 쓸 필요도 없다. 그냥 쓰고 싶은 날, 뿌듯하게 여길만한 일이 있는 소수의 날에만 써도 무방하고, 그 내용 또한 항목별로 나누어 써도, 이야기식으로 써도 무방하다. 양식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쓰는 일기와 차이가 있다면, '뿌듯한 일'을 위주로 한다는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일기를 쓰는 다이어리에 같이 병행해도, 다른 노트를 만들어 적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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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은, 이 글의 총 주제에서 말하듯이, '나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을 써내려 가며 '내가 이런 일에 깊은 희열을 느끼는구나' 하고 실시간으로 알 수도 있고, 나중에 다시 뒤적여보며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내가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내 자신을 재평가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나의 뿌듯일기 중 한 편에는 부하직원들을 비 인륜적으로 대하는 상사에게 퇴사를 각오하고 그 행동을 지적한 일이 적혀있다. 상사는 회사의 입장에 의하면 '일은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직원들을 대할 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업무와 관련된 피드백과 상관없이 나와 동기들에게 짜증 섞인 폭언을 뱉는 사람이었다.


나는 결국 퇴사하겠다는 말과 함께 '나는 나가더라도 네 잘못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퇴사 사유를 함께 언급했고, 나는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일개 직원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일을 그만두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날 붙잡았다. 게다가 본인의 태도를 고치겠다는 답변까지 해주었다. 그날, 퇴근길에 얼마나 큰 희열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게 딱히 사실이 아니더라도, 질 게 뻔한 싸움에 뛰어들어 승리해냈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위의 사례와 달리 매우 소박한 사례도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 정도가 좀 심한 편이었다. 내 손을 본 지인들이 모두 안 아프냐며 경악할 정도의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이걸 막기 위해 입에 손을 갖다 댈 때마다 엄마가 눈치를 주기도 하고, 매니큐어도 발라보고, 손톱을 밴드나 테이프로 막는 등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그런데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의외의 것이었다. 바로 마스크를 쓰는 것. 정말 의외로, 손톱을 물어뜯지 않기 위해서는 손톱이 아닌 입을 막아야 했다.


주중 내내 마스크를 쓰고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니, 주말에 손톱이 자라 있었다. 늘 손톱이 있었던 이들에겐 별 일 아니겠지만 나에겐 눈에 띌 만한 손톱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었다. 기쁜 일은 확대 해석하는 편인 나는 그 상황을 "(마스크의 보조가 있긴 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손톱을 물어뜯지 않을 정도로 일에 집중했구나!"라고 받아들였고, 뿌듯일기 한 켠에 소중하게 이 일을 기록했다. 이 사례는 손톱을 다시 물어뜯기 전까지 손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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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가지 방법을 통해 가장 주되게 얻고자 하는 것은 '좋은 기분으로 잠드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이 날 유난히 기쁘게 하고, 무엇이 날 유난히 기분 상하게 하는지 알아낸 후, 그것을 나의 일상에 추가하거나 제거하는 과정까지 거치고 나면, 마침내 나는 잡생각 없이, 무(無)의 상태로 잠들 수 있게 된다.


잠들기 전의 기분은 다음날 아침의 컨디션까지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 전날 하루를 온전히 끝낸 후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것과 잠들기 전까지 무언가 안 좋은 것에 계속 사로잡혀 있다가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생각을 이어가는 것은 확실히 다른 하루를 만들기 때문이다. 매일 좋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꼭 오늘부터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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